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16 서울 청년의회 스케치

높은 실업률과 고액 등록금, 주거난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이 직접 만든 정책을 들고 서울시의회를 찾았다. 21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와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회가 서울시 의회에서 주최한 ‘2016 서울 청년의회’가 그 현장이다. 서울시 민간협력 기관인 청정넷은 올해 5월 139명의 서울청년의원을 위촉해 서울시 청년정책을 점검, 제안하는 모임을 가져왔다. 현재 서울시와 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는 청년수당 정책도 여기서 제안됐다. 서울시의회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른 청년의회에 다녀왔다.

▲ 서울 청년의회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청년의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의원, 실국장 공무원을 포함해 150여 명이 참가했다. ⓒ 신혜연

청년, '나'를 말하다

청년의회 시작에 앞서 오전 12시부터 서울시의회 1층 로비에서 사전행사가 진행됐다. 청년단체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이 진행을 맡아 청년의회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00여 명의 청년들이 로비를 메웠다. 서울사전행사의 주제는 ‘배운 대로 하는 세상은 지났다. 이제 내가 나를 말하겠습니다’로 청년들은 ‘사회가 바라본 나’와 ‘내가 바라본 나’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청년의회 시작에 앞서 정오부터 서울시의회 1층 로비에서 사전행사가 진행됐다.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 신혜연

서울시 동작구에 사는 김현진(20)씨는 자신을 “말 안 듣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 씨는 중학생 때 부모님 몰래 뮤지컬 공연에 참여할 만큼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8개월 전부터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산다. 김 씨는 “사회에서 볼 때 나는 ‘말 안 듣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잡히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

부산에서 연구모임을 운영하는 엄창환(31)씨는 “청년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면서 청년을 ‘마리오네트 인형’에 비유했다. “사회는 청년들을 이쪽저쪽으로 잡아당기며 조정하려고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줄을 끊어내고 좀 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밝혔다.

▲ 사전행사에 참여한 청년의원들이 ‘사회가 바라본 나’와 ‘내가 바라본 나’에 대해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 ⓒ 신혜연

청년들은 청년의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청년정책 실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으로 ‘대화의 축적’을 꼽았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세대가 다른 세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청년의회는 서울시와 청년들이 축적한 지난 4년간의 시간이 확인되는 자리다. 오늘을 매개로 더 크게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청년부채 분과 청년의원 한영섭(36)씨도 “막상 청년의회 당일이 되니까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씨는 “오늘 행사로 정책이 확 바뀌진 않겠지만 작은 노력들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희망을 청년의회가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청년들과도 앞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비판에 "'해이 콘서트' 열자"

사전 행사는 청년의회 의장을 맡은 권지웅(29) 청정넷 운영위원장의 발언으로 마무리됐다. 권 위원장은 “당장 공공임대주택이 확대되고 기본소득이 시행되지 않더라도 지금 나와서 함께 이야기하면 시스템을 바꿔낼 수도 있다”며 “2년 전엔 아무도 모르던 청년수당 정책을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다. 20년 후엔 정말 많은 게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20년 뒤의 사회 모습은 우리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 권지웅(29) 청정넷 운영위원장은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근거로 청년수당을 반대하는 중앙정부를 비판하며 “해이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다. ⓒ 신혜연

끝으로 권 위원장은 중앙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근거로 청년수당을 반대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 명이 지원했는데, 그중 4천 명만 합격한다. 이런 구조를 두고도 무직 청년의 삶을 돌보지 않는 건 실업이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셈”이라며 “해이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다. 자우림의 ‘헤이헤이헤이’ 노래와 함께 사전 행사를 마쳤다.

▲ 의회 회의실 입구에 청년의원들이 제안하는 청년정책 문구가 적힌 상자가 놓여있다. ⓒ 신혜연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 되기 전에 새 판 짜야

“탕탕탕”

오후 2시, 권지웅 청년의회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려 개회를 알렸다. 일요일 오후임에도 의회 안은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찼다. 120여 명의 청년의원과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위 의원들,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실국장급 직원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날 행사는 라이브서울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됐다. 공개 채팅방을 열어 실시간으로 의견을 남기는 창구도 마련됐다.

▲ 개회식 이전에 청년들이 준비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신혜연

권 의장은 “청년의 문제를 푸는 건 사회 소외된 이들의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며 “청년의회는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 서윤기 의원도 대표연설을 통해 “이번 의회는 당사자주의에 입각해 창의적인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위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수당분과 신지애 청년의원은 대표연설에서 청년문제 해결이 사회문제 해결의 첫 단추임을 역설했다. 신 의원은 “지금 청년세대는 역사상 유례없이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며 “이제 사회구성원의 이행경로를 새로 짜야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일자리 공급 중심의 청년정책을 고수하는 중앙정부에도 쓴소리를 했다. 신 의원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이 있지만, 청년수당을 신청한 학생들은 시간조차 불공평하게 배분받고 있다"며 "낡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청년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새로운 실험적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일자리 없어 ‘의자 빼앗기’ 게임하는 청년들 

이어 박원순 시장이 청년의원들 앞에서 시정보고에 나섰다. 박 시장은 지금 한국 청년들의 상황을 ‘의자 빼앗기 게임’에 비유했다. 사회로 나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박 시장은 “적어도 시작단계에서는 모든 청년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의자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서 자리에 앉지 못한 청년들을 도덕적 해이, 무능, 나태란 말로 비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청년에 대한 신뢰를 서울시와 정부 청년 정책의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꼽았다. 그는 “정부는 청년이 아니라 기업을 지원한다. 의자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제한된 의자에 앉으라고 청년을 몰아세우는 셈이다. 반면 청년수당은 청년들 스스로 의자를 만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수당 정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박 시장은 “청년수당 정책은 저나 공무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청년들이 만든 정책이다. 그 정책을 지켜내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며 “다른 정책과 연동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겠다. 이 자리에서 참신한 제안 해주시면 지체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본회의에서는 △청년수당 △부채 △보건 △미세먼지 △장애인 △자전거 △시민교육 △주거 △공간 △일자리 10개 분야에서 청년의원들의 정책제안이 이뤄졌다.

천 만원대 학자금 대출, 숨만 쉬어도 이자 늘어

1초 2초 3초...
첫 발표를 맡은 천주희 청년부채분과 청년의원은 회의장 화면에 초시계를 띄워놓고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만에 입을 연 천 의원은 “지난 10년간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다닌 상황에서 대출금이 1천 3백만 원이나 쌓였다”며 “숨만 쉬고 물만 마셔도 한 달이 지나면 이자 상환 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면 불안하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청년부채분과는 △서울 청년들의 부채 현황 파악 △청년 신용회복프로그램 및 이자지원 대상자 확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금융피해 구제 기구 설립 등을 제안했다.

보건분과 차해영 의원은 1인 가구 청년들의 건강 개선 정책을 제안했다. 차 의원은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소식이 보도돼 안타깝게 했다”며 “청년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도록 서울시가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보건분과는 청년 1인 가구를 담당하는 부서 지정, 서울형 푸드쉐어링(먹을 수 있음에도 폐기되는 식품을 나누는 사업) 도입 등을 제안했다.

미세먼지분과 윤재훈 청년의원은 “안부 인사로 미세먼지 농도 정보를 주고받게 된 청년세대로서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주장하게 됐다”며 미세먼지 농도 측정기 위치를 관공서 외에 청년들이 자주 가는 번화가로 늘리고, 대중교통 내 미세먼지 농도를 표시하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단상이 생각보다 높네요.” 장애인분과 홍서윤 청년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랐다. 그의 가슴께에 맞춰 단상 높이가 재조정되는 사이에 뱉어낸 이 말은 서울 장애 청년들의 삶을 반영했다. 이날 홍 의원은 문화정보를 얻고자 하는 장애인이 관광정책과와 장애인정책과 사이를 오가야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홍 의원은 박 시장을 향해 “저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홍 의원은 청각장애인의 문자통역 지원 정책 마련, 장애인의 평등한 문화관광 참여를 위한 예산 및 주무부처 편성을 시에 요구했다.

▲ 장애인분과 홍서윤 청년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묻고 있다. ⓒ 신혜연

서울시의회에 등장한 자전거

자전거분과 오영열 청년의원은 의회에 자전거를 타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오 의원은 ‘자라니’라는 단어를 소개했다.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로드킬 위험에 노출된 고라니처럼 위태롭게 자전거를 타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 의원은 직접 130여 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청년들은 자전거 안전교육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받아본 사람은 20%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대안으로는 자전거 안전교육을 확대하고, 도로주행 실습을 교육내용에 포함하며, 안전 수신호를 통일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 외에도 시민교육분과, 주거분과, 공간분과, 일자리분과 대표 청년의원들이 제안한 10대 정책이 현장에서 박수로 의결됐다. 청년의회는 서울시에 제안할 구체적인 정책 논의를 위해 다음 주 중으로 토론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 자전거분과 오영열 청년의원은 의회에 자전거를 타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 신혜연

“청년들의 이야기에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개를 숙인 박 시장의 고해성사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서울시 청년 정책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약속실천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서울 청년의회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폐식 행사를 하고 있다. ⓒ 신혜연

이 기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 (http://mediahub.seoul.go.kr/) 에도 실립니다.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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