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초과이익환수제’

▲ 박경배 기자

돈을 가리키는 한자 ‘錢’에는 ‘쇠 금’변에 창을 뜻하는 ‘과’(戈)자 두 개가 붙어 있다. 쇠로 만들어진 창과 창이 대결하는 형상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의 이면에는 돈이 있다. 환율 전쟁, 예산을 둘러싼 여야 대립, 정치-경제 사이의 비리와 유착, 서로 먹고 먹히는 기업들의 인수합병, 재개발 과정에서 생겨나는 주민들의 다툼,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가족들 사이 상속 싸움까지 모두 돈이 문제다. 그럼에도 돈 같은 한정된 재화를 쟁취하기 위한 집단내부의 경쟁은 그 집단의 대외 경쟁력을 높인다.

1500년대, 뉴질랜드에서 가까이 거주하던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은 같은 뿌리였지만 처한 환경이 달랐다. 인구도 적고 자원이 풍부했던 모리오리족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 반면에 마오리족 상황은 열악했다. 인구는 많은데 자원이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서로 경쟁했고 칼끝을 밖으로 돌려 먹잇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분쟁은커녕 무기도 없이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족은 마오리족의 침략으로 전멸했다. 이는 환경이 야기한 부족의 성향 차이가 불러온 결과다.

▲ 피땀 흘려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게 우리 환경이다. ⓒ Pixabay

지금 우리 국민들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성장의 핵심 동력인 경쟁할 동기를 잃었다. 피땀 흘려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게 우리 환경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하듯 평균임금의 수십 배를 ‘앉아서 버는’ 건물주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지난 30년간 평균임금은 6배 올랐지만 아파트값 상승액으로 대표되는 ‘불로소득’은 임금 상승치의 43배로 뛰었다. 서울 강남 집값은 10억원 넘게 올랐을 때, 30년 노동의 대가가 2400만원 늘어나는 현실을 보며 사람들은 실현 가능한 희망 대신 ‘건물주’가 되는 욕망을 추구한다. 치열한 경쟁과 노동 없이 얻는 소득이 당연시되는 곳이 우리나라다. 노력해도 올라설 수 없는 현실은 사람들이 서로 경쟁할 이유를 앗아갔다.

이제부터라도 불로소득이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시대현상을 엄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모리오리족의 멸망이 경쟁 없는 환경에서 나온 경쟁력 없는 인적자원 때문이라는 점은 일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생산과 관계없는 토지 임대료가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력 성장을 더디게 한다는 19세기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말 또한 현시점에 참고할 만하다.

재건축에 따른 불로소득을 반쯤이라도 거둬들이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법이다. 정부가 그동안 유명무실하던 개발이익환수제도의 일부나마 제대로 집행할 뜻을 비치자 강남에서는 벌써 ‘초과이익환수법 결사반대’라는 현수막들이 나붙는 등 저항이 본격화하고 있다. 소득있는 곳에 과세가 있어야 함에도 엄청난 초과이익을 그대로 누리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고 행동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연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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