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단양‧제천 시멘트 분진 피해자와 UN조사단의 만남

“숨이 차서 거동이 어렵고, 밤에는 입이 말라 물을 15번 정도 적셔야 잘 수 있습니다. 크게 아픈 병도 아니지만, 쉽게 죽는 병도 아니어서 더 고통스러워요.”

지난 20일 오전 11시쯤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영천리 마을회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는 이영환(81·제천시 송학면 입석1리)씨가 쉰 목소리에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유엔(UN)의 바스쿳 툰작(Baskut Tuncak·42) 유해물질특별보고관과 통역 등 일행 4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비슷한 연령대의 피해 주민 7명과 취재진 등 20여명이 둘러앉은 방은 움직이기 불편할 만큼 빽빽했다. 

▲ 마을주민들의 피해증언은 통역관이 발언을 제지하고 통역을 이어가야 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졌다. ⓒ 배지열

이날 만남은 국내 시민단체들이 시멘트 공장 등 환경 피해에 대해 국제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함에 따라 UN이 공식적으로 전문가를 파견해 이뤄졌다. 단양·제천 지역에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아세아, 현대, 한일, 성신 등 4개 시멘트 공장이 생산 활동을 해왔다. 주민들은 지난 2007년부터 시멘트 중금속 등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호소했지만 해당 회사들은 피해 인정을 거부했다. 2010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실시한 시멘트 공장 주변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양‧제천 지역 주민 2262명 중 분진으로 인한 진폐증 환자가 34명, COPD가 205명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이들 주민에게 총 2억7000여만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했으나 시멘트 회사들은 채무부존재 소송으로 맞섰다. 주민들은 2013년 1심 판결에서 승소했지만 지난 5월 28일 2심에서는 패소했다. 

쉽게 죽는 병 아니어서 더 고통스러워  

이영환씨는 제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집 근처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공장에서 20여년을 일했다. 그는 환경부 주관으로 2011년 충북대병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야 자신의 병이 COPD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폐증을 앓는 김정운(75‧제천시 송학면 입석1리)씨도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예전에는 손가락 세 마디만큼의 가래가 나왔어. 그런데 이제는 가래에서 빨간 피가 나와.”

툰작 보고관은 앉을 곳이 없어 방 밖에 서 있던 김귀녀(61‧여·단양군 매포읍 영천리)씨 등 2명을 들어오도록 한 뒤 힘든 점이 뭔지를 물었다. 김 씨는 “폐기물 타는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분진도 많이 날려 마을 주민들은 모두 기침을 달고 산다”고 답했다.

▲ 이영환(사진 중앙)씨는 “지금도 우리 집에는 시멘트 가루가 쌓인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 배지열

이날 주민들의 증언을 옮기는 과정에서 30대의 여성 통역이 가장 많이 썼던 표현은 “이게 말이 됩니까(Does it make sense?)”와 “옳지 않습니다(It’s unfair)”였다. 정부가 피해를 인정했는데도 2심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민들의 호소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피해 주민들은 현재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강원대 병원에서 검진 서비스와 약을 공급받고 있다. 정부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무료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2심 법원은 “시멘트공장의 분진이 진폐와 COPD의 원인이 됐다는 인과관계를 피해자들이 입증하지 못했다”며  회사들의 손을 들어 줬다. COPD를 앓는 이용환(61‧제천시 송학면 입석1리)씨는 매일 가지고 다니는 약봉지를 흔들며 “치료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2심 법원 ‘인과관계 입증 못했다’며 주민 패소 판결  

진폐증을 앓는 김정운씨는 충북대, 서울대, 강원대 병원으로부터 확진을 받았고 정부 조사에서 시멘트 공장에 책임이 있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2심 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이제 소송비용까지 물어내야 할 형편이 됐다. 김 씨는 “먼지는 내가 먹고, 피도 내가 토하는데 (기업의) 재판비용까지 내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가래 끓는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 김정운(사진 왼쪽)씨가 법원 판결에 대해 억울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 배지열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국장은 “어르신들이 소송을 통해 금전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들어간 소송비용이 1000만원을 넘고, 패소비용도 그만큼 지불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영환씨는 패소한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1200만원의 고지서를 들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 씨는 노령연금으로 받는 16만원이 주된 생계비라고 한다. 

툰작 보고관이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용환씨는 “차라리 197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옛날 시멘트 분진은 눈에 보이기라도 했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분진이 미세먼지 수준으로 나오니 눈에 안 보이는 불안이 커. 악취도 훨씬 심해졌어.”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요즘 시멘트 공장들은 제조과정에서 폐타이어, 고무, 전선, 피복제, 하수 침전물 등 75가지 종류의 폐기물을 태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해 물질이 나오지만 환경보건법상 건강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강제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다. 이씨는 “매일 밤을 냄새와 호흡 곤란에 시달린다”고 한탄했다. 제천환경운동연합 박광태 집행위원장은 시멘트회사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일본산 폐기물까지 들여와 태운다며 이를 허용한 정부를 비판했다.

▲ 제천환경운동연합은 시멘트 공장 측과 정부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 배지열

조사결과 UN인권이사회 보고, 23일 국내 기자회견도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면담이 끝난 뒤 UN보고관 일행은 시멘트 회사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공장 지역으로 향했다. 툰작 보고관은 “나는 조사관이라 직접 견해를 밝힐 순 없지만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UN 조사단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면담을 마무리했다. ⓒ 배지열

툰작 보고관 일행은 지난 12일 국내 활동을 시작한 후 국내 대표적 노후 핵발전소인 경주 월성원전의 인근 주민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도 만났다. 2주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내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피해내용과 UN차원에서 우리나라에 취할 수 있는 권고사항들이 담긴다. 이들은 관련 기업과 정부관계자들까지 만난 뒤 오는 23일 조사결과를 종합해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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