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⑭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한국 사회의 소득분배는 악화일로에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불평등이 제일 심한 미국에 근접해있다.”

‘소득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2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힘>에 출연해 한국 경제의 양극화 추세를 경고했다. 이 명예교수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같은 방송에서 “2010년 이후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개선되는 추세”라고 주장한데 대해 “도시가계조사를 근거로 말한 듯하나, 이는 재벌과 빈곤층이 빠지고 금융소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신뢰성이 낮은 지표”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최상층까지 포함하는 소득세 자료를 분석한 동국대 김낙년 교수 등의 연구를 근거로 한국의 소득분배가 OECD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미국 다음으로 악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심각하며, 앞으로 양극화 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정우 명예교수. ⓒ SBSCNBC

‘친기업정책’이 공황을 불렀던 역사 

이 명예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기업정책이 소득불평등 심화와 경기침체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부자감세, 규제완화 등의 기업친화정책이 1929년 대공황 무렵에 집권한 워런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2008년 서브프라임위기 이전의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과 같다고 지적했다. 시장만능주의에 입각한 이들의 기업편향 정책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떨어져 내수가 침체되면서 경제공황까지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명예교수는 “1929년 공황과 2008년 공황은 닮은 꼴”이라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얼핏 보기에 ‘반기업정책’을 편 대통령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역설도 지적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테오도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자의 세금을 올리고 빈곤층을 위한 복지를 늘렸을 때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한국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그걸 깨닫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 이 명예교수는 친기업적정책으로 공황을 맞은 미국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SBSCNBC

토마 피케티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의 한글판 해제를 맡았던 이 명예교수는 “갈수록 자본소유자의 몫이 커지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모 소득에 의해 자녀 소득이 정해지는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라며 “한국은 부동산 비중이 커서 자본성장에 의한 양극화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명예교수는 양극화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토지보유세 강화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부동산 거래세가 무겁고 보유세가 가벼운데 선진국은 반대”라며 “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보유세를 무겁게 물리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팔려고 내놓게 되고, 전반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므로 공장부지값, 물류비, 인건비 등도 낮아져 고비용구조가 해소된다는 설명이다.

이 명예교수는 실제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을 때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보유세를 무겁게 물리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부부합산과세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고 이명박 정부가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바람에 지금은 유명무실하다고 할 정도로 종부세 수입이 줄어든 상태다. 이 명예교수는 “부동산 투기꾼들은 가족, 친척 이름까지 빌려서 전국에서 투기를 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막으려면 가족 합산이 맞다”며 “부자들이 부담하므로 공평하고 경제에 악영향도 주지 않는 종부세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명예교수는 거래세가 무겁고 보유세가 가벼운 한국의 토지 세제는 잘못된 것이라며 종합부동산세 등을 통해 보유세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SBSCNBC

비정규직 남용으로 산업 경쟁력도 떨어져 

이 명예교수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로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특히 “1,2년 후에 떠나야 하는 ‘시한부 계약직’이 회사에 무슨 애정이 있겠느냐”며 “기술 축적이 안 돼 생산성 하락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조선·해운산업 등의 경쟁력 하락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또 최저임금과 관련 “우리나라는 평균임금의 30%대에 불과한데, OECD 대부분의 나라가 평균임금의 40~60%대”라며 “시장에 냉기가 돌고 구매력이 살아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적극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중국 당태종 때의 충신 위징의 일화를 꺼내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취임 2주년 기념 만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오만해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뜻에서’ 위징 얘기로 건배사를 했다고 한다. 당태종은 국력을 강성하게 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고 해서 ‘정관의 치’라는 칭송을 받은 임금인데, 그에겐 날마다 바른 소리를 하는 위징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당태종은 위징의 쓴 소리를 대부분 잘 받아들였지만 어느 날은 싫은 소리에 너무 화가 치밀어 그를 죽이려고 칼을 찾았다. 그러자 황후가 정복을 차려입고 와 그에게 절을 한 뒤 “자고로 명군 밑에 바른 말 하는 신하가 있다고 하는데 위징이 하는 것을 보니 전하가 명군임에 틀림없다, 감축드린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당태종은 위징을 살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명예교수는 “지도자가 성공하려면 밑에 반드시 바른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최근엔 우리나라에 위징이 너무 안 보여 문제”라고 꼬집었다.

▲ 이 명예교수는 “지도자가 성공하려면 밑에 반드시 바른말하는 신하를 많이 둬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청와대에서 2년 반을 일하고 떠날 때 ‘재벌의 압력과 관료의 견제 때문에 밀려났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진실을 다 알 수는 없으나 그렇게 볼 정황은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지역균형발전, 민주적 절차의 존중, 남북관계개선 등 뚜렷한 공적을 세웠지만 재벌과의 유착, 관료와의 유착으로 개혁의 동력을 잃은 것은 과오였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주요 방송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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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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