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인사

▲ 송승현 기자

니체의 장대한 철학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사상적 혁명의 반동(反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드러낸다.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며 새 가르침을 전파하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듣지 않았으나, ‘보다 높은 인간들’만은 가르침에 감동하며 차라투스트라를 좇았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는 가르침을 따르던 ‘보다 높은 인간들’은 도리어 나귀를 숭배하고 만다. 기가 막힌 차라투스트라가 그 이유를 묻는다. 보다 높은 인간들 중 한 명인 교황은 “이 지상에 아직도 경배할 것이 있다는 사실에 나의 늙은 마음은 기뻐 날뛴다”고 답한다.

촛불 혁명을 등에 업고, 시민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형국이다. 첫 내각 조각 단계에서 장관급 후보자 2명이 낙마했다. 이는 이명박 정권 3명, 박근혜 정권 6명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그러나 전임자들보다는 낫다고 자위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박근혜 정부 출범 2주년을 평가하는 토론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인사’를 꼽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인사 5대 원칙’을 어긴 것은 차치하더라도, 낙마한 박기영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에다 창조과학으로 과학계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일으킨 박성진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인사 문제에 책임을 지는 이가 하나도 없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박성진 후보자를 지명한 정부의 행태를 두고 “후보자의 이력을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더 큰 문제다”라고 혀를 찼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전제로 하는 제도다. 인사권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게 주어진 이유도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주권자에게 권력을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자는 행위에 마땅한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후보자를 검증하는 민정수석도, 인사수석도, 임명권자인 대통령도 요지부동이다. 사드문제로 대중갈등이 수교 25년 만의 최악으로 치달아 대중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의원회관 책 판매 물의로 국회의원 공천도 못 받은 인사를 중국대사로 임명한 것은 ‘코드인사’ 외에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한국 시민들은 초인의 경지에 오르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 flickr

차라투스트라는 ‘보다 높은 인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하여 만찬까지 열어준다. 그러나 결국 보다 높은 인간들은 차라투스트라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 경험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시(초인, 超人)’의 경지에 오른다. 누군가를 깨우쳐주고 구원해주고 싶다는 연민과 집착을 벗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며 얼어붙은 광화문을 촛불로 녹여낸 시민들이 목도하는 것은 책임이 방기된 ‘인사문제’다. 주권자에게 권력을 이양받은 자가 권력에 대한 책임을 지는 민주주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한국 시민들은 초인의 경지에 오르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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