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전국서 모인 ‘개념’ 시민들, 최루액 뚫고 연대의 함성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6개월 넘게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2차 희망버스’ 참가자 1만 여명이 9일 오후부터 10일 오후까지 부산역 등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최루액 등을 뿌리며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다 일부 부상당하고 연행되기도 했으나 ‘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해 전국에서 1만 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시민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 1만 여명. 부산역에 모인 참가자들은 연대콘서트를 즐기며 '무박 2일' 행군을 시작했다. ⓒ 안세희

 

9일 오후 굵은 빗방울 속에서 195대의 버스로 부산역에 속속 도착한 참가자들은 오후 7시부터 ‘부산지역 시민과 함께 하는 연대 콘서트’를 시작으로 ‘무박 2일’의 행군을 시작했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3호선 버터플라이> <웨이컵>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자발적으로 참여한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쳤고 송경동, 심보선, 김선우 시인 등이 김진숙 위원을 위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서 동료 해고자들과 함께 ‘소금꽃 찾아 천리길’ 도보행진으로 찾아온 이창근 쌍용차노조 기획실장은 무대에 올라 “도보행진을 하며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눈물이었다”며 “우리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같이 가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희망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7개월 된 아이를 안고 일부러 나왔다는 이경아(37‧주부) 씨는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왔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며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온 사람들이 참 고맙다”고 말했다. 지나가다 콘서트장에 들렀다는 김정수(70) 씨는 “한 여성이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있고, 이를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진숙 위원을 만나러 갑시다”

밤 9시40분 무렵 콘서트가 끝나자 시민들은 영도구의 한진중공업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그칠 줄 모르는 비 때문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받쳐 들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 피켓 시위를 하며 거리 행진하는 시민들. ⓒ 안세희


“정리해고 철회하라!”
“해고는 살인이다!”
“밤에 잠 좀 자자!”
“사람만이 희망이다!”
“소금꽃 나무들 힘내세요!”

 

‘소금꽃 나무’는 김진숙 위원이 쓴 책 이름으로, 고된 노동을 마친 근로자들의 등판에 땀이 말라붙어 허연 소금꽃이 핀 것을 묘사한 것이다. 김 위원의 지지자들은 그를 ‘소금꽃’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행진 대열에 있던 구소라(24‧대학생) 씨는 “대구에서 오후 4시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달려왔다”며 “내일 아침에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낼 순 없지만, 김진숙 씨를 보고 응원하고 싶어서 무리해서 부산까지 왔다”고 말했다.     

 

 ▲ 몸이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 ⓒ 안세희

 

몸이 불편한 것을 개의치 않고 참여한 이들도 많았다. 박경석(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공동대표는 “단체 소속 회원들이 100여 명, 50여 대의 휠체어가 오늘 함께 했다”며 “김 지도위원과 함께 연대하고 응원하기 위해 비 오는 날이지만 우비를 덮어쓰고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정리해고는 탐욕스런 재벌이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생각하고 쓸모없으면 폐기처분하려는 것과 같다”며 “이는 재벌이 장애인을 보는 관점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3차 희망버스에서 다시 만나요”

그러나 부산역에서 시작된 행진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700여m 앞둔 영도구 봉래 로터리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경찰은 행진을 막기 위해 93개 중대 7000여 명을 배치하고 차벽과 물대포 등을 내세워 봉래 로터리에서 조선소 방향 왕복 8차선 도로를 완전 봉쇄했다. “김진숙을 만나게 해달라”며 한진중공업에 들어가려는 참가자들과 이를 막는 경찰이 밤새 대치했다. 경찰은 독성이 강한 최루액을 쏘며 참가자들의 차벽접근을 막았고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저항했다.

 

 ▲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 하늘로 뻗은 물대포가 시민들을 위협한다. ⓒ 안세희

 

김진숙 위원과 저항하는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회원로들도 나섰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문정현 신부가 생중계를 하고 있던 한 언론사 차량 위로 올라 지지발언으로 힘을 보탰다. 백 소장은 “이명박 정권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과 이 나라, 사회를 야만의 시대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 땅의 모든 정치세력은 내년에 있을 대선 대책을 논의하지 말고 지금 김진숙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권이 나를 감옥에 넣겠다고 하는데, 난 죽으러 내려왔으니 맘대로 하라”고 외쳤다.

10일 새벽 2시 40분쯤 경찰의 강제해산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대표가 최루액을 정면으로 맞고 실신하는 등 참가자들의 부상이 이어졌고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 등 시민 5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참가자들은 결국 186일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 위원을 만나지 못한 채 10일 오후 ‘3차 희망버스에서 만나자’고 다짐하며 자진해산했다. 

영도조선소 안에서 펼칠 문화제를 준비했던 정은실(23‧대학생) 씨는 “김 위원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능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 위원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는 사이라 특히 직접 얼굴을 보고 응원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려고 돌아서던 이진구(24‧대학생) 씨도 “어차피 우리가 온 것을 김 지도위원도 알 텐데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은 못봤지만 김 위원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