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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 번째 '씬'은 시작됐다
[역사인문산책] 자백, 픽미, 빙의
2016년 11월 12일 (토) 23:47:59 기민도 기자 kmdwhat1@naver.com
   
▲ 기민도 기자

첫 번째 '씬'인 대통령의 90초짜리 자백을 보며 영화 <자백>이 떠올랐다. 뉴스타파의 최승호PD가 만든 <자백>에서 검찰과 국정원은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시나리오를 짠다. 주인공은 동생 유가려. 오빠가 간첩이라는 강요된 자백을 통해 반공영화가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자백은 뒤집히고 영화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나아간다. 반전을 만든 주인공은 기자와 변호인. 그들은 중국 공안까지 찾아가 증거조작을 밝혀낸다. 대통령의 자백도 마찬가지다. JTBC, TV조선, 한겨례 등은 90초짜리 자백이 거짓이라고 몰아붙였다.

‘픽미(pick me)’ 정국. 시나리오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두 번째 ‘씬’이 고개를 내민다. 권력을 떼어주는 손해가 있더라도 일단 난국을 해쳐나가겠다는 대처법이다. 레임덕이라고 해도, 대통령에게는 아직 1년 4개월 치 떡고물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씬의 김종인식 주인공 ‘헬렐레’는 친노 김병준이다. 김병준으로 야당의 단일 대오를 흩트리고, 질서를 강조해 수습하겠다는 의도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도 잘 읽힌다. “친노 총리를 야당이 거부하면 노무현을 거부하는 거다.” “빨갱이 나라 막고자 일치단결하자.” 이때 ‘최순실게이트’의 주연배우인 헌정붕괴의 내부자들은 조연으로 살짝 배역을 바꾼다. 처벌을 피해갈 가능성도 크다. <자백>에서 검찰총장은 머리 한 번 숙였고, 증거조작 검사들 징계는 1·2개월에 그쳤다.

박근혜는 2004년 탄핵역풍을 맞아 붕괴직전의 한나라당을 되살리는 기적을 일궜다. 이후 선거마다 승리하자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왜일까? 배 곪던 시절을 끝내고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박정희의 유령이 잘 빙의할 수 있는 무당이 박근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시민들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열광했다. 이 지점에서 시나리오를 기획한 사람들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번 위기만 넘어서면 정권재창출을 통해 다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유령, 박정희의 신화가 살아 있으니 가능하다. 설사 무당이 사라진대도 유령은 남는다. 그래서 헌정붕괴의 내부자들 중 일부는 현 무당을 버리고 새 무당을 찾자는 입장이고, 깊숙이 관여한 내부자들은 이미 현 무당의 오장육부가 돼 필사적으로 무당을 지킨다.

   
▲ 대통령의 막장드라마에 지친 100만 시민이 12일 촛불을 들었다. Ⓒ 박진영

<자백>에는 박정희 정권 시기 재일조선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받다 정신병에 걸린 ‘승효’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40년 동안 쓰지 않았던 한국어로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박정희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시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며 읊조렸다. 간첩조작 피해자들을 만나러 일본에 가는 공항에서 감독은 우연히 김기춘을 만난다. 당시 간첩조작에 앞장 선 사람, 유신헌법을 만든 장본인, 그리고 40년을 지나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한 김기춘. 그는 조작한 적이 없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카메라를 피하려 화장실에 숨는다. 이렇게 과거 독재정권의 내부자들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그 결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헌정붕괴의 내부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틀어쥔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자리에 김기춘이 나타났다. 두 가지를 상상해보자. 승효씨가 용기를 내 재심을 신청하러 한국에 왔고, 민주화를 상징하는 광화문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서있다고 말이다. 그 옆에 승효씨를 고문하고, 국정을 농단한 내부자들이 웃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자백>의 아픈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막장 드라마의 결론은 시청자들의 항의로 종종 바뀐다. 하지만 대본을 쓰는 사람은 그대로다. 이번에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대본을 쓰겠다고 손을 맞잡고 촛불을 든다. 명품드라마로 탈바꿈해 대작이 될 지, 권선징악이라는 막장드라마의 문법까지 파괴하며 졸작으로 끝날지는 작가를 선언한 시민 손에 달렸다. 이미 세 번째 씬은 시작됐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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