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58)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농민, 세입자, 대학생 등 복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대출을 늘리는 정책을 써 온 국민을 빚쟁이로 만들고 있다”며 더 이상 국민들을 ‘금융업의 먹이’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또 “복지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재벌의 ‘황제 경영’을 바로잡는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21일 방송된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

▲ 22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SBSCNBC

상아탑에만 머물 수 없었던 경제학자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시는 경제학자 중 한 분이죠,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모셨습니다. 교수님은 전국 예비고사 차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셨고요, 한국인 최초로 학부만 마치고 하버드 박사과정에 바로 입학한 기록이 있더라고요. 이런 이력으로 쭉 갔으면 지금쯤 조국에 노벨 경제학상을 안겼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소식은 안 들리고 학문 외에 다른 일로 바쁘신 것 같아요.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아픈 곳을 찔렸네요. (웃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원래는 수학 물리학을 좋아해서 이과에 있었는데, 사회문제 관련된 책을 읽고 고민하다가 대학시험을 볼 때 경제학과로 바꿨습니다. 그렇게 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만,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상아탑에만 있을 수 있는 학문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경제를 통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도모할까 고민하다 보니 논문만, 책만 써서는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았죠. 그래서 이런저런 현실적 문제에 개입하다 보니 과외활동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 지금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는 활동은 뭔가요?

: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최근의 로맨스라고 할까요, (웃음) 주빌리은행에 가장 각별한 관심 갖고 있습니다. 또 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의 이사장, 즉 CEO(최고경영자)를 맡고 있고, ‘119포럼’이라고 정치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의 포럼에서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 유종일 교수는 자신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로 ‘세리’를 꼽았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등록금 독촉하는 교사에게 “당신이 세리야?” 삿대질

: 은행장에, 협동조합 이사장, 포럼 회장까지. 정말 마당발이십니다. ‘내 인생의 키워드’ 첫 번째로 ‘세리’를 꼽아주셨어요. 어떤 뜻인가요?

: 저라는 사람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일 것 같은데요. 저는 정의감 과잉이라고 할까, 옳지 않은 일을 보면 그걸 참지 못하고 덤볐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학교에 잘 보이려고 등록금 닦달을 심하게 하셨어요. 납부 마감 전부터 학생들에게 납부를 독촉했습니다.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은 풀이 죽었죠. 

: 그때는 어려운 학생들이 더 많았잖아요.

: 그럼요. 제가 지금 1970년대 중반을 말하는 거기 때문에.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들도 많았던 시절이죠. 제가 그걸 한 번 두 번 보다가 참지를 못해 삿대질을 하면서 "당신이 교육자야, 세리야?" 소리쳤습니다. 하늘 같은 선생님한테 말을 탁 놓고서. 제가 그런 짓을 무수히 반복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공부는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항상 문제아였고, 선생님께 많이 맞고 지냈죠.

: 그런 성격에 군대 생활도 만만치 않았겠어요.

: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법적으로는 군 면제예요. 하지만 학생운동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제적도 당하고 해서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선임 하사가 밤에는 대장이거든요. 술 한잔 하고 내무반에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기합을 주곤 했습니다. 저는 졸병이었지만 거부했어요. 그러다 ‘빰빠라’라고, 한 겨울에 팬티만 입고 눈 덮인 연병장을 도는 벌을 받았어요. 고참들은 ‘또라이’ 졸병 때문에 자기들까지 고생하게 됐다고 불만이었고, 그래서 더 험악한 일을 당하고 그랬죠. 

: 아까 학생운동, 제적 말씀하셨는데 서울대 경제학과 다니던 시절에 제적당하셨군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 제가 제적을 두 번을 당했는데요. 그때 유신 말기였으니까요. 학교 분위기가 살벌했고, 정보기관, 경찰에서 학교에 상주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요주의 인물’이라 저를 담당하는 형사가 있었어요. 아침마다 다방에서 그 형사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계란을 넣은 모닝커피를 마시고,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어요. 형사는 수위실에서 기다리고, 수업 끝나면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갔죠.

: 이 친구는 내가 관리해서 사고를 안 치게 하겠다, 그런 임무를 맡은 형사였군요.

유: 그렇죠. 그 정도로 학원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살벌하던 시절이었는데도 학생운동을 했던 건, 저의 특성이죠. ‘차라리 데모를 하고 감옥에 가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긴급조치 9호 마지막 위반 사건으로 데모를 주도했죠. 구속이 돼서 경찰서에 있을 때 10·26사건(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 뒤에 구치소도 가고 그랬지만 풀려났었고. 그러고 난 다음에 80년 서울의 봄(10·26 사건 후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정치적 과도기)이 와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는데, 그 뒤에 5·17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전두환 장군의 쿠데타로 다시 학원이 장악되고. 저는 강제징집 1순위로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 거죠.

: 그렇게 감시를 받고, 제적당하고, 징집되는 중간과정에는 그 무시무시한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유: 수사기관에 끌려가지 않은 해가 한 해도 없었던 것 같아요. 장기 투옥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매해 끌려가길 반복했죠.

▲ 유종일 교수가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던 대학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각자에게 자신이 가장 귀한 존재, ‘유아독존’으로 살다 

제: 부모님 입장에선 우리 아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 출세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텐데, 매일 쫓겨 다니고, 감옥에 가고 군대도 강제로 끌려갔으니 마음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유: 당연하죠. 제가 불효자식이죠.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거고. 그래도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어요. 나 홀로 존귀하다는 거예요. 부모님은 부모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거죠. 나 혼자 잘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유아독존’이 보통 독선적이라는 말로 잘 쓰이지만, 진짜 의미는...

유: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자기 자신이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거예요. 이건 평등과 자유의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슴에 못을 박는 거지만 그것이 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저는 주변의 기대, 사회적인 고정관념, 권력의 부당한 억압, 이런 모든 내적 외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죠.

제: 두 번째 키워드로는 스님을 꼽아주셨어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 한 스님을 뵙게 됐는데, 범상치 않은 분이셨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수행에 정진하시고. 처음 만나자마자 통성명도 없이 제 눈을 딱 바라보면서 “유 교수님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뭡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하나를 말해보세요” 하는 거예요. 저는 당황스러웠죠. 초면에 너무 세게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제 눈을 보면서 제대로 한번 얘기해보세요.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모두가 정의로운 그런 사회로,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런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삽니까?” 그래요. 무슨 뜻인지 물었죠. “인생은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진지하게 살아야 합니다.” 치열하게 사는 게 잘못된 건가요? 진지하게 사는 건 또 무슨 뜻인가요, 물어보니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당신은 개혁을 해야 할 사람인데, 치열하다는 건 개혁에 필요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만 급해서 머리 피 터지게 싸우는 거다. 진지한 것은 준비하고 힘을 기르고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준비론’이 100% 맞는 건 아니겠지만, 저로서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잘 새겨들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로는 조금 덜 치열해진 거죠. 좀 더 느긋하고 좀 더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지고.

제: 인생의 중후반부에 삶의 자세를 바꾸는 터닝 포인트를 주신 분이군요.

유: 제가 아까 말씀드린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를 만들게 된 것도 급하게, 왜 세상이 안 변할까 하는 게 아니라, 사회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비축하고, 또 우리 세대에 못하면 후대에 만들 수 있게 그런 그릇을 만들려고 하게 된 거죠.

▲ 유종일 교수가 97년 외환위기 직후 추가적인 금융자유화를 추진하려던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구체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한 일을 회고하고 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외환자유화 찬성 전문가들에게 “이름 적었다” 경고 

제: 지금 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 이야기를 하셨는데, 국책연구기관이나 기업 부설 민간연구소가 이미 많은 상황에서 별도로 이런 조직이 필요했던 이유가 뭘까요?

유: 우리 사회에서 정책연구를 하는 곳이 정부 혹은 재벌 돈을 받는 곳, 그 외에는 정말 소규모 연구소밖에 없어요. 그래서는 새로운 상상을 하기도 어렵고 객관적이기도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정으로 이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해 탐구하고 상상하는 지식인들의 연구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이 너무 상업화돼서, 비판적 지성들이 모여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사회 미래가 걱정된다고 느꼈죠. 그런 점에서 부족하지만 이런 그릇하나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고요.

제: 국책연구기관에서 경제전망을 하는데도, 프로그램 돌려서 나온 숫자를 그대로 발표하지 못하고 조율을 해서 내보낸다든지, 어떤 연구기관의 기관장이 바뀌었더니 금리인하에 반대하던 리포트가 갑자기 찬성으로 바뀐다든지, 또 기업 부설 연구기관들이 제대로 현실을 짚어주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거든요. 1997년 외환위기 때 지식인들이 현실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걸 정확하고 정직하게 못 해주니까 우리가 이런 위기를 겪는다는 반성을 했었는데 그런 현실이 여전하다는 말이군요.

유: 외환위기를 겪고 얼마 안 돼서 정부가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를 추진했어요. 안 그래도 금융자유화를 함부로 하다가 큰 위기를 맞아 온 국민이 고생인데, 외환 자유화 조치를 섣불리 해도 되나. 1단계는 기업들을 위해 필요했다지만, 2단계는 개인의 해외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내용이라서 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신문에 특별기고로 내보냈더니 정부에서 의견수렴을 하겠다며 정책 간담회에 초청했습니다. 가보니 정부 관계자, 외부 전문가들을 다 모였는데 저 혼자만 반대하고, 다 찬성하는 분들을 모신 거예요.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다 듣고 나니 맥이 빠지고, 속으로는 화도 치밀고. 그 순간 제 특유의 ‘깡’이 발동했죠.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경제학자나 관료라 경제위기에 대해 훨씬 책임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의 위험한 조치를 취해서 또다시 외환위기가 오면, 제가 구체적으로 책임을 묻겠다. 여기 계신 분들 성함 다 적어 놨다. 그랬더니 다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원칙적으로는 자유화가 필요하지만 위험성을 생각해서 속도조절은 필요하다.

제: 이름 적었단 한 마디에.

유: 네. 그래서 실제로 보완 조치도 이뤄지고. 그래서 2단계 외환자유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 다음 단어로 넘어가겠습니다. ‘자호공스’를 꼽아주셨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 단어인지?

유: 제가 나름의 교육관을 갖고 아이들을 길렀는데, 그게 한국 교육시스템과는 잘 안 맞아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자호공스는 아이를 기를 때 ‘자존심 길러주고 호기심 키워주면 공부는 스스로 한다’란 말의 앞글자를 딴 겁니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건 다른 것 아니고. 어린 아이들일지라도 욕망이 있고 자기 주관이 있거든요. 그걸 존중하라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굉장한 호기심이 있어요. 아이들을 키워보면 아시겠지만, 호기심이 한도 끝도 없어요. 그걸 죽이지 말고 호기심에 물을 주자는 겁니다. 자존심과 호기심 죽이는 게 시험입니다. 정해진 부분을 공부하게 하고 그걸로 점수를 매기고 서열화하고. 시험을 보고나면 스트레스 받고 자존심 상하고 공부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집니다. 저는 시험에 절대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식으로 애들을 키웠더니 학교랑 잘 안 맞았습니다. 큰 아들이 첫 시험에서 42점을 받아온 거예요. 제가 안 놀란 건 아닙니다. 사실 한마디 했어요. 점수 잘 받을 필요는 없는데 42점은 좀 독특한 점수다. 그랬더니 아들이 “40점 받은 애도 있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꼴찌는 아니라는 거죠. (웃음) 학교라는 게 나이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시험 위주고, 주입식이고 그렇게 되다보니 도저히 못 견디게 된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두발규제 가지고 투사가 돼서 싸우더니. 결국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더군요.

▲ 유종일 교수가 자신의 교육철학인 ‘자호공스’를 설명하고 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큰 아이고, 아들인가요?

유: 네. 밑으로는 딸아이가 하나 있고요. 자퇴한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총 맞은 것처럼 팽하게 아팠어요. 내가 여기서 ‘노’하면 나는 꼰대다, 나는 이 아이의 친구가 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역시 내 아들이구나, 장하다, 그런 학교 그만두자. 아빠는 무조건 네 편이 돼서 어떤 선택을 해도 도와주겠다.” 그렇게 한 게 정말 잘 한 것 같아요. 지금도 아들은 신뢰관계를 가진 친구가 됐고요. 그 후로 머리 신나게 기르고, 허리까지 길렀더라고요. 대학을 안 가고 음악을 하겠다고, 음악적 재능은 별로 없는데 그러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계화 시대에 진짜 실력을 기르고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느 대학 나왔다는 걸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제: 그럼 그 아드님은 지금 현재 원하는 분야를 추구하고 있는 건가요?

유: 지금은 제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물리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칼텍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돈 받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있으니까요.

제: 고등학교는 자퇴했지만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찾아서 열심히 추구하니까 지금은 정말 하고 싶은 길에 제대로 들어섰군요.

유: 사실은 조기 유학 간 아이들보다 더 빨라요.

제: 그래도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데,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부모님들을 위해서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유: 정말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아직은 미성숙하니까 부모님의 조언은 필요하죠. 그러나 어디까지나 조언자고, 정 아니다 싶으면 설득하고 타협책을 모색해야지 강요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 유교수는 세상이 원래 ‘운칠기삼’이라고 말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유: 오늘 ‘인생의 지혜를 나누는 강의’를 하라고 했는데, ‘운칠기삼(運七技三)’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옛날 중국에 선비가 하나 있었는데, 평생 과거시험을 보다 낙방을 해서 쫄딱 망했어요. 억울해서 옥황상제를 찾아갔죠. 나보다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도 잘만 붙는데. 나는 어떻게 번번이 떨어지고, 불공평하지 않느냐. 옥황상제가 재밌습니다.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서 술 대결을 시켰습니다. 정의의 신이 3잔을 마시고 떨어지고, 운명의 신은 7잔을 마셨죠. 그래서 운칠기삼이다. 세상은 원래 운명의 장난이다. 그러나 정의도 3할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무 불평하지 말고 노력을 더 해봐라, 이런 얘기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옛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많은 직간접 관찰을 통해서 얻은 나름대로의 추론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그것은 옛날 중국 이야기고, 현대 사회는 어떨까. 제가 우연히 읽었던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고 사실은 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건데요. 미국 학자들이 연구를 했어요. 온라인으로 상품을 출시해 판매를 하기 전에 전문가들한테 여러 가지를 평가를 받은 뒤 평가가 아주 높았던 상품들, 평가가 아주 나빴던 상품들, 중간에 있었던 상품들 중 어떤 게 실제로 성공하느냐 하는 걸 봤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거의가 운이더라. 물론 평가가 좋은 상품들이 성공할 확률이 좀 더 높긴 하지만, 운으로 결정되는 게 훨씬 많더라. 왜 그런가 하고 따져 보니까, 처음 만난 최초의 몇몇 소비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많은 부분 운이 작용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또 관련된 여러 가지 과학적 연구를 찾아봤더니, 무엇보다 스포츠 분야에서 이변이 많이 생기잖아요. 객관적인 전력에서 훨씬 앞서는 팀이 이길 것 같은데 그렇지 않기도 하고. 이변이 없고 랭킹 나온 대로 결과가 나온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종목에 따라서 축구나 야구 이런 건 이변이 많고 농구는 상대적으로 이변이 적고, 이런 것들이 나오더라고요. 주식투자는 심지어 90%이상, 98%가 순 운이다 하는 연구 결과가 많았고요.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아이스하킨데, 아이스하키 프로 선수가 되면 최고 아닙니까. 그 프로 선수들의 생일을 봤더니 너무나 묘하게도 1,2,3월생들이 집중돼 있어요. 이건 확률적으로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따져 봤더니 아이들이 5~6살부터 스틱을 잡고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때는 몇 달이라도 일찍 태어난 아이들의 신체 조건이 훨씬 낫거든요. 그러니깐 1월생부터 12월생까지 끊어서 보면 대부분 그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1~3월생인거죠. 이 아이들이 지역대표로 뽑히고, 학교 대표로 뽑히고 자꾸  그러면서 합숙 훈련도 가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1만 시간의 법칙’이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누구나 1만 시간 한다고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1만 시간 투여가 되면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사실은 행운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 캐나다 아이스하키 프로선수들의 생일이 우연히도 1~3월에 몰려있는 것은 성공이 운에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정말 중요한 교훈이 있다는 겁니다. 첫째, 잘 나갈 때 이것은 내가 잘나서,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많은 부분이 내가 운이 좋아서 혜택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자만하지 말고 감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나눌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를 보면 잘 나가는 분들, 재산을 갖고 권력을 가진 분들이 이런 자세가 참 아쉬운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들의 온갖 갑질, 횡포, 이런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가진 사람들이 좀 겸손해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나눌 줄 알고.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자기가 잘나서 권력을 누리고 행사하는 게 아니거든요. 국민한테 위임 받은 거예요.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국민들을 섬기고 그런 사명에 헌신하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두 번째로는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너무 자신을 자책하고 세상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에게도 운이 올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고. 이미 지나간 것은 바꿀 수 없는 거잖아요. 평온한 마음으로 수용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작년에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예기치 않게 암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은 후 예후가 좋지 않다는 얘길 듣고 죽음을 준비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죠. 암 환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이 ‘내가 왜, 그럴 리가 없어, 왜 하필 나야, 억울해’라는데 저는 그게 없었어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최대한 담담하게, 물론 엄청난 타격이었지만 이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서 가장 현명한 대처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삶을 정리하고,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병마와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회복 중)

마지막 교훈은 우리 사회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격차가 벌어지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옳지 않다, 많은 부분이 운으로 결정되니까. 더군다나 태생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많다면 더 옳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좀 더 공평해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좀 더 나누고 실패한 사람들한테는 사회가 지지해 주고 재기의 기회를 주고,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누리고 공평해지는 그런 사회가 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기도 하죠.

▲ ‘운칠기삼’의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고 감사하고 겸손하며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유종일 교수.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장기연체자를 ‘빚에서 빛으로’ 이끄는 주빌리 은행

제: 관심과 열정을 갖고 하는 일 중에 주빌리 은행의 공동은행장 얘기를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이 은행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유: 너무나 (형편이) 어려워서 잠깐 돈을 빌렸으나, 적은 돈이었지만 이자는 굉장히 높고 사정이 어려워서 갚지 못한 분들이 많죠. 그리고 억지로 일부를 갚았습니다만,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신용불량자 되고 빚 독촉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통장개설도 안되고, 자기 명의로 휴대폰도 만들 수 없고. 이렇게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내몰린 분들이 우리나라에 너무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100만 명 넘게 장기연체자로서 고통을 받고 있고,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소액 다중채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350만명이나 됩니다. 우리 경제에서 이분들이 사회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아까운 인적자본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저희 구호가 ‘빚에서 빛으로’입니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환한 희망의 빛을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악성 부실채권들을 사 모으기도 하고 잘 설득해서 기부를 받기도 해서 이것들을 없애줍니다. 그 중에 약간이라도 형편이 되는 분들은 빚을 탕감 받는 대신 원금의 일부라도 갚아서 그 돈이 이 운동을 더 확산하는 데 쓰이도록 하고.

제: 그러니까 부실 채무가 거래되는 시장이 있다는 것인데, 그 실태는 어떤지요.

▲ 주빌리 은행은 생계형 장기연체자들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준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유: 그것도 참 놀라운 일인데요, 처음에 은행을 떠날 때는 채권의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값을 받고 팔리는데 이게 한 번 쥐어짜고 또 팔고 하면서 계속 손을 바꿔 타는 거예요. 그러면 추심을 당하는 사람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못 갚는데, 어디 대부업, 저축은행, 이상한 데서 채권자라고 나타나는 거예요. 300만 원 빌렸었는데, 그 동안에 고통을 당하고 또 갚을 만큼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1200만 원 갚으라고 또 나타나고. 그렇게 오래된 채권들은 1%에도 팔려요. 그런 것들을 잔뜩 사서 그 중에 한두 놈만 쥐어짜도 나는 남는 장사다, 하고 계속 그런 추심을 하는 업체들이 있죠.

제: 그러니까 100만 원 대출금을 못 같은 부실채권을 1만 원에 매입한 추심업자들이 채무자에게 원금 100만 원과 이자까지 받아내려고 한다는 거죠? 그래서 받아내면 대박이고. 대체로 어떤 과정으로 빚을 져서 갚을 수 없는 단계까지 가는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유: 뭐 그런 사람들 많죠. 요즘 청년들 중에 학자금 대출도 받고, 그걸로 모자라서 대부업체에서 소액을 빌리기도 하고.

제: 그러니까 생활에 아주 급한 돈, 등록금, 보증금, 병원비 같은 거군요.

복지로 풀어야 할 문제를 대출로 해결하는 정부

유: 그런데 반듯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바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덫이 되는 거죠. 죽어라고 노력을 해서, 밤에 대리운전도 하고 노력을 합니다만 먹고살기는 근근이 먹고 살면서 갚고 갚아도 못 갚는 거죠. 이자부터 까게 돼있거든요. 사실은 원리금 상환으로 해줘야 하는데,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계속 갚아요. 그런데 이자가 더 불어나는 거예요. 금융기관이 그래서 애초에 이 사람은 변변한 직업도 없고 소득이 없으니, 함부로 돈을 빌려주면 안 되겠다 하면 돈을 빌려주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보십시오. 누가 어렵다, 농촌이 어렵다, 전세자금 때문에 어렵다, 학생들이 어렵다, 그러면 전부 대출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온 국민을 빚쟁이로 만드는 거죠.

: 사실 그건 복지가 해야 할 부분인데.

유: 그렇습니다. 돈을 못 버는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주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결국은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고혈을 빼는 약탈적 대출이 되는 거거든요. 이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를 해주고 자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금융업들의 먹이로 노출시켜버린, 그런 것이거든요. 이것이야말로 훨씬 더 나쁜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은행이 부실화되면 경제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겠네 하면서 구제금융 하잖아요. 기업들이 도산 지경에 놓이면, 물론 일정한 프로세스는 거치지만 채무조정 해주고. 그런 관점에서 개인 채무자가 정말 갚을 수 없는 상태에서 생존의 한계까지 몰리면 대출자가 알아서 채무 조정을 해주는 그런 제도가 필요하겠네요.

: 그렇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의 과오는 경제양극화 심화

: 교수님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대선캠프에서 관여해서 두 정부의 출범에 모두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민주정부 10년의 공과 과를 한 가지씩만 평가를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데 성공했지만 경제민주화에는 실패했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 공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괜히 민주정부라고 하겠습니까. 민주화시킨 거죠. 국민들의 기본권,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권리 그런 것들이 신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요. 안타깝게도 과도 컸습니다. 민주정부의 출범 시기가 IMF 외환 위기와 겹쳐서 IMF의 요구도 있었고, 당시 사조나 사회적인 분위기나 이런 것들 때문에.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하죠. 시장 만능주의. 이런 쪽으로 너무 많이 가서 그 결과 정리해고, 공기업 민영화, 이런 것들로 인해 결국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거죠. 재벌개혁 한다고 했으나 용두사미가 돼 버렸고요. 정치적 자유는 신장이 됐지만 경제 민주화는 실패했다.

: 지난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그때 위원장을 맡아서 재벌 개혁이라든지 분배라든지 복지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공약을 만드셨잖아요. 근데 그때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으셨어요. 그리고 2002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정권 창출에 깊숙이 개입했는데, 실제로 공직에 등용되지 못하셨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제가 뭐 여러 가지로 부족하겠죠. 말씀드렸지만 저는 약자에 약하고 강자에 강한 스타일이라서, 권력과 돈이 많은 사람들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내막을 누가 다 알겠습니까마는 많은 분들이 하시는 얘기가 재벌이 막지 않았겠느냐. 저도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은 합니다만,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죠.

게임 도중에 규칙 바꾸는 정치 현실에 좌절

: 2010년 전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나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셨는데, 그 때를 기점으로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하신건지, 그렇다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 사실 많이 망설여졌는데,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나니까 제가 봤을 때 역사가 거꾸로 가는 거예요. 4대강 사업도 그렇고, 경제 정책도 그렇고, 국민의 기본권에서 그렇고. 그래서 이것은 안 되겠다. 그러면 대안이 있는가. 제가 야당을 보니깐 미안한 얘기지만 야당이 무능하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고 비전이 잘 안보이고. 그래서 이래가지고는 이 나라를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전북도지사가 대단한 자리가 아니지만 그곳이 제 고향이고 주변의 이런 저런 권유도 있었고 해서 경제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 착각?(웃음)에서 나갔던 거죠. 제가 뜻한 일에 크게 실패하는 경험이 어쩌면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전에 제가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전부 자발적인 선택이었던 것이고. 그건 저한테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 (전북도지사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도전했는데 실패하면서 많은 걸 느꼈군요.

: 우리나라 정당들이 다들 그렇습니다만. 게임의 룰이라는 게 없어요. 항상 게임 중간에 룰을 바꾸고요. 이번에 공천 사태도 그랬죠. 정해져 있는 규칙도 무시되고 ‘원래 이 당은 이런 규칙에 의해서 한다’라는 것이 있지 않고요, 선거 때만 되면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고 하는 것을 제가 직접 체험을 한 거죠. 이런 규칙이 있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 보면 좋겠다’하는 권유와 판단이 있었는데 이 정치권에 존재하는 기득권의 자기보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크구나. 절감을 했었죠.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저는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그런 것들을 봤습니다.

: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선출직에 도전할 생각이 있으세요?

▲ 정치참여와 관련, ‘매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매겠다’고 말하는 유종일 교수.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 제가 정말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것이 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는데, 제가 매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매겠다. 그것이 그런 것이든지, 남들이 보기에도  희생인 어떤 것이 됐든지, 저는 많은 것을 누렸으니까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각오는 항상 하고 있습니다.

1%와 99%의 공존 조건은 경제민주화

: 사회적으로 1%와 99%의 대립이 점점 심해져서, 어떤 인공지능 전문가는 앞으로 0.0001% 대 99.999%의 대결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합니다. 가진 소수와 못 가진 다수가 대립 갈등하는 사회가 아니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행복한 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해답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유엔(UN)에서 매년 세계 행복 보고서를 냅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가. 북유럽 국가들이에요. 덴마크, 스웨덴. 그럼 왜 그런가? 그 나라들은 삶이 안정돼 있고 유복하고, 경쟁보단 협동을 하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경제민주화 하고 복지 잘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잘 살고 행복한 나라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나라에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처럼 황제처럼 군림하는 세력이 없어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과감하게 재벌을 개혁해야 하는 거죠.

: 복지는 스웨덴을 예를 들어 말씀해 주셨고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말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게 재벌 개혁인데, 재벌 개혁과 관련해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면.

: 재벌개혁을 얘기한지가 문민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20년이 지났죠. 그런데 재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뭡니까. 총수들의 황제경영, 족벌경영이죠.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세습을 하고. 이런 것을 바꾸기 위해서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변죽을 울리는 개혁을 했어요. 예를 한 가지 들자면 사외이사를 둬서 총수를 견제해야 한다고 도입했는데 이후에 뭐가 바뀌었습니까. 사외이사들이 총수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 하는 것,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하는 것 막은 적이 있습니까?

: 회장님의 동창생들이고, 권력기관에서 온 사람들이고...

▲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집중투표제 등을 통해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유종일 교수.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 네. 이런 것이 로비창구로 이용될 정도로 유명무실화됐잖아요. 그러면 소액주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선출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것이 집중투표제거든요. 하지만 선택조항으로 만들어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은 이걸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었거든요. 안 하는 거예요. 진짜로 바뀔 수 있는 부분들은 재벌들이 다 반대해서 못하게 하는 거예요. 집단소송제, 다중대표소송제 등등 진짜로 바꿀 수 있는 것을 해야죠. 우리 사회에서 아직 아젠다(의제)가 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만, 직장에 한 평생 바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직장을 좋은 직장, 경쟁력 있는 직장을 만들고. 그 직장에서 총수가 특권을 누리며 회사 돈 빼내가는 걸 못하게 막지 않겠습니까. 노동자 경영참가와 같은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유구조에 대해서도 순환출자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그것은 일부고요. 지주회사나 다양한 다단계 출자에 의해서 실제 소유보다 너무 많은 것을 지배하고, 왕국을 건설해서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거잖아요. 그런 것을 바꿔줘야 하죠.

제정임의 마침표: 미움 받을 용기와 내려놓음의 지혜를 함께 가진, 철든 청년 유종일.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797384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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