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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진실은 수단이 아니다
[역사인문산책] 역사
2016년 12월 26일 (월) 14:29:25 박진우 기자 danbi2990@gmail.com
   
▲ 박진우 기자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국가의 뉴스와 오락을 담당하는 진리부 공무원이다. 조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논문이나 뉴스를 이런저런 구실로 수정한다. 예를 들어 빅 브라더가 예언한 내용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뉴스의 내용을 고쳐 실현된 것처럼 꾸민다. 그렇게 <타임스>의 특정 호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정정 기사를 모으고 대조가 끝나면 신문을 다시 찍는다. 소설에만 등장하는 과장된 얘기로 보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일본은 17~19세기까지 문헌 연구를 통해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웠다. 4~6세기에 걸쳐 일본이 한반도 남부 지방에 통치기구를 세워 식민지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이는 20세기 초 일본 제국이 조선을 병합해 식민지로 지배하는 정당화 논리로 쓰였지만, 증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왜곡된 주장임을 인정하고 사학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금(金)보다 옥(玉)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중국 각지에 조성된 박물관 어딜 가도 고대 유물에 금제품은 거의 없고 옥이 주를 이룬다. 여론 조사를 통해 선정한 중국의 20대 문화재 중 옥 제품이 4개나 되는 점도 옥과 중국 문화의 연관성을 잘 말해준다. 그런데, 옥 문화의 시초가 바로 고조선을 비롯해 우리 역사와 문화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홍산문화(紅山文化)다. 그래서 동북공정을 통해 홍산문화권을 중국 역사에 흡수해 중국 역사의 유구한 전통과 우수성을 확보하려는 속셈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국정 교과서를 보자.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이란 단원 아래 ‘박정희 정부의 출범과 경제 개발 계획 추진’을 다룬다. 이어 ‘계속되는 안보위기’, ‘수출 주도의 경제 개발 체제’, ‘유신 체제의 등장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 내용이 이어진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짓밟은 독재정권의 합리화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식 사진도 교과서에 포함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으니 대를 이은 미화인가?

   
▲ 한국사가 침몰하고 있다. ⓒ Flickr

역사 왜곡은 단순한 사실 왜곡이 아니다. 역사 왜곡을 통해 지배세력이나 권력자의 그릇된 신념이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역사라는 권위 아래 묵인된다. 황당한 역사 왜곡을 반대하는 집단 기억은 긴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인간의 감각과 기억은 그리 미덥지 않다.

1980~90년대 미국 사회에 ‘기억회복 운동(Memory recovery movement)’이 널리 퍼졌다. 당시 심리치료사를 찾아갔던 많은 여성이 심리치료를 받던 중 어린 시절 부모나 친척에게 당한 성추행 기억을 되찾았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치료사들은 성추행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에 무의식이 그 기억을 억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는 그 기억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냈다.

개인의 기억조차 쉽게 조작될 수 있는 불안정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사회의 기억인 역사 또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에서 주인공 데이비드는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기 위해 고의로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아 죽는다. ‘사형제도 폐지’라는 진실은 중요하지만 ‘인명의 소중함’이란 또 다른 진실이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백번 양보해 ‘올바른 국가관’이라는 목표를 인정한다 해도 ‘사고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국정 교과서 역사기술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역사를 지배체제 구축의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만 높여줄 뿐이니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희영 기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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