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우주의 크리스마스' 김경형 감독

제천영상미디어센터 8주년 기념 영화로 상영

지난 10일, 개관 8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제천영상미디어센터(이하 제영터)에서 김경형 감독의 <우주의 크리스마스>를 상영했다. 제영터는 시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미디어 읽는 법과 제작기법 등을 가르칠 목적으로 설립됐다.

제천을 포함한 전국 40여 개 미디어센터는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를 조직해 사회구성원의 자유로운 소통과 문화적 삶을 위한 다양한 공헌사업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날 영화 상영 뒤 마련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김경형 감독과 영화의 뒷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제천시 청전동에 자리한 제천영상미디어센터봄. 옛 시의회 건물을 개조했다. Ⓒ 한국관광공사

세 명의 성우주가 등장한다. 19, 26, 38살의 여성들이다. 우연히 동명이인이 아니라 모두 같은 사람이다. 흔히 창작의 소재로 쓰이는 평행이론이지만 영화 <소스코드>처럼 그럴듯한 과학적 배경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그저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한다.

상황을 깨닫고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앞으로 할 일을 논의한다. 19살 우주는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할까? 26살 우주는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고흐의 도시 아를로 떠나야 할까? 26살 우주가 '언니가 제 미래잖아요'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묻자 38살 우주가 답한다. "나는 나지, 당신들의 미래가 아니야."

엄마가 죽고 난 뒤 크리스마스 전까지 소박한 카페를 열기로 마음먹었던 38살 우주는 살아있는 과거로부터 후회를 강요받는다. 영화는 미래를 고민하는 어린 우주가 아닌 과거를 회상하는 늙은 우주의 관점에서 천천히 흘러간다.

▲ 영화 <우주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 뿌리깊은나무들(주)

"촌스러운 문어체는 옛것의 회복"

올해 55살인 김경형 감독에게는 초등학생 딸이 있다. 가끔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면 삼사십대 엄마들을 만난다. 그는 그녀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아이들 과외, 학원, 아파트값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분들을 볼 때 제가 나이가 좀 있으니까, 여전히 젊고 예쁜데 꿈을 꾼 적도 없는 듯이 보이고, 분명히 젊은 시절에는 사랑도 하고 그랬을 거 같은데 사랑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이제는 뭐 아이들 학원 보내, 어떻게 좋은 대학 보내, 과외를 어디를 보내, 아파트값이 올라가니 마니 하더라고요. 엄마들이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자라는 건데. 그런 생각이 38 우주를 만든 거죠."

▲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김경형 감독. Ⓒ 박진우

그래서 김 감독은 크리스마스라는 시간 설정을 통해 38살 우주에게 '그 전까지 카페를 열어야지'라는 절박함을 부여했다. 스스로 계획한 목표를 좇는 과정에서 잃었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느낌과 '우주'라는 이름의 울림 또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우주의 말복'은 좀 이상하잖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극 중 문어체 대사가 많다는 관객의 질문에 김 감독은 반가운 듯 대화를 이어갔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저예산 영화다 보니 상당한 부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하나는, 요즘 문어체 대사에 대한 거부감이 크잖아요. 근데 4, 50년대 한국 영화 대사에 문어체가 많거든요. 문학적이고 고전적인 느낌들. 가령 이만희 감독의 <검은 머리>는 누아르 영화인데도 대사는 셰익스피어 같아요. 저는 되게 좋거든요? 근데 요새는 문어체 대사가 조금만 나와도 촌스러워하잖아요. 애들 쓰는 말 막 뱉고, 욕 튀어나오는 게 트렌드예요. 저도 그런 거 해봤죠.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거기서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저예산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게 장점이거든요."

김 감독은 차기작에서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밝히며 이야기를 마쳤다. 한편, 개관 8주년을 맞은 제영터는 영화상영, 사진전, 무료강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제천영상미디어센터 홈페이지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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