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혁신 현장을 가다] 한국경제신문 뉴스래빗

뉴스가 쏟아진다. 드라마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사안의 심각성만큼이나 기사량도 다른 이슈를 압도한다. 하나의 이슈를 끝까지 따라가며 지켜보는 것은 독자에게 큰 인내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기사를 꾸역꾸역 소화해내는 독자를 위해 보다 간결하게 핵심을 전하는 일목요연한 뉴스는 없을까?

‘뉴스래빗(NEWSLAB-IT)’의 ‘오늘의 #최순실’ 기획 기사는 매일 최순실과 관련한 이슈들을 한눈에 보기 좋은 데이터로 가공해 독자에게 선보인다. 네이버 정치 뉴스에 담긴 키워드를 분석해 ‘4대 키워드’와 ‘떠오르는 키워드’를 뽑고 민심의 변화를 읽는 방식이다. 2007년 박근혜 대선 후보 검증 뉴스부터 시작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사건들을 시간 흐름에 맞춰 구성한 타임라인도 있다.

▲ 시시각각 변하는 '최순실 이슈'를 하루하루 데이터로 모아 간결하게 큐레이션 해주는 '오늘의 #최순실' 기획 기사. © 뉴스래빗 웹페이지 화면 갈무리

2014년 5월 미국 최대 일간지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혁신 보고서가 공개됐다.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를 외친 보고서는 디지털 혁신의 물결 속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했다. 반향은 컸다. 국내외 언론 종사자들은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분석하고 다양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모바일 전용 콘텐츠도 개발에 속도를 더했다.

‘뉴스래빗’ 역시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래빗’이라는 이름처럼 파란 토끼를 마스코트로 하는 ‘뉴스래빗’은 연구소(LAB)에서 실험하듯 ‘뉴스를 실험’하는 <한국경제신문>의 디지털미디어 팀이다. 데이터 저널리즘이나 GIF, 라이브방송 등을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뉴스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생산한다. 

“뉴스를 R&D 하겠다”

2015년 9월 뉴스래빗이 던진 출사표. 디지털 뉴스를 연구하고 개발하겠다는 다짐이 선명하다. 신문사가 본래 뉴스라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캐치 프레이저가 더욱 독특하다. 처음부터 팀을 꾸리고 이끌어 온 뉴스래빗 김민성 팀장은 “R&D팀은 선행 연구를 하는 부서인 만큼 새로운 형태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기존 뉴스에 적용하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뉴스를 생산하는 방식도 새롭다. 데이터나 영상, 비주얼, 소셜 부문으로 나눠 전담 에디터를 뒀다. 에디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취재기자와 다름없다. 콘텐츠 전반을 책임지는 총괄 에디터는 기존 뉴스 생산 체계에서 편집국장에 해당한다. 김 팀장은 에디터를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에서도 올해 홈페이지 에디터나 사진·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전문 에디터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뉴스룸 공간을 꾸몄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뉴스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바꾸기 위한 조치다.

“기존 기사 형태에 영상 몇 개 들어갔다고 해서 새로운 뉴스가 되는 건 아닙니다. 또 아무리 스토리텔링을 새롭게 한다 해도 예전처럼 사진 한 장 들어간다면 이것도 구태의연한 것이죠.”

▲ '오늘의 #최순실' 기획 기사를 작업하는 강종구 데이터에디터. © 박상연

“이론가들은 넘쳐나는데 실천가들이 없다”

끊임없이 실험한다. 그리고 한계를 깨닫는다. “가만히 앉아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를 평가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건 공허한 시대”라고 김 팀장은 꼬집는다. 뉴스래빗은 연구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워 묵묵히 걸어나간다. 1년 2개월 동안 뉴스래빗의 뉴스 실험은 200건 정도. 뉴스 분류만도 17가지다. 

뉴스래빗은 웹페이지를 주요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박근혜 대통령 담화나 미국 대선 등 굵직한 이슈를 앞두고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라이브(LIVE) 설문조사를 영상 포맷에 녹여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주말 집회 현장에는 360도 가상현실(VR) 카메라를 들고 현장의 생생함을 전한다. 추석 귀성길 정보를 숫자나 그림 등을 포함한 인포그래픽으로 보기 쉽게 정리하기도 했다. 기사 곳곳 배치된 GIF 파일은 독자들의 뉴스 소비를 더욱 즐겁게 해주는 요소다. 친구가 말을 거는 듯한 기사 문법도 친근하게 뉴스를 소개하는 뉴스래빗의 강점이다.

새로운 뉴스 형식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적극적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1980년 초부터 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통해 일상 어느 때나 인터넷과 연결되어 산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들의 시청 습관에 따라 TV 생방송보다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팀장도 밀레니얼 세대가 향후 미디어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래빗의 타깃 독자 역시 밀레니얼 세대다. 실제로 뉴스래빗의 독자 분석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20대 초에서 30대 중반의 독자다.

뉴스래빗을 이끄는 '살려야 한다' 정신

“정말 좋은 데스크는 ‘킬’ 한마디에 팀원들의 아이템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리는 데스크입니다. 개인이 무한히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작은 아이디어라도 함께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아닐까요.”

뉴스래빗은 협업을 중시한다. 에디터들이 전문 범위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 생산 방식을 선호한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뉴스래빗의 결과물도 기존 한국경제의 콘텐츠와는 거리가 있다. 소외된 동물이나 예술가, 약자, 가지지 못한 자들의 현실을 어루만진다. 

뉴스래빗 콘텐츠 중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뜻처럼 우리 주변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조명한다. 나영석 PD의 ‘뇌’나 산악인 엄홍길의 ‘발’ 등을 소재로 다룬 ‘ㅁㅗㅁ짱’은 평소 쉽게 지나치는 특정 신체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청년표류기’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고 응원과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 뉴스래빗 웹페이지에서 다양한 뉴스 실험을 엿볼 수 있다. © 뉴스래빗 웹페이지 화면 갈무리

김 팀장은 뉴스래빗이 주력하는 소외나 약자,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콘텐츠들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저널리즘의 본령은 약자를 보호하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는 것,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다. 

“뉴스래빗은 위로와 위안이 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부조리한 점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독자들은 기사를 보고 힘이나 응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결책까지 제시한다면 금상첨화겠죠. 이것이 저널리즘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란 토끼의 뉴스 실험은 계속된다

“일반 독자뿐 아니라 디지털 저널리즘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저희 뉴스래빗의 실험 결과를 보여주며 ‘누구든지 해볼 수 있다’는 마음을 심고 싶습니다. JTBC나 오마이뉴스, 메디아티 등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계속 노력하는 곳들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뉴스래빗은 시즌 1이다. 숱한 뉴스 실험과 연구에 많은 평가와 피드백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현재 뉴스래빗 웹페이지는 그들의 실험 결과가 오롯이 펼쳐져 있는 상태다. 뉴스래빗은 내년 상반기부터 새롭게 탈바꿈한다. 형식을 기준으로 뉴스를 분류하고, 뉴스래빗만의 고민과 실험을 독자가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웹페이지를 재구성할 예정이다.

“더 이상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가디언의 미디어 혁신만을 따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형 미디어 실험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가 했다고 해서 우리 언론들도 무작정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실험적 모델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직접 다양한 연구를 하는 거죠. 그 결과를 공유하고 배우면 한국 미디어 토양에 맞게 뉴스 실험을 하고 또 정리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뉴스래빗도 뉴스 실험을 계속해 가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모델 중 하나가 됐으면 합니다.”

뉴스래빗 웹페이지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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