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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
[고경태의 온 더 레코드] 나의 기록 습관을 돌아보며
2016년 11월 03일 (목) 23:15:30 고경태 humank21@hotmail.com
   
▲ 고경태

어느 날 나의 재산이 사라졌다.

대학 시절 서울에서 자취할 때였다. 대학생 신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손때가 묻은 책들과 소지품 대부분은 고향 원주 집에 있었다. 서울 자취방엔 대학생활에 꼭 필요한 책들만 가져왔다. 온전한 내 방은 원주에 있다고 봐야 했다. 3학년이었는지 4학년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하다. 주말을 맞아 고향 집에 내려간 어느 날, 내 방이 지나치게 깔끔해 보였다. 도배도 새로 돼 있었다. 문제는 절반 이상으로 줄어버린 나의 짐이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 책하고 짐들 다 어디 갔어요?” 무심한 답이 돌아왔다. “집수리하느라 다 정리했다. 필요 없는 건 다 버렸어.” 아니 이럴 수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묻은 책과 노트 상당수가 자취를 감췄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나 편지는 아예 하나도 없었다. 원주에 내려갈 때마다 뒤적이며 그 풋풋함 또는 유치함에 킥킥거렸던,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내 재산이었다. “아버지, 왜 아버지 맘대로 버리세요?” 항의했지만,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셨다. 상황을 되돌릴 순 없었다.

나는 버리길 싫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정리할 줄 모른다. 청소년 시절 어머니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셨다. “책상 좀 정리해라. 지저분하게 이게 뭐냐.” 끝내 버티면 내가 학교에 간 사이, 어머니가 정리를 해주셨다. 그러면 꼭 실랑이가 벌어졌다. “OOO 어디 갔어요?” “몰라. 난 안 치웠다.” “뭘 몰라요. 왜 제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고 그러세요?” “아이고 청소해줬더니 오히려 성질을 부리네. 그럼 평소에 깨끗이 정돈을 잘하던가.”

지금도 그렇다. 회사 사무실의 내 책상엔 늘 수북하게 뭔가가 쌓여있다. 왼쪽에 놓인 유선전화기는 늘 어지러운 잡동사니들에 가려져 있다. 전화가 오면 그걸 한참 치우고서야 수화기를 들 정도다. 버리지 못해서다. 까짓거 책상 위에 있는 책과 신문, 서류들을 왕창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고 생활과 업무에 지장이 없다. 알면서도 결단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청소할 때마다 늘 우물쭈물 이다. ‘혹시 모르잖아. 쓸데가 있을지.’ 한쪽에 고이 모셔놓는 물건이 생기기 일쑤인데, 실제로 이후에 그걸 들여다보는 일은 없다. 그러다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아쉬워하고 애통해한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가장 마음이 쓰린 건 일기장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일기를 썼다. 1990년대 초반 사회 초년생 땐 386DX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저장했다. 지금 다시 읽어볼 일기장은 없다. 볼펜으로 쓴 건 10권이 채 안 됐는데 결혼 뒤 이사하다가 대부분 분실했다. 컴퓨터에 저장한 일기 파일은 예전에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두었으나, 컴퓨터와 디스크 모두 그냥 버린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모두 존재한다면 좀 더 행복할까? 모르겠다. 얼마 전 타계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읽다가 기록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그는 마지막 챕터인 ‘집’에서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기록했는지 적었다. 내 삶과 비교하며 기록 습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는 그가 추구한 끝없는 모험, 중단 없이 나아가는 삶의 뜨겁고 생생한 기록이다. ⓒ 알마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나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일기장이 1,000권이나 된다는 말에 입이 벌어졌다. 나 역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쓴 적이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방학숙제용이었다. 대학생 때나 사회 초년생 때는 자발적으로 썼다. 그래 봤자 한 달에 대여섯 번이었다. 일상이 피곤하고 고민이 많을 때였던 것 같다. 올리버 색스에겐 일기가 습관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는 잠들기 전에만 일기를 쓰지 않았다. 틈만 나면 썼다. 그는 성실한 기록자였다. 아니 기록 광이었다. 신경의학에 대한 대중들의 무지와 편견을 깨준 올리버 색스의 날카롭고 섬세한 글들은 이러한 기록의 힘에 기대고 있다. 기록을 통해 그의 글쓰기는 게으름을 피할 수 있었고 더 풍요로워졌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온 더 무브>는 일기와 편지 등의 방대한 개인 기록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종이 위에서 생각한다고 꼭 공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편지봉투 뒷면도 되고 메뉴판도 되고, 손에 잡히는 아무 종이에든 쓰면 그만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글귀가 나오면 밝은색 색종이에 옮겨 적거나 타이핑해서 게시판에 압정으로 꽂아놓기가 다반사였다. 시티아일랜드에 살 때는 그렇게 베껴놓은 글귀가 첩첩이 쌓여 바인더 링에다 꿰어 사무실 책상 위 커튼 봉에 주렁주렁 매달아놓기도 했다.”

기가 죽었다. 나는 멀었다. 예전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면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기자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요즘엔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입한다. 읽어야 할 책, 기획거리, 좋은 문장, 내일 할 일 등등을 모두 이곳에 메모한다. 거리에서 재밌는 간판을 보거나 영감을 줄 만한 풍경을 접하면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책을 보다가 좋은 글귀가 나오면 그 페이지를 접는다. 조금 쓸 만 하면 살짝 접고, 아주 쓸 만하면 반으로 크게 접는다. 반으로 접은 건 나중에 꼭 활용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놓고 까먹기 일쑤다. 좋은 문장 수첩을 따로 만들 정도의 성의는 없다. 딱 거기까지다.

   
▲ 짐을 정리하다 서랍에서 오래된 편지를 발견한 적이 있는가. ⓒ pixabay

“편지 역시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편지는 쓰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좋아한다. 편지는 사람들, 중요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매개체다. 글쓰기가 잘 안될 때도 편지쓰기는 무리 없이 잘되는 경우가 많다. ‘글’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내가 받은 모든 편지를 보관했고 내가 보낸 편지는 사본으로 보관한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가령 처음 미국에 와서 많은 중대한 사건을 겪었던 1960년대)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위해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니, 이 편지들이 내 인생의 보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잘못된 기억과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착각했던 온갖 오류를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렸다. 잃어버린 편지들이 머리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나 역시 종이편지를 잘 버리지는 않았다. 뿔뿔이 어디엔가 흩어져 있어 찾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다. 2000년대 들어선 편지 대신 이메일이었다. 이메일도 잘 안 버리고 따로 보관해놓곤 했다. 그러다가 2003~2006년 간 4년 치 이메일을, 노트북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시 깔면서 통으로 날려버린 적이 있다. 노트북 내용물들을 외장 하드에 옮겨놓았는데 이메일만 깜빡했던 것이다. 땅을 쳐도 헛일이었다. 나중에 쓸 글을 위해 필요한 편지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올리버 색스는 보낸 편지도 사본으로 보관했다고 했다. 이메일이야 ‘보낸편지함’에 쌓이므로 보관이 쉬운 편이지만, 종이편지를 복사할 생각은 못 해봤다. 이 대목을 읽으며 한 회사 선배가 떠올랐다. 그 선배는 책을 누군가에게 증정할 때 앞 부분에 쓰는 메시지가 자신을 상대방에게 각인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꼭 휴대폰 사진으로 남겨놓는다고 했다. 난 그런 행위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선배 말대로 실천해봤다. 2015년 2월 네번째 책을 내고 남들에게 기증할 때마다 앞에 사인펜으로 적는 메시지를 일일이 사진 찍었다. (찍을 땐 몰랐는데, 한달 뒤 다시 보니 그 메시지들이 얼마나 새롭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열 번 정도까지는 꾸준히 했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그러다가 말았다.

“내 글쓰기 작업에서 방대한 분량(과 숱한 세월)이 할애된 것은 임상일지다. 베스에이브러햄병원의 환자 500명, 작은자매회의 입소자 300명, 브롱크스주립병원의 입원 및 재래환자 1,000명을 진료하면서 수십 년 동안 1,000권이 넘는 공책을 썼는데, 내가 무척이나 좋아한 일이었다. 나는 진료한 환자들에 대해 길고 자세한 일지를 적었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소설처럼 읽힌다고 말하곤 했다.”

나도 업무 분야에선 꽤 의식적으로 기록물 수집에 신경을 써왔다. 내 일과 관련한 각종 문서와 회의록들을 최대한 모아놓았다. 한글 파일에 주제별로 폴더를 만들어놓고 일회적인 보고서들까지도 모조리 저장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 첫 책을 낼 때 이런 문서들의 유용성을 깨달았다. 자료의 디테일은 글의 디테일을 살려준다. 그래도 올리버 색스만큼은 못했다. 글로 작성된 문서들은 모았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문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가령 어떤 회의건 들어가면 수첩이나 메모지와 볼펜을 반드시 준비한다. 회의시간엔 정작 회의 내용을 적지 않는다. 회의중 나온 말들 중에서 몇가지 키워드만 끼적거리거나 엉뚱한 낙서만 해댈 뿐이다. 사람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의미한 한자연습을 하기도 한다. 나태하고 수동적인 기록자였다.

결국 나는 어중간하다. ‘아카이빙’(archiving·기록보관)을 삶의 한 조각으로 인정한다면 말이다. 유소년 시절의 기록과 물건들은 20~30대에 모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버렸다. 일기는 지속적으로 쓰지 않았고 편지도 체계적으로 모아놓지 않았다. 남은 일기와 편지들마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올리버 색스의 1/100도 못 따라간다. 괜히 그의 흉내를 내다간 자칫 저장 강박증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본다. 그렇다고 미련 없이 흔적을 지우고 살아가는 스타일도 아니다. 40대 이후부턴 갈수록 기록과 보관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어중간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가. ‘삶의 아카이빙’ 측면에서 올리버 색스의 수준에 근접하는가, 나처럼 어중간한가,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가.

기록에 관해 기록하고자 한다. 나처럼 어중간하게 인생의 시간과 기억들을 바느질해왔거나, 그 바느질에 관해 무신경하게 살아온 이들이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기울여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메모광도 아니고, 편지도 잘 보관하지 않고, 일기도 방학숙제로만 써온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역사를 글로 풀어내기를 꿈꾼다.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 토막글을 넘어 긴 서사를! 나 역시 전문가가 아니다. 스스로 탐구하고 훈련한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내가 지난 일기장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로 충분했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된다. 내게 글쓰기는 정신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 요소다.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꼴을 갖추어가는 과정 전체가 글쓰기를 통해 이뤄지는 까닭이다. 내가 쓰는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뿐더러 나 스스로 지난 일기를 꺼내 읽는 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일기는 내가 자신과 단둘이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과의 대화에 필수적인 형식의 글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 <자신과의 대화> 조각상. ⓒ picassomio.com

기록은 자신과의 대화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다. 올리버 색스는 기록을 위해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능력, 자의식, 자전기억(autobiographical)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쓰기, 그중에서도 자의식과 자전기억을 쓰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한다. 문자의 가치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그 욕구를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여정에 나선다. 이 과정을 통해 뒤늦게 기록에 뛰어든 이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기를 꿈꾼다.

‘어느 날 나의 재산이 돌아왔다. 나는 부자가 되었다.’

<끝>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대한국민 현대사>, <1968년 2월 12일>,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 등 5권의 책을 썼다. 2013년에 낸 <대한민국 현대사>가 아버지가 남긴 신문 스크랩을 기록으로 엮은 역사책이었다면 각각 2015년과 2016년에 쓴 <1968년 2월 12일>과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은 오랜 기간의 현장 취재와 조사를 거쳐 엮어낸 역사책이다. 이 연재는 나를 기록하는 법을 기록한다. 월간 연재.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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