[단비인터뷰] 자매 수화통역사 이현화·한나씨

# 1.

평택시에 있는 한국국립복지대학교 강의실. 강의중인 교수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저조한가 싶지만, 수업에 몰두하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한다. 열의에 부응하듯 함께 바빠지는 이가 있다. 교수 곁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강의내용을 수화로 통역하는 수화통역사 이한나(25)씨다. 학생 대부분이 농인인 수업에서 그의 '손짓'은 각자의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 2.

작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두 후보의 대결만큼이나 관심받았던 TV찬조연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공유되며 선거 열기를 더욱 달궜다.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찬조연설에는 농인이자 한국농아인협회장인 변승일 회장이 나섰다. 온몸으로 수화를 하며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를 기대한다던 그의 간절한 이야기는 이현화(28)씨 음성통역으로 우리에게 전달됐다.

▲ 수화통역사 이한나(왼쪽), 이현화(오른쪽)씨. ⓒ 안세희

"농아인과 청각장애인은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개념이에요. 청각장애인은 병리적 관점에서 청력장애가 있는 이들을 일컫는 반면, 농인은 못 듣는 대신 더 잘 보는 장점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병리적으로 접근하면 청각장애는 치료의 대상이지만, 농인에게 듣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특징일 뿐이죠. '농인'이란 말은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낸 표현이에요. 수화를 기반으로 농인의 문화를 형성해가는 이들에게 수화는 한국어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제1의 언어, 모어(母語)입니다. 수화의 언어적 지위를 보장하는 '한국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죠."

언어를 다루는 통역사답게 수화와 농인문화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들은 국내 31만 농아인과 세상의 소통을 책임지는 자매 수화통역사 이현화(28, 나사렛대 교육통역사)·이한나(25, 국립한국복지대학교 교육통역사)씨다. 같은 일에 종사하다 보니 서로 배울 것이 많다며 돈독한 자매애를 뽐내는 이들은 늘 고민하고 공부하는 열정 가득한 프로다. 

현재 대학에서 농학생들의 강의 통역을 하고 있고, 행사나 방송 등 수화 통역이 필요한 자리에서 소통을 돕는다.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활동한 지는 각자 5년, 3년으로 짧은 편이지만, 농인 부모님을 둔 자매는 수화실력이나 농인문화 이해에 있어서 베테랑 못지않다.

 "농인 부모님 덕분에 시작한 수화통역, 소통 이뤄질 때 보람 느껴요"

▲ 이현화씨가 강의 통역을 하고 있다. ⓒ 이현화

"부모님이 모두 어릴 때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으셨어요. 집에선 수화로 소통했죠. 그래서인지 농인들과 어울리는 데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사실 문화적 차이가 청인(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크거든요."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히고 통역사의 길을 선택한 자매를 어머니는 걱정했다. 농인으로서 청인과 농인의 간극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눈으로 보고만 살아온 농인들 세상은 청인들과는 다르다. 옆 사람의 사소한 몸짓과 표정이 그들에게는 모두 소통의 도구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농인들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들이 10년 넘게 교육받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작문력이 좀 부족할 수밖에 없고, 어순이나 표현방식이 한국어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언어가 닫히면 세상도 닫힌다. 수화통역사들은 농인들의 창과 같다. 현화씨와 한나씨는 농인들이 통역사들의 수화를 보고 속 시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유의 표정이 있어요. '아~' 하면서 끄덕이고 속 시원하다며 웃으시는 그 표정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간밤에 받은 문자메시지 한 통을 확인하러 아침에 통역사를 찾아오시는 것 보면 얼마나 궁금하고 답답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죄송한 마음도 들고요." 

농인들이 이렇게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역센터는 전국에 200곳 가량 설치된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지부다. 그 외에 수화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방송, 교육, 의료,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농인들은 벽을 마주하지만 해결책은 없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개선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수화통역 서비스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푸대접받는 수화, 속상해"

"영국에 복지환경 연수를 갔다가 숙소에서 TV를 켰는데 수화통역 지원을 하더라고요. 통역 화면의 비율이 안 돼도 1/6정도로 컸고 작은 동그라미 화면에 통역사를 가둬놓지도 않았어요. 화면을 덧입혀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요. 수화는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과 몸의 방향까지 문법체계에 포함되니 큰 화면이 이해하기 쉽죠."(한나)

"우리나라에선 청각장애 자녀의 수화 사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특수교육으로 어떻게든 구화(청각 장애인이 특수교육을 받아 상대의 입술 모양 따위로 그 뜻을 알아듣고, 자기도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방식)를 하게끔 노력하죠. 그러다보니 특수학교 교육도 구화를 쓰는 방향으로 짜이는데 청각장애인들에게 구화 소통은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수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농인의 문화가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죠."(현화)

▲ 김재원씨가 청각장애인으로 연기했던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 mbc

우리나라에서 수화는 '푸대접' 그 자체였다고 현화씨가 설명한다.

"수화는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는 인식이 있어요. <내 마음이 들리니>란 드라마가 있었죠. 거기서 김재원씨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완벽하게 구화를 쓰고 재벌 2세로 나와요. <다섯손가락>이란 드라마에는 수화를 쓰는 농인이 나오죠. 가난하고 불쌍하게 그려져요. 이런 요소들이 편견을 만들어요. 농인들의 한숨을 더욱 깊게 만들죠."

현재 농인들은 꾸준히 한국수화언어기본법(가칭)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은 수화를 법적 언어로 인정하고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 표현을 빌리면 '수화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으로 공식 인정을 받는 것이다. 수화의 위상을 높이고 농인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언어권 확보가 기본권 보장의 첫걸음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도 포함된 이 법안 제정에 농인들의 기대가 크다. 현화씨와 한나씨도 이미 수화언어기본법을 시행하고 있는 뉴질랜드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뉴질랜드는 아시아 최초로 이 법안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연수 참여가 확정되면  올 여름 뉴질랜드를 방문해 법안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피고 올 계획이다. 

수화통역사로 사는 것

현화씨와 한나씨는 나사렛대학교 수화통역과를 졸업했다. 국내에 수화통역과는 한나씨가 일하고 있는 국립한국복지대학교까지 두 곳이다. 수화통역사로 일하는데 관련 학과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필수는 아니지만, 학문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전공으로 선택했다. 언니 현화씨는 현재 나사렛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화는 농아인협회나 동아리 등에서 접하고 배운다. 서울에는 시에서 위탁운영 중인 서울수화전문교육원이 있다.

▲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의 박근혜 후보 찬조연설을 음성통역한 이현화씨. ⓒ 이현화

"수화통역사에겐 농인을 이해하는 마음과 순발력, 국어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농인의 말을 청인에게 음성으로 통역도 하니까요. 수화를 단순히 할 줄 안다고 통역사로 일할 수는 없어요. 한국어와 수화의 언어체계는 다르기 때문에 동시통역은 훈련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표정과 몸짓까지 동원하려면 쉽지가 않아요. 지금도 늘 연습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농인과 청인의 소통이 전적으로 수화통역사 손끝에 달린 만큼 통역사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금방 지칠 수 있어 이상적인 통역은 두 사람이 15분 가량씩 교대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보통 혼자서 하루 3시간짜리 수업을 두 과목 이상 들어가고, 바쁜 날은 세 과목까지 들어간다. 미국에서는 세 통역사가 수업에 들어가 한 사람은 통역을 하고, 한 사람은 대기하며 흐름을 파악하고, 한 사람은 온전히 쉬며 대기한다. 수화통역사가 수업에 배치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한국의 현실에서 부러운 환경이다.

"아침 수업과 저녁 수업 통역의 질이 확연히 차이 나요. 저희로선 최선을 다하지만 저녁 수업 학생들에게 미안하죠. 통역사들 대부분 업무가 많은 편이에요. 통역 외에도 사회복지사 몫까지 해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국제 수화, 전문분야 수화 등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통역사들이 배출되려면 공부할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요."

근무조건은 업무에 견주어 보수가 낮고 비정규직 고용도 많아 불안정하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관련 학과 개설과 함께 젊은 수화통역사가 양성되고 있고 직업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고용이 늘어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수화통역사는 농아인 352명에 1명 꼴이었다. 핀란드는 100명에, 미국은 150명에 1명 꼴이다.

 "농인 엄마의 잔소리? 귀 막는 대신 눈 가려요"

두 자매의 부모는 청력을 잃은 데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지독한 우리 현실에서 아픔도 많았지만, 두 딸이 누구보다 밝고 착실하게 자라 농인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고 있는 게 무엇보다 뿌듯하다. 영등포에서 십년 넘게 노점을 하며 씩씩하게 삶을 가꾸어가는 어머니의 성격을 두 딸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젠 일을 그만 쉬라'고 두 딸이 어머니를 설득해보지만 '좀이 쑤셔서 집에 있기가 갑갑하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두 자매는 "당신이 행복해 해서 더 말리지 않는다"며 "다른 모녀처럼 편견 없이 봐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 지난 1월 복지환경 연수차 방문한 영국에서. 영국 수화통역사와 대화하는 이한나씨. ⓒ 이한나

"아빠는 4년 전 건축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엄마와 저희 자매, 세 여자가 사는데 농인 가정이라고 해서 침묵만 흐를 거라고 생각하시면 오해예요. 다른 딸들처럼 엄마 앞에서 까불고, 크게 웃고, 때론 어리광도 피우며 신나게 살아요. 아, 다른 게 하나는 있네요. 다른 집에선 엄마들이 잔소리를 하면 귀를 막죠? 저희는 눈을 가려요. '안 보여, 안 보여' 하면서요.(웃음)"(한나) 

"저희는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다른 분들의 동정 혹은 경멸 어린 시선이 힘들죠. 면전에서 혀를 차며 불쌍하다고 말해요.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요. 어릴 때 부모님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너무 많이 속상했어요. 지금이야 저희가 커서 도와드릴 수 있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웠죠. 부모님과 저희는 한 몸과 다름없어요. 부모님이 밖에서 당하고 오면 저희도 똑같이 아파요. 농인은 물론 장애인들을 사람으로라도 봐줬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인 멸시가 심각하거든요."(현화)

꾸준히 공부를 놓지 않고 전문적 역량을 키워나가고 싶다는 자매는 통역을 마치고 100% 만족했던 순간이 드물다고 고백했다. 더 좋은 표현이 계속 떠올라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일을 대하는 진정성과 부지런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꿈을 묻는 질문에는 자매가 한 목소리로 답했다.

"특별한 꿈은 없어요. 그저 초심 잃지 않고 꾸준히 일하면서 더 좋은 통역사로 성장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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