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EBS 토크쇼 '까칠남녀' 리뷰

2016년 5월 강남역의 한 노래방. 한 남성이 남녀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여성을 뒤따라 들어간다. 잠시 뒤, 남성만 빠져나온다. 먼저 들어갔던 여성은 칼로 난도질 된 시체로 발견된다. 사건 직후 체포된 살인범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해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여성들은 '여성 혐오 범죄'에 분노하며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국화를 놓으면서 피해 여성을 추모했다. 이후 여성 혐오를 그대로 남성에게도 반사하여 적용하는 ‘미러링’을 사회 운동 전략으로 삼은 메갈리아의 활동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불러온 확대해석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마라”며 여성들과 충돌을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선 여혐·남혐으로 몰고 가지 말라는 피켓을 든 일베 남자와 여자 중학생이 추모자들에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 속에 숨겨져 있던 성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성차별에 까칠한 남녀들이 나섰다 

지금까지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 가족 안의 성 역할, 여성·남성 혐오 같은 젠더 관련 문제점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괜히 튀어서 좋을 건 없고 잘못하다간 사회에서 더 큰 차별을 받을까 걱정했다. 3월 말 처음 방송한 EBS <까칠남녀>는 지금까지 쉬쉬하던 남녀 성 논란에 직설적이고 유쾌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 이유 없는 까칠함은 없다. 기울어진 세상에 대한 까칠함을 말하는 <까칠남녀>. © <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는 우리 일상 속에서 외면되어 왔던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 쇼이다. 우리 사회 속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성차별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까칠한 토크를 통해서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려는 프로그램이다. <까칠남녀>는 복잡하고 예민한 ‘성(性)’이야기를 예능 장치를 활용해 쉽고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 4월 17일 방영된 ‘김치녀’편의 ‘X의 방’에선 ‘김치녀’만 만나온 남자가 출연했다. © <까칠남녀> 갈무리

토크가 진행되는 스튜디오 후면에는 ‘X의 방’ 세트가 있다. 4월 17일 방영된 ‘김치녀’편의 ‘X의 방’에는 한 남자가 식탁 앞에 앉아 있다. 남자는 불안한 듯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식탁 위엔 샐러드와 김치가 놓여 있다. 패널들이 X의 방을 둘러보면서 그날 얘기할 주제에 관련된 단서를 찾는다. X의 수첩 속 수많은 여자들과의 취소된 약속, 사발에 담겨있는 김치, 수많은 영수증이 X의 방에 놓여있다. 패널들은 “바람둥이는 아닐까?”, “수많은 여성을 만나며 쓴 돈에 대해 회한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상상하다 주제인 ‘김치녀’를 유추해내고, 토크가 시작된다. 첫 회엔 심혈을 기울인 세트를 활용한 유추와 재미 비중이 작아서 아쉬웠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세트를 활용하는 시도가 신선하다.

▲ 우리나라 광고 속에 숨어있는 여성 혐오적 표현 사례. © <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는 국내·외 사례들을 활용한다. ‘김치녀라 부르지 마라’편에서는 국내 광고 속에 있는 여성 혐오 표현들을 보여주며 현실을 드러낸다. 패널 정영진씨는 “광고 제작자들이 이런 광고를 만들었다는 것은 여성혐오가 엄연한 현실이고 그만큼 공감할만한 현상이라는 증거다”라고 설명한다. 서민씨는 “광고사 측에서 홍보 효과를 위해 논란을 만든 것뿐이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펼친다. 실제 국내 광고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시청자들은 현실 속 지나쳤던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 각성하게 된다.

토크는 ‘X의 방’에 있던 남자를 토크 공간으로 초대하며 진전된다. 남자는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은 모두 ‘김치녀’ 였다고 주장하는 실제 사연남이다. 그는 “만났던 여자가 피부 관리실로 자신을 불러 결제를 하도록 유도했다”, “소개팅에서 만났던 여자는 경제적으로 의존하려는 여자였다”며 자신이 만났던 모든 여자들이 ‘김치녀’였다 증언한다. 남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시청자는 공감하기도 하고, 모든 여자들을 싸잡아서 ‘김치녀’라 하는데 분노하기도 한다.

▲ 다양한 성(性) 가치관을 가진 패널들의 까칠한 토크는 성(性)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다. © <까칠남녀> 갈무리

패널들의 조합이 신선하다. 커리어 우먼의 대명사인 박미선이 MC를 맡고 중성적인 성향을 가진 서유리,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 페미니스트 남성 서민, 에로 영화의 거장 봉만대,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손희정, 빅데이터 전문가 정영진이 패널로 출연한다. MC를 제외하고 패널들은 1:1의 성비를 보여준다. 은하선씨는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분노하며 이야기를 하고, 서민씨는 자신도 남성이지만 여성들의 편에서 여성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정영진씨는 전형적인 남성의 표본으로 나와 발언을 할 때 가끔 여성 패널들의 분노를 산다. 서유리씨는 여성이지만 남성들의 의견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모은 것은 균형 잡힌 시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제대로 된, 진화한 성(性)교육 프로그램

▲ 성(性)차별에 관련된 적나라한 표현을 모두 드러내어 잘못된 표현을 알려준다. © <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는 성(性)을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대상으로 다루어 온 어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고 깨어나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X선비, X빨, X슬아치, 체외사정’과 같은 성에 관련된 단어들을 그동안 방송에서 금기였다. <까칠남녀>는 다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까칠남녀> PD들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녹화 때는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성적 표현들이 많은데, 방송은 편집이 된 것이다. 성을 대명천지에 끄집어내 토론하는 불편함은 교육방송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성 차별, 성 혐오적인 문제는 남녀노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해야 할 문제이다. ‘김치녀’, ‘X슬아치’ 같은 여성 혐오 표현이 성차별에서 비롯되고 심각한 성 불평등문제를 일으키는 현장을 가감 없이 드러내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 2015년 발표된‘학교 성교육 표준안' 속 여성과 남성에 대한 잘못된 성 인식. 현재는 삭제 상태. © <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성교육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지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5년 교육부가 마련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性)인식을 심어주는 내용까지 들어있었다. 현재는 수정되었지만, 성폭력 예방법으로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말기, 지하철에서 치한이 치근덕대면 발을 밟으라는 등 비현실인 내용을 제시해 비난을 받았다.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의 장이 필요한 때! <까칠남녀>가 등장했다.

<까칠남녀>는 청소년들에게 성(性)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며 올바른 성(性)문화를 알려 줄 수 있다. 2화 ‘피임전쟁’편은 청소년들이 콘돔 대신 랩과 비닐을 사용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위험성을 강조한다. ‘체외사정은 피임법이 아니다’, ‘여성 경구 피임약은 위험성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콘돔만이 성병을 예방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잘못된 피임의 위험성과 피임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까칠남녀>는 가장 EBS적이면서 진화된 프로그램 포맷인 것이다.

젠더 간 소통의 공론장 <까칠남녀>

▲ <까칠남녀>는 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소통의 공론장이 될 것이다. © <까칠남녀> 갈무리

<까칠남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드러내 이야기하지 않았던 성(性)문제들을 가감 없는 표현과 솔직한 의견으로 드러낸다. 토크 형식으로 성별간의, 세대 간의 생각 차이와 오류를 알게 된다. 생각의 차이를 알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 <까칠남녀>는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까칠한 톡 까톡!’으로 방송 내용을 정리한다. 서유리에게 “김치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면 김치녀 성향이 있는 거다”라는 발언을 했던 정영진씨가 ‘김치와 된장을 모욕하지 마라!’ 라고 이야기 하며 모든 여성들을 '김치녀'라고 통칭하지 말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다. 프로그램은 패널의 생각이 바뀐 모습이 보여주면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의 정상적 역할, 성 차별 문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제대로 인식하고 함께 고쳐 나가야 한다. <까칠남녀>의 까칠한 토크는 남성중심으로 기울어진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소통의 공론장이다. 24일 오후 11시 35분 EBS에서 방영될 ‘시선 강간’편이 기다려진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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