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

서울시에는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알바)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있다. 지난 5월 출범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권리지킴이)’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1기로 선발된 44명의 권리지킴이들은 지역근로복지센터 등 서울 내 관련 기관 13군데에 흩어져 활동한다. 지난달 선발된 2기도 곧 활동에 들어간다. <단비뉴스>가 권리지킴이들의 활동을 따라 가봤다. (편집자)

“여긴 시급이 4천5백 원이네요.” 

편의점 알바가 답을 한 설문조사지. 시급이 얼마인지 묻는 질문란에 ‘4500’이라는 숫자가 도드라져 보인다. 중국인 유학생이 일하는 편의점의 경우다. 2016년 최저시급은 6030원.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이날 실태조사에 나선 권리지킴이 김상미(29) 씨는 “한국 현실을 잘 모르는 유학생을 상대로 최저시급 미만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경우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 시급 ‘4500원’이라고 적힌 편의점 알바의 설문조사 답변지. ⓒ 신혜연

편의점 ‘최고시급’ 6030원의 비밀 

지난달 29일, 동대문구 청년 및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보호 단체 ‘우동(우리동네 노동권찾기)’에서 활동하는 권리지킴이 3명이 인근 편의점 야간 알바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나섰다.

권리지킴이들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서울시내 사업장 모니터링 활동의 일환이다. 각지에서 활동 중인 권리지킴이들은 청년들이 주로 종사하는 서비스업종 중에서도 근로 환경이 열악한 영세사업장과 음식점, 편의점, 배달업체 등을 직접 방문해 실태조사를 벌인다. 서울시는 이 자료를 근거로 서울시내 알바 실태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 상미 씨가 편의점 알바에게 설문조사 답변을 받고 있다. ⓒ 신혜연

설문조사는 저녁 9시부터 1시간 20분간 진행됐다. 방문한 편의점 여섯 군데 중 다섯 곳이 설문조사에 응했다. 설문조사지에는 시급, 휴게시간 등 근로 환경, 초과근무를 강요받는 등의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이 담겼다.

‘6030원.’ 대부분 편의점은 약속한 듯이 최저시급을 지급했다. 그러나 ‘6030’이란 숫자만으로는 최저시급이 보장되는지 알 수 없다. 권리지킴이 최재성(27) 씨는 고등학생 20명에게 물었더니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80%가 알고 있었지만, 주휴수당(유급 주휴일에 받는 돈)은 80%가 모르고 있었다는 경험을 들려준다. 주휴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지급하지 않으면 위법이다. 결과적으로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해 최저임금 미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 외에도 야간수당, 휴게시간, 초과근무수당 등 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가 현실에서는 쉽게 무시됐다.

▲ 재성 씨가 편의점 알바에게 설문조사 참여를 부탁하고 있다. ⓒ 신혜연

“우리가 열심히 알려야 다음 세대에서 바뀌죠”

현재 상미 씨를 포함해 3명의 권리지킴이가 활동 중인 동대문구 ‘우동’은 특성화고등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 교육에 주안점을 둔다. 상미 씨는 노동인권 문제와 청년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어 신청하게 된 경우다. 상미 씨는 “상담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이 어른을 상대로 자기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웠다”고 들려준다.

▲ 도현 씨와 상미 씨가 실태조사 설문지를 기다리고 있다. ⓒ 신혜연

우동에서 활동하는 권리지킴이 중 가장 어린 김도현(19) 씨는 특성화고 출신이다. 도현 씨는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서 전기선 포장작업을 맡았다.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회사는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다른 일을 할까 봐 출근하자마자 핸드폰을 걷어갔다. 고된 단순 작업도 힘들었지만, 하루에 11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80만 원을 손에 쥐는 박봉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뒀다. 도현 씨는 그때 “노동권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 도현 씨와 재성 씨가 ‘우리동네 노동권찾기’ 단체 홍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혜연

도현 씨에게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권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뭔지 물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서 예상외로 진지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지금 현실이 엉망이잖아요. 세대가 지나면 현실도 바뀌어야 하는데, 공짜로 바뀌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열심히 알려야 다음 세대에서 바뀔 거 같아요.”

“근로계약서는 우리 권리니까요” 

권리지킴이들은 모니터링 활동 외에도 아르바이트 노동 상담과 아르바이트 권리 홍보 관련 캠페인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5월 30일 출범식 때부터 홍대 인근을 돌며 아르바이트 권리 지킴이 단체를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 지난 2일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서 근로계약서 작성을 권유하는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보호캠페인- 알바프라이데이’ 캠페인이 진행됐다. ⓒ 신혜연

지난 2일 강남과 신촌에서는 두 번째 캠페인 활동이 펼쳐졌다.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보호캠페인–알바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으로, 올바른 근로계약서 작성을 홍보하는 내용이다.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노동권 침해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팸플릿을 나눠주는 동시에 게임도 진행했다.

▲ 한 시민이 풍선 터뜨리기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 신혜연

“알바로 쌓인 스트레스, 풍선 터뜨리면서 푸세요!”

‘임금체불’ ‘낮은 시급’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알바를 힘들게 하는 부도덕 관행을 적은 풍선에 다트를 던져 터뜨리는 게임이다. 친환경 물병이 선물로 주어졌다. 근로계약서를 써 본 경험을 묻는 스티커 판에 스티커를 붙이면 아이스크림과 포춘 쿠키가 선물로 돌아갔다.

▲ 즉석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작성했다’는 답변보다 많았다. ⓒ 신혜연

행사에 참여한 문기태(24) 씨는 “아직도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게 놀랍다”며 “나부터도 근로계약서는 썼지만, 보관용으로 계약서를 교부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올바른 근로계약서 작성법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행사의 의미를 부여했다.

▲ 문기태(24) 씨는 “근로계약서는 썼지만, 보관용으로 계약서를 교부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 신혜연

행사 진행을 맡은 권리지킴이 권다원(25) 씨는 “시민분들이 생각보다 잘 참여해주셔서 놀랐다”며 “근로계약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직접 기획했는데, 당일에 진행되는 걸 지켜보니 보람이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권 씨는 시민들에게 “근로계약서는 우리의 권리다. 근로계약서 작성법을 제대로 알아둬야만 혹시 생길지 모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 오진수(32) 권리지킴이 매니저가 근로계약서 작성을 권유하는 문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혜연

‘알바는 노동이 아니’라는 시선에 맞서다 

권리지킴이는 서울시 청년 뉴딜일자리 사업의 일환이다. 권리지킴이로 고용된 청년들은 2년간 일급 5만 5천 원을 받고 서울시내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다. 임금은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시급보다 높지만, 서울시가 제시하는 생활임금(월 149만 원)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권리지킴이들은 활동 시작과 함께 1주일간 노동법 교육을 받는다. 이후 관련 실무교육을 주 1회로 한 달간 진행하고, 수요자에 한해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정을 4주간 참여한다.

권리지킴이 중에는 노무사 자격증 소지자나 관련 시민단체에서 노동 상담을 해오던 이도 있지만, 이전에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해본 경험이 없는 사회 초년생도 있다.

권리지킴이 사업을 담당하는 김예찬 매니저는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사회적 시선이 팽배한데, 청년들의 노동도 다른 노동처럼 존중받고,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권리지킴이 활동의 의의를 밝혔다.

출범한 지 3개월 된 권리지킴이 사업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내년 12월 30일까지 이어지는 권리지킴이들의 활동이 서울 청년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든든한 바람막이로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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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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