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프로그램 비평

▲ 안윤석PD

일요일 저녁 7시. 온 가족이 부엌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다. 거실에서 방송되는 TV소리를 배경삼아 밥을 먹고 있노라면 한번쯤은 들리는 소리가 있다. 한 남자가 단호하게 “땡!” 하는 소리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무슨 일이 났냐’는 호기심에 거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엄마는 이젠 무심하게 젓가락으로 깻잎무침을 떼어내며 “재들 또 밖에서 자나? 날도 추운디, 좀 봐주기도 하제...” 하신다. TV를 보지 않고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프로그램. 어떤 미션인지, 실패 했을 땐 무슨 벌칙을 받는지 화면 없이도 맞출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바로 <1박 2일>이다. 10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미(美)를 시청자들에게 알렸던 이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 엄마가 안보고도 벌칙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익숙한’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평균 시청률 13%. 꾸준히 사랑받는 1박 2일이다. 1박 2일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익숙함’을 의외로 좋아한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봐도 ‘익숙함’이란 인류에게 매우 보편적인 정서다. 광활한 초원을 누비고 다니던 원시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암호와 같을 정도다. 원시인은 살아가면서 경험적으로 눈에 익은 식물을 따 먹었으며, 많이 사냥해 본 동물을 잡아먹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과정을 목숨 건 희생을 통해 배우고 익혔다. 원시인들이 치뤘던 ‘희생’이 무지함 속에서 발생한 우연적 요소였거나 그들 나름대로의 호기로웠던 ‘객기’정도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또한 익숙해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원시인들은 ‘익숙함’의 세계를 넓혀 나갔다.

캐릭터 적으로도 익숙한 프로그램이 1박 2일이다. ‘김종민’이 대표적이다. 시즌 1을 시작으로 시즌 3까지 10년의 세월을 이어온 가운데 ‘김종민’은 대한민국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인지도 높은 캐릭터가 됐다.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김종민의 인지도 대결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대결에서 한 산골마을에 90세를 넘으신 할머니가 김종민을 알아 볼 정도였다. 10년 간 고수해온 ‘바보’ or ‘천재’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면서도 꾸준한 웃음을 안겨준건 덤이다. 1박 2일 시즌 2에서 김승우, 성시경, 엄태웅 등 잘 나가는 배우나 가수들이 억지로 망가지는 모습을 시청자들은 외면했었다. 캐릭터가 맞지 않은 옷을 입었을 때 시청률이 저조했던 것을 바라본다면 시청자들은 캐릭터에도 과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은 ‘익숙한’ 모습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1박 2일>은 구성은 단조로워 보이나 매 이야기마다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익숙한' 사람들이 보여 따뜻하다. ⓒ KBS2 <1박 2일> 갈무리

시청자가 좋아하는 주체는 시청자 자신이다. 1박 2일은 그 누구보다 많은 시청자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매주 찾아가는 마을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며 복불복 게임을 하고 있다. 비록 프로그램의 구성이 ‘여행지에서 점심복불복, 저녁복불복, 잠자리 복불복, 기상미션을 한다’라는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매 이야기에는 주변에서 볼 법한 형이나 누나,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1박 2일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평가보다 ‘따뜻하다’, ‘푸근하다’와 같은 감정어린 평가가 많은 것도 어떻게 보면 TV를 보는 시청자가 마치 자신을 포함한 주변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파격적인 프로그램도 좋지만 매주 일요일 저녁 배경처럼 틀어놓는 1박 2일에 리모콘 손길이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도 익숙해서, 당연하게 틀어놓게 되는 프로그램. 나와 내 주변을 바라보는 것 같아 더욱 따뜻한 프로그램. 1박 2일이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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