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정명화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선생님들께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단점에 연연하지 말고 장점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을 자꾸 의식하면 기가 죽고 자신감을 잃게 되죠. 반면 내가 가진 장점에 자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키워나가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음악 영재를 키우는 교육자인 정명화(73)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20일 SBSCNBC 방송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미래를 준비하는 세대에게 이같이 조언했다.

실패와 좌절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 정명화 감독은 좌절을 딛고 더 크게 성장하는 삶을 강조했다. ⓒ SBSCNBC 화면 갈무리

1971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쿨에서 우승한 뒤 세계무대를 누비던 정 감독은 미국 뉴욕의 매네스 음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음악학교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장점을 살리는 교육’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게 예술입니다. 부족한 것은 일생을 통해 채워가되, 실망하고 낙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열심히 연습을 해도 슬럼프(정체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때일수록 위로 올라 갈 생각보다 옆을 살피며 다양한 경험으로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 “실력이 빨리 늘지 않거나 대회에 나갔는데 떨어지는 경우 흔히들 좌절하지만, 그런 실패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 파악하면 더 크게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순탄하게 죽 나아가는 것보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거치면 더 단단하고 폭 넓은 사람으로 클 수 있다는 것이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연주하는 정 감독은 ‘무대에서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하루 5시간씩 맹렬히 연습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이가 드니 젊었을 때처럼 현란한 기교를 쓰는 연주는 좀 힘들지만, 표현이 더욱 풍성해져 훨씬 깊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임기를 넘어서는 획기적 예술 지원 했으면

“예술이라는 게 빨리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5년이 아닌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합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지금도 있긴 하지만, 공적영역에서의 예술지원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 정명화 감독은 “불황기가 되면 국가의 예술지원이 가장 먼저 중단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넘어 긴 안목으로 예술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SBSCNBC 화면 갈무리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서 세계 정상급 연주자 초청 등 행사를 총지휘하는 정 감독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아직은 너무 제한적이고, 경제 불황 등을 이유로 쉽게 없어지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며 “국가지원을 통해 한 달에 20일 이상 연주가 계속되고 아이들도 쉽게 구경을 가다 보니 연주자와 청중의 수준이 함께 올라가더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준비하면서도 ‘좀 더 지원하면 훨씬 더 잘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산의 한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감독은 학부모들이 등록금과 레슨비, 연주회비 등으로 지나친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우리나라 예술 교육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생겨 지원받는 학생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며 “공익재단 등에서 영재들을 발굴해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쟁’과 ‘고아’의 나라에서 온 영재 첼리스트

1960~70년대 대한민국은 전쟁, 가난, 고아를 연상시키는 후진국이었다. 정 감독이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극장에 가면 ‘한국을 돕자’는 모금함이 객석을 돌았다고 한다. 그런 나라에서 온 앳된 연주자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으려면 무조건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었다. 정 감독은 “처음엔 ‘동양에서 온 여자가 얼마나 연주할 수 있을까’하고 얕잡아 보는 게 있었지만,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다들 깜짝 놀랐다”회고했다. 그는 “음식점을 하며 뒷바라지 하던 어머니가 ‘너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늘 강조하셨다”며 “무대에 오르면 내가 최고라는 느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 정 감독은 “가난한 나라에서 유학을 갔지만 ‘너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새기며 ‘무대에선 내가 최고’라는 느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 SBSCNBC 화면 갈무리

세계를 놀라게 한 삼남매 ‘정트리오’

정 감독의 어머니인 고 이원숙씨는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면서도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갔을 만큼 자녀들의 음악교육에 열의가 넘쳤던 사람이었다. 일곱 남매 중에서도 재능이 특출했던 정명화, 정경화(69·바이올린), 정명훈(64·피아노·지휘)은 비슷한 시기에 국제콩쿨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국 <뉴욕타임스> 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콜럼비아 매니지먼트사의 제의로 ‘정트리오’를 결성, 1969년부터 2년간 미국 순회공연을 했고, 이후 개인 활동을 하면서도 1993년까지 연간 2주씩 트리오 공연을 통해 세계 음악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정 감독은 어머니가 미국 시애틀까지 와서 식당을 운영하며 뒷바라지 한 각별한 정성 속에 남매들이 세계 정상의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SBSCNBC 화면 갈무리

정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정트리오의 공연으로 1982년 카네기홀에서의 첫 연주를 꼽았다. 카네기홀은 미국 뉴욕 최대의 공연장으로, 예술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가장 최근에 삼남매가 트리오 공연을 한 것은 지난 2011년 작고한 어머니의 모교인 이화여대 강당에서 추모공연을 연 것이다. 정 감독은 “지금은 각자 젊은 연주자들과 다양한 협연을 하는 재미에 빠져 있지만, 언제든 정트리오로 다시 뭉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경제방송 SBSCNBC는 지난 3월 16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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