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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시대 이집트 지배계층의 초상화
[미디어비평]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근대 이집트 미술 전시회
2017년 06월 03일 (토) 17:32:24 조은비 기자 finestrain@naver.com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기획전 ’예술이 자유가 될 때’가 열리고 있다(전시 기간 4.28~7.30). 전시 부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실제로는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한 작품 외에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던 이집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 관객들의 눈을 더 끄는 것은 서구 초현실주의를 모방한 작품보다 당대 이집트 현실이 반영된 역동적인 작품들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구. ⓒ 조은비

이집트 근대미술의 자유성과 역동성

20세기 초는 각 나라가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역 특성과 서양 근대 문물이 만나 새로운 문화가 꽃피던 변혁의 시기다. 그러나 유럽, 미국, 일본 제국주의 국가 외 제3세계에 속한 민족들은 문물의 수입을 통한 작은 혜택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시기였다. 제국주의가 함께 침투해서다. 이집트와 한국은 둘 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집트는 영국,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당했다. 시기는 달랐다. 이집트는 19세기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민족주의 세력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이 성공해 1922년 독립했다. 한국보다 23년 앞서 독립한 이집트는 식민지배 세력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위한 사회적 여건도 더 일찍 무르익었을 것이다. 1930-40년대 이집트 작가들의 작품들은 이런 배경에서 맺은 결실이었다.

   
▲ (왼쪽) 케말 유시프, 귀족, 1940년대. (오른쪽) 압둘하디 알자제르, 헌장, 1962. ⓒ 국립현대미술관

케말 유시프의 <귀족>과 압둘하디 알자제르의 <헌장> 속 등장하는 지배계층은 초록색이다. 이집트인들에게 초록색은 신(神)의 색을 의미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와 저승의 신으로 숭배된 오시리스를 초록색으로 그렸던 관습이 굳어져서다. 그러나 근대 이집트 미술 작품에서 초록색으로 상징되는 상류계급은 부정적이다. 유시프는 음울하고 깊은 청록색을 사용해 귀족을 그렸다. 알자제르가 그린 초록빛 신도, 초록빛 신을 우러러보고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음울한 모습이기는 마찬가지다. 표정과 구도도 그렇지만 특히 음울한 청록색조는 당대 이집트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 지배세력과 결탁해 민중을 수탈한 이집트 지배세력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작품 속에 반영돼 있는 것이다.

   
▲ (왼쪽) 압둘하디 알자제르, 시민합창단, 1951. ⓒ 국립현대미술관, (오른쪽) The Green Madman, 1951. ⓒ Pinterest

알자제르는 하층민 출신으로 이집트 민중이 당하는 차별과 억압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시민합창단>은 근대 시기 불평등과 억압에 짓눌린 이집트인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민중미술과 비교되며 미디어에 가장 널리 소개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지 않은 알자제르의 <녹색 미치광이 (The Green Madman)>을 보면 대놓고 초록색을 부정적인 색조로 비틀어 풍자했다. 알자제르는 예술을 통해 지배층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낸 예술가다.

이집트 역사 해석 결여된 전시 기획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취임 후 그가 처음 주도적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집트 문화부와 샤르자 미술재단이 협력하여 기획한 이 전시는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근대 이집트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마리 관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집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롭지만 희귀한 표현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전시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힘 때문에 관객들은 작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작품을 전달해주는 큐레이션 부분이 미흡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에서 열리는 근대 이집트 미술을 다룬 전시를 서구 초현실주의 사조로 포장해 전시했다. 마리 관장은 “서구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비서구 미술을 적극적으로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포부를 여러 매체에서 밝혔다. 비서구 미술을 설명하는 방법이 서구 유럽의 미술사조인 것은 아이러니다. 서구에서 일어난 초현실주의 운동으로 근대 이집트 미술을 끼워 맞추려 한 것이다.

   
▲ 바르토메우 마리의 첫 기획전 이집트 초현실주의 전시에 거는 기대가 컸지만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전시였다. ⓒ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역사와 민족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많은 근대 이집트 미술 작품들이 50년 이후에도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은 이 작품들이 당시의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작품이 제작되던 시기의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은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초현실주의 하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에게 ‘이집트 초현실주의’라는 한정적인 전시 타이틀은 오히려 함께 전시된 다른 작품들을 관람하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시대 현실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사조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하려는 착각을 유도할 수도 있다.

좋은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다. 현실을 떠난 예술작품이 힘을 잃듯이, 아무리 참신한 작품을 미술관 안에 가져다 놓는다 해도 관객이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기획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집트 근대 미술을 초현실주의로 포장한 이번 전시 기획은 실패작이다. 이집트 근대 미술의 역동성을 서구적 시각으로 희석시켰기 때문이다.


편집: 남지현 기자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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