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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다 채워질까요
[사람책] 청소년 ①
2017년 06월 12일 (월) 09:15:34 김민지 김이향 기자 lookyh88@gmail.com

중학교 3학년 한우진군(15·가명) 이야기 

저는 여자 공포증이 있는 것 같아요. 분명 재미있는 개그도 준비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었는데 여자애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고 자신감도 떨어져요. 머릿속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6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로요. 그때 제가 실연을 당했거든요. 차라리 고백하지 말걸….

바쁜 스케줄 속 외로움과 공허함

   
▲ 중학생 한우진군의 쉴 새 없는 하루 스케줄. Ⓒ 경향신문

제 스케줄을 생각하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을 것 같은데 매시간 외로움과 공허함이 밀려와요.

이유가 뭐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내주시는 숙제를 해요. 영어 동화책을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 권씩 읽고 단어나 문장을 외우는 거죠. 오후 6시 반부터 8시까지는 영어 학원에서 공부해요. 저녁은 그 후에 먹어요. 원래 저녁을 늦게 먹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밤 9시부터는 인터넷 강의로 취약한 과목을 공부해요. 국어, 사회, 과학,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과정을 듣고 있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제가 국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준비해보라고 추천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영어 학원을 안 가는 수요일에는 구몬 선생님이 오세요. 학습지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을 표시했다가 물어보는 시간이죠. 중국어, 일본어, 한자, 수학을 하는데 일주일 내내 풀어야 정해진 학습량을 끝낼 수 있어요.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냐고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고 어머니가 시키셔서 하는 과목도 있긴 해요. 어머니 말씀에 반항하거나 반발해본 적은 없어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잖아요. 제 자식이 생긴다면 지금 어머니가 하시는 것처럼 교육할 거예요.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선택권을 주는 거죠.

목요일에는 독서 논술 학원을 가요. 첫째 주에는 도입 부분을 생각해보고 둘째 주에는 전개 방향을 잡아서 셋째 주에 글을 완성하고 넷째 주에 토론을 하는 방식이에요. 최근에는 ‘영생’을 주제로 글을 썼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즐거워요. 잠은 밤 11시쯤 자려고 하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자정이 훌쩍 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새벽이 돼야 잠이 잘 오거든요.

고등학생이 되면 폴더폰으로

학교에서 성적은 상위권에 들어요. 전교생 330명 중에 33등 정도. 전 과목 평균 점수는 90점 정도 나와요. 자신 있는 과목은 영어예요. 8~9년째 꾸준히 배웠고 지금은 수능 문제를 풀고 있어요. 수학은 한 학년 정도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수학 시험을 보는데 한 문제 때문에 10~20분을 잡아먹은 적이 있어서 수학은 꼭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국영수(국어, 영어, 수학)는 어느 정도 점수가 높게 나오는데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같은 실기 과목이 좀 약해요. 아무래도 학원에 가거나 학습지를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따로 연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가고 싶은 대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아니면 카이스트예요. 고등학교는 한림예고(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국사 선생님은 만약 뮤지컬 배우가 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두는 거고요. 부모님은 성적을 더 올린 후에 예고 입시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세요.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금전적인 부담 때문일 거예요. 예고는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혼자 준비 중이에요.

고등학생이 되면 휴대폰도 폴더폰으로 바꾸고 학습량도 더 늘릴 각오를 하고 있어요.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는 해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호감 가는 사람이 있지만 여자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도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더 빡세게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공부랑 연애를 병행하는 건 어렵잖아요. 대학에 입학한 후에 서로 시간 날 때 만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조언해주셨어요. 물론 저도 동의하고요. 그런데 제가 가끔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했잖아요. 그럴 땐 친구들과 놀면서 해소하지만 외로움은 다시 찾아와요. 어른이 되어야 해결될 것 같아요.

잠재워졌던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순간

제가 받는 스트레스의 30%는 연애 문제고, 70%는 공부 때문이에요. 화를 잘 내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래가요. 갑자기 욱하는 성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잠재워져 있다가 한 번씩 구멍이 뚫려서 폭발하는 느낌이랄까요?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꿀 때 스스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는 걸 깨달아요. 가장 스트레스받는 순간은 시험 볼 때 분명 열심히 외웠던 건데 머리가 백지상태가 될 때예요. 그리고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 휴대폰에 손이 가는 제가 너무 못마땅해요. 이런 점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담배를 끊은 이유가 담배에 지배당하는 자신이 싫어서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휴대폰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께서는 요가를 해보라고 조언해주셨는데 요가 대신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듣고 사색하면서 풀고 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제가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주위 친구들 몇몇은 그런 경향을 보이긴 해요. 저보다 더 성적이 좋은 애들은 0.5점 차이로 순위가 갈리잖아요. 원하는 등수가 안 나오면 울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친구도 봤어요. 엄마한테 맞는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친구들 대부분이 부모님 때문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담감 때문에 공부 의욕이 더 떨어지는 것 같아요.

주말에는 친구들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제가 시(市)에서 하는 합창단에 속해 있어서 토요일마다 합창 연습도 하고요.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죠. 시작한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그 시간이 저에게 제일 행복한 시간인 듯해요. 합창부가 끝나면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노는데 평일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좋아요. 한 번은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적도 있어요. 뉴스로만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이 안 잡혀서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언론이 변질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요. 광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들이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어요. 생각보다 안전하게 진행되는 시위에 놀랐고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옳다는 걸 깨달았어요. 몇 번 더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못 갔어요. 혹시나 위험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 말씀을 따르기로 했어요.

최근에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글쎄요. 저는 아직 저희 또래 친구들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의 말에 휩쓸리기도 쉽고요. 주위에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조금 있는데 이야기해보면 어설픈 면도 많고 정치 이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투표권은 대학생이 된 후에 가져도 충분할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건의할 거예요

성공한 삶이 뭐냐고 물으셨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성공한 삶 아닐까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해요. 뮤지컬 배우가 된 저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게임하고 작곡하며 여가를 즐기고 뮤지컬 연습도 즐겁게 할 것 같아요.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취미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면 정부에 건의할 거예요. 지금의 교육은 지나치게 지(知)만 강조되고 있어요. 덕(德)이 부족하다는 것은 학교폭력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저희 학교 일짱, 이짱이 저와 같은 반인데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이유로 한 애를 괴롭히고 패딩까지 뺏는 걸 봤어요. 폭행을 당한 다른 애는 전학을 가기도 했고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용기를 잃었어요. 그 아이들이 저랑 친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죠. 체(體) 역시 체육 잘하는 애들 빼고는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수행평가를 할 때나 참여하죠. 교육은 학생들의 지덕체가 골고루 길러지도록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최대한 열심히 살아 제가 꿈꿨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하나 바람은 현재 저랑 진짜 친한 친구는 한 명이거든요. 친구를 많이 사귀면 사귈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지니까 한 명이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평생 살아가면서 믿을 수 있는 친구 10명 정도는 사귀고 싶어요. 지금처럼 공부만 하며 사는 삶은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참고 견뎌내서 꼭 완수하고 싶어요.


단비뉴스팀은 (사)다른백년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기사는 총 7부로 1부(프롤로그)를 제외한 각 부는 사람책과 기획기사로 구성된다. [사람책]에선 한 사람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전한다면 [기획기사]는 현실을 진단하고 원인과 대안을 보여준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편집자) 

이 기사는 (사)다른백년(http://thetomorrow.kr)과 경향신문(www.khan.co.kr)에도 실립니다. 

편집 : 고륜형 기자

[김이향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장, 미디어팀 김이향입니다.
단순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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