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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한글 만들었나... 세종정신
[역사인문산책] 외교
2016년 12월 20일 (화) 11:09:37 곽호룡 기자 avoidapuddle@daum.net
   
▲ 곽호룡 기자

리영희는 자서전 <역정>에서 자신의 청년 시절을 되돌아본다. 한국전쟁 피난길에 그의 가족은 먼 친척에게 잠시 지낼 거처를 부탁한다. 친척은 매몰차게 가족을 내쫓는다. 병든 동생은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당시 리영희는 통역장교로 전선에 나가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휴가를 나와 어떻게 그렇게 야박하냐며 따져 보지만 다 지난 일이다. 전방에서 추위와 공포, 그보다 더 무서운 굶주림에 시달린다. 며칠을 쫄쫄 굶을 때 병사 한 명이 아껴둔 비상식량을 내민다. 그는 그때 먹은 맛과 병사의 따뜻한 마음이 잊히질 않는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전쟁이 끝난 뒤 사방으로 병사를 찾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란 갚아야 할 원수를 갚지 못하고 산다.” 은혜 역시 그렇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개인사도 그러한데 국가 간 관계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국제정세는 힘의 논리로 수시로 바뀐다. 영원한 우방일 것 같던 미국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과 유지비를 문제 삼아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 건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당선 후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미국과 관계는 변덕스러운 그의 성격처럼 불확실하다. 영원한 원수일 것 같던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 일본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과 손을 잡자 외교정책을 180도 바꾸며 100년 전 우리를 짓밟던 원수의 모습은 오간데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70주년 전승기념일에 참석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외교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다. 국민적 공감대나 지역사회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합의 과정은 없었다. 마찰은 없을 것이라는 형식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중국정부는 한류드라마를 제한하고 한국행 유커를 통제하는 '한한령'으로 보복의 첫발을 뗐다. 중국 무역 흑자가 대한민국 전체 무역흑자의 반 가까이 되고, 중국인 관광객이 풀어 놓는 현금이 시내 유통 상권의 큰손이 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 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히 우리 문자를 만드는 개념을 넘어 중국 명나라와 외교 문제도 얽혀 있었다. ⓒ flickr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명나라와 충돌이 불 보듯 뻔했다. 한자가 아닌 한글을 만든다는 것은 조공을 바치던 종주국에 대한 도전이다. 세종은 외교 마찰은 최대한 피하면서도 조선이 자주성을 갖춘 독립국임을 천명하는 한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불어 세종실록에 따르면 “친히” 자신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문구를 넣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당시 명과 몽골이 국운을 건 정쟁을 벌이고, 명이 사사건건 조선 내정에 트집을 잡던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세종의 주체성과 책임정신은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 왕들은 세종의 정신을 잊고 명나라에 “충성 충성 충성”하면서 한글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켰다. 대외적으로도 한족 문화에 빠져들어 북방에서 커가는 유목민족의 존재나 일본의 전쟁 야욕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임진왜란의 치욕과 병자호란의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禮) 굴욕을 당한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미국의 군사보호 아래 또 미군의 원조 아래 살던 아버지 시대의 '시혜적 관계'를 못 잊는 것일까?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이 세종 이후 조선의 일방적인 대중국 사대와 닮았다.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망국 일보 직전에 몰린 선조와 인조의 모습을 떠올려 준다. 내정에서도 국정 농단의 모든 잘못을 최순실 개인의 일탈로 돌릴 뿐 책임 지려하는 태도도 없다. 강대국과 마찰을 피하면서도 자기 책임 아래 자주성을 지킨 세종. 그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정반대의 행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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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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