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

2015년 10월. 앳된 18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은성 PSD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가사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고로 진학한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였으니까.

인력이 부족해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일주일에 6일 일에 매달렸다. 한숨 돌릴 틈도 모자랐다. 휴식 시간은 고작 하루 40분. 식사 시간도 30분이 채 안됐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컵라면이나 도시락으로 급하게 때우는 날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연차를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친구들이 같이 졸업여행 가자고 제안했을 때, 갈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이렇게 한 달을 일해 144만원을 받았다. 100만원을 적금에 넣었고, 남은 44만원으로 동생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날도 난 일터로 나갔다. 다음날이 생일이어서 어머니가 케이크를 사가지고 와 축하해준다고 말씀하셨다. 원래는 2인 1조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바쁘니까 혼자 들어갔다. 안전 교육에 대한 기억은 없다. 가끔씩 받긴 했으나, 교육 없이 서명만 받는 날도 있었다. 혼자 구의역의 9-4 지점 스크린도어에 장애물검지센서를 청소했다. 그러다 그만···.

(숨진 김 군 어머니 기자회견 내용과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사고일지다.)

▲ 5월 28일 김모군(19)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무하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배지열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했던 19살 김 군은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혼자 장애물검지센서를 닦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수립하기 위한 진상조사 시민보고회가 지난 28일 서울시청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28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가 열린 가운데 김지형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시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오른쪽에서 네번째). ⓒ 박기완

‘경영혁신 외주화’가 죽음 부른 근본 원인

진상규명위원회가 김 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으로 꼽은 것은 ‘외주화’다. 1998년 외환위기로 구조개혁 등 ‘경영혁신’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때 인력 감축, 조직체계 개편과 함께 주요 업무의 민간위탁과 외주화가 이뤄졌다.

서울시 산하 4개 투자기관(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농수산식품공사, SH공사)이 외주화의 길을 걸었다. 서울 메트로는 2008년 김상돈 사장이 서울시 방침에 발맞춰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조직슬림화 차원의 ‘분사 외주화’를 추진했다.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불구하고 외주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안전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안전 도외시한 외주화’로 열악한 노동환경

‘외주화’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이어진 건 필연이다. 은성PSD는 인력부족 문제해결을 위해 학교와 업무계약을 맺어 2014년 11월부터 ‘실습생’을 받아들였다. 실습생들은 주 6일 근무였다. 하루 평균 휴식시간 40.7분, 식사시간 25.2분의 상상초월 근무조건에 40.5% 실습생은 법정 휴가를 꿈도 꿀 수 없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노동자들은 대부분 6개월 이상 넘기지 못했다. 2011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입사자 342명 중 198명 퇴사해 퇴직률이 58%나 됐다. 장기근속을 통한 노동의 숙련화와 안전한 노동은 남의나라 얘기가 됐다.

‘죽음 부른 외주화’ 접고, 서울시 직영으로 안전 지켜야

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을 답은 이미 정해졌다. 죽음을 부르는 위험한 외주화’를 접는 길이다. 직영화를 통해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으로 제도적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영화가 능사는 아니다. 진상규명 위원회는 직영화 이후에도 ‘경영효율’의 관점이 아닌 ‘안전’의 관점에서 적정한 인력 배치와 지휘·명령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28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가 열린 가운데 김지형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박기완

비단 서울 메트로만의 문제일까. 진상규명위원회는 서울시 공공부문 전반에 퍼져 있는 다수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사업장과 직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탁업체의 실습생, 수습, 인턴 등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 처우개선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시민과 노사 양측이 참여하는 ‘시민 안전 거버넌스’ 구축과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인 집행 체계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고를 위험축소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노동안전 인권 선언’을 서울시와 시민이 공동으로 공표하는 동시에 5월 28일을 ‘지하철 안전의 날(가칭)’로 삼자고 제안했다.

▲ 28일 오후 서울시청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가 열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박기완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박 시장은 "이번 사고 속에 숨어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인 문제를 확인했다"며 "지적 사항과 개선 대책을 시간이 들더라도, 또 돈이 들더라도 반드시 실천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아무 잘못 없이 열심히 일한 죄로 꽃다운 생명을 바쳐야 했던 청년의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박 시장과 서울시의 실천여부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 기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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