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직접 민주주의

▲ 박기완 기자

지난 4월 1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실험이 흥미롭다. 200명 시민의 목소리로 법을 만드는 국민의회 편이 전파를 탔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IT 노동자,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직장인 등 주변 평범한 시민의 애환을 듣고 법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MC 유재석을 비롯한 진행자들의 깔끔한 위트가 저 먼 세상의 정치를 시민 눈높이로 끌어내렸다. 대통령과 국회도 하지 못한 일을 방송국의 한 예능프로그램이 해낸 것 같아 신선하다.

▲ 지난 4월 1일 방영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박주민 의원과 한 시민이 '임산부 주차편리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시민은 지난 박근혜 정부의 불통 정치에 억눌렸다. 세월호, 메르스, 옥시 가습기... 큼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한 시민이 대화를 바랐지만, 대통령과 국회는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정부는 국정교과서, 12.28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 국민과 합의되지 않은 사안들을 밀어 붙였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시민의 소리는 묻히고, 대통령과 측근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다. 답답해진 시민이 모여 사회변화에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 촛불이다.

기원전 461년 고대 아테네에서는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중 하나가 민회다. 민회는 노예를 제외한 18세 이상 남성들이 직접 참여해 법을 만드는 아테네 최고 의결 기구다. 민회는 외교문제, 재정, 군사 작전 등 나라의 중대사와 관련된 문제를 의결했으며, 범죄 재판까지 맡았다. 민회의 업무를 관리하는 500인 대표회의, 보울레(Boule) 의원은 추첨을 통해 시민 누구나 될 수 있었다. 그나마 공직자의 임기는 1년이었고, 연임은 제한됐다. 정치인의 권력독점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장미 대선이 막을 내렸다. 이제 권력 독점의 폐해가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준 정치 형태를 대통령이나 의원들이 바꾸기란 쉽지 않다. 국회나 청와대에서 머뭇거리며 손대지 못하는 개헌논의나 선거법을 고대 아테네처럼 ‘시민의회’ 기구를 꾸려 풀어간다면 어떨까? 경희대 공공대학원 김상준 교수는 녹색평론에서 “시민의회는 이미 세계 헌법사, 헌정사의 주요 개념이 되어있을 만큼 충분히 검증된 제도.”라며 시민의회의 도입을 역설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최순실과 김기춘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은 구속된 채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지난 6개월 동안 끊임없이 촛불을 들었던 주체적 시민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민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지역 편 가르기와 비열한 경쟁의 정치는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 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시민이 원하는 권력구조와 민주사회를 다듬어갈 ‘시민의회’를 향한 무한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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