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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의 얼굴
[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2] ⑤ 1면, 백지 또는 괴물
2016년 05월 02일 (월) 15:39:23 고경태 humank21@gmail.com
   
▲ 고경태

백지이거나 괴물이었다.

2012년 1월 1일 아침,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팔과 다리 등 몸체는 대충 갖춰졌는데 얼굴이 없었다. 눈과 코와 입과 귀의 형상이 하나로 잡히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생긴 거니. 아니 도대체 어떻게 생길 거니.’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텅 빈 백지만이 어른거렸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조잡한 괴물의 얼굴만이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결과처럼 나타났다가 소멸했다. 희망차야 할 2012년의 새해 첫날, 막막함과 불안함이 가슴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토요판 걱정부터 하던 때였다.

토요판 준비팀장으로 한고비를 넘기던 시절이었다. 잠시 위기에 놓였던 토요판 프로젝트는 기어이 살아남았다. 2011년 11월과 12월, 회사 안에서 창궐하던 여러 반대와 우려를 돌파했다. 대통령 선거의 해인 2012년에 기획기사를 축으로 설계된 토요판 지면이 신문의 현안대처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반론은 가장 강력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스트레이트 뉴스만을 중심에 놓고 보는 미디어 패러다임은 과거의 것이었다. 편집국장은 초기 계획안에 가깝게 토요판 발행을 밀어붙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호는 2012년 1월 28일 내기로 했다. 시간은 채 한 달이 안 남았다. 진통 속에서 가슴앓이했던 만큼 망해선 안 된다는 강박은 두 배로 커졌다. 더 잘 만들지 않으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 정점에 토요판의 얼굴이 있었다.

   
▲ 백지이거나 괴물이거나. ⓒ flickr

독자 FGD를 하다

얼굴 빼고는 상당 부분 진행이 된 상태였다. 몸통에 해당하는 본문의 주요 구성물이던 스트레이트 뉴스는 ‘오늘’이라는 문패를 달아 4쪽으로 최소화하기로 했다. 당시 토요일치에 실리던 책면을 제외한 나머지 지면들은 완전히 새롭게 판을 짜야 했다. 킬러콘텐츠가 될 만한 외부 필자의 연재물은 이미 2011년 여름부터 섭외해놓은 터였다. 김두식 교수(경북대)의 인터뷰 코너나,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한홍구 교수(성공회대)의 현대사 시리즈, 히틀러를 소재로 한 김태권 작가의 만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그림에세이,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의 책에세이, 문화칼럼니스트 이승한의 TV 칼럼, 축구선수 이청용의 편지글 등이 확정되었다.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고정꼭지도 페이지 구성만 남겨놓고는 모두 이름까지 정해놓았다. 가족, 생명, 승부, 다음 주의 질문, 친절한 기자들, 키워드놀이, 한 장의 다큐, GIS 뉴스, 르포 등등이었다. 남은 것은 1면을 장식할 커버스토리였다. 화룡점정, 즉 이제 용의 얼굴에 눈동자만 찍으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그려 넣어야 할지 가늠이 안 돼 고민이 깊었다.

신문의 얼굴은 1면이다. 잡지로 치면 표지다. 1면과 표지의 생김새는 해당 매체의 가치와 성격, 특성을 가장 극적으로 요약해주는 이미지다. 해당 매체 편집장의 미감이 그곳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신문의 1면은 대부분 텍스트(글)와 사진이다. 머리기사 제목과 사진의 선택, 편집디자인의 조화가 결정적이다. 잡지의 표지엔 긴 텍스트가 없다. 대신 짧고 함축적인 카피다. 잡지의 표지 사진은 신문과는 달리 스트레이트 뉴스를 보여주는 경우가 적다. 커버스토리에 맞춘 인물사진일 때도 있고, 일러스트나 유화, 만화, 클레이(점토)등이 상황에 맞춰 다양하게 등장한다. 잡지는 신문보다 훨씬 자유로우면서 한 단계 높은 미적 감수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1면과 표지의 메시지는 해당 매체의 지적 수준과 품격, 완성도의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토요판 1면은 어떠해야 하는가. 토요판은 일간신문이되 일간신문일 수 없었다. 전날의 발생뉴스를 최우선 대접하는 관성을 넘어서야 했다. 잡지의 짜임새를 빌려오더라도 잡지일 수는 없었다. A4용지만 한 잡지와, 그보다 서너 배 큰 대판 신문의 분위기가 같을 리 없었다. 종이 질감도 다르지 않은가. 내가 만들려는 토요판 1면은 긴 호흡의 기사와 당일의 스트레이트 뉴스가 기묘하게 동거하는 ‘하이브리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잡종’이었다.

잡종의 얼굴을 어떻게 탄생시킬지 조사하지 않은 바 아니었다. 기획 초기 단계였던 2011년 11월 초순, 적잖은 회사비용을 들여 독자 FGD(Focus Group Discussion·심층그룹토론)라는 걸 진행했다. 한겨레 주주 남성독자와 주주 여성독자, 타 일간매체 구독자 등 세 그룹(각각 7~8명)을 불러모아 주중 및 주말의 라이프스타일, 매체 접촉형태, 토요일치 신문에 대한 기대 등을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거였다. 토요판 팀에서 세운 컨셉과 기획 아우트라인을 제시한 뒤 반응과 수용도도 측정했다. ‘독자들이 토요판에 기대하는 1면’은 그 항목 중 하나였다. 당시 FGD 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이에 대한 답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면에 비주얼이 부각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한겨레의 생각이나 시각을 좀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스트레이트가 아닌 심층기획기사를 싣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에요. 하지만 스트레이트 기사가 토요신문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에는 부정적인 편입니다.”

원칙적이거나 추상적인 내용이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효용성이야 있겠지만, 본디 독자 FGD란 안팎으로 여론수렴 절차를 꼼꼼하게 거쳤다는 일종의 알리바이 증명에 가까웠다. 나는 1면 디자인과 아이템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컨셉과 알맹이를 원했다. 독자 조사를 통해서도 그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남의 떡

모델로 삼을 만한 매체가 없지는 않았다. <서울신문>이었다. <서울신문>은 2011년 3월 5일치부터 토요일 신문을 새로 꾸며 선보였다. 이른바 '리뉴얼(renewal)'. 바탕색깔 없이 검은 글씨의 제호만을 쓰는 평일판과 달리 토요일치 제호는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처리해 악센트를 주었다. 그 밑엔 ‘Weekend(위켄드·주말)'라는 표기도 했다(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다음 주부터는 빠졌다). 1면 상단에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올렸다. 아래에는 스트레이트 뉴스를 실었다. 새로 단장한 3월 5일치 커버스토리 주제는 1년 전 북한 포격을 받은 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평도의 봄’이었다. 2면, 3면까지 모두 채우며 이어진 잡지 커버스토리 방식이었다. 콘텐츠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미려는 편집자의 마음이 와 닿았다. 본문에서는 ‘주말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심층기사의 절대량을 늘렸다. <서울신문>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토요일치를 바꿔보려는 실험에 나선 셈이었다. 노력을 평가해줄 만했다.

   
▲ 2011년 3월 5일자 <서울신문>. ⓒ 서울신문

다만, 따라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선수를 빼앗겼다는 자괴감도 생기지 않았다. 토요일의 <서울신문>은 맛보기였다. 남의 떡이었지만 커보이지는 않았다. 전복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1면의 구성도 그동안 일간신문이 특별히 기념할 만한 날에 해오던 디자인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편집은 화사했고, 콘텐츠에선 뭔가 색다른 주제를 써보려는 성의가 느껴지긴 했다. 나는 화사한 지면엔 큰 관심이 없었다. 화제성 커버스토리엔 감흥이 파도처럼 밀려오지 않았다. <서울신문>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했지만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살짝 뜯어고친 '개량'이었다.

<서울신문> 토요일치는 미국 일간신문 <유에스투데이> 주말판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였다. <유에스투데이>는 오래전부터 1면과 본문을 다르게 포장한 주말판을 토요일 대신 금요일에 통합발행해왔다. 금, 토, 일 3일간 읽으라는 특별판이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 나 역시 <한겨레> 주말판 준비팀장으로 일하던 2006년, <유에스투데이> 모델에 관해 귀동냥으로 전해 들은 적이 있다(2회 ‘그놈의 스트레이트’ 참조). 1면에 커버스토리 개념의 기획기사를 싣고, 안쪽에도 길게 읽을 만한 기사를 많이 배치한 것이 <유에스투데이>의 독특한 형식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외국에서 수입해온 ‘주말판’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 건 그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 2006년 8월 21일 평일 신문(왼쪽), 2015년 6월 12일 주말판(오른쪽)으로 발행된 <유에스투데이>. ⓒ USA TODAY

‘주말판’대신 ‘토요판’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토요일 하루가 아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읽는다는 의미에서 ‘주말판’이 더 정확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당시 <한겨레>에서 시민편집인(독자를 대표하는 옴부즈맨)으로 활동하던 이봉수 교수(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원장)도 ‘주말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거친 언론계 선배이기도 한 이 교수에게는 <가디언> 등 외국 신문의 혁신사례에 관해 귀중한 정보와 자료를 많이 얻었다. “겁내지 말고 파격을 시도해보라”는 독려 덕분에 용기를 충전하기도 했다. 그의 여러 조언을 대부분 경청하고 수용했지만 ‘주말판’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신문 주말판의 역사와 전통 탓이었다. 주로 섹션으로 제작해온 주말판은 ‘휴식용 콘텐츠’의 함의를 품고 있다. 따라서 ‘주말판’이라는 용어는 독자들에게 ‘연성기사 지면’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른바 연성기사란 한마디로 한가한 기사다. 가령 먹고 놀고 쉬기와 관련한 기사다. 맛집이나 레저, 패션 따위의 생활정보 등이 속한다(한국 언론에서 많이 사용하는 연성기사-경성기사의 기계적 이분법은 기사의 가치에 관해 소재 중심으로만 접근한다는 점에서 폐기되어야 한다). 토요판은 묵직한 시사 콘텐츠로 중심을 잡고 승부해야 한다는 게 나의 굳은 신념이었다. 내부 합숙회의 과정에서 생활문화 섹션인 ‘esc’를 토요판으로 가져와 독자들에게 쉼표를 제공해야 한다는 한 팀원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정치·사회적 긴장감과 특색을 갖춘 심층기사와 단독보도를 통해 단단한 저널리즘의 어떤 전범을 보이는 일이 더 급하고 막중하다고 생각했다. 얼굴인 1면은 특히 그래야 했다. 아, 말은 참 얼마나 쉬운가. 그걸 장담할 수 없어 암담했으니.

내가 괴물이 될 것 같은

2012년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2011년 12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거리엔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반짝였다. 한파가 몰려와 출퇴근하던 지하철이 자주 멈춰 서던 겨울이었다. 회사의 한 송년회 자리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던 선배와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선배는 잠시 한담을 하다말고 정색을 하더니 토요판에 관한 걱정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선배는 토요판을 둘러싼 회사 안의 비판적 의견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20년이 넘게 한겨레에서 일하는 동안 편집국 지면개편을 놓고 이렇게 여러 말들이 터져 나오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토요판에 관해 꼭 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핵심은 1면 커버스토리였다. 지속가능성과 수준 유지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토요판 팀원이 6명인데, 그중 고정 취재인력은 4명이잖아? 이들만으로 일간신문 1면 머리기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커버스토리를 매주 생산할 수 있을까? 이야기되는 기사들을 1면뿐 아니라 뒤쪽 2개 면에 제대로 펼칠 수 있겠어? 편집국 내 다른 부서에서도 참여해야겠지만 얼마나 자주 가능할까? 정성을 들여 깊이 있는 취재를 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말이야.”

그는 편집국장으로 선출되어 2년간 신문의 최고책임자 노릇을 해본 선배였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토요판 1면의 견적이 안 나온다고 했다.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렇게 들으니, 견적이 안 나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지속가능성! 쉽지 않았다. 수준 유지! 나도 우려스러운 바였다. 한두 가지의 화끈한 실물을 지면으로 보여준다면 걱정을 잠재울 수 있겠으나, 토요판 1면은 아직 백지상태가 아닌가.

사실 완전한 백지상태는 아니었다. 다음 회에 상세히 밝히겠지만, 토요판 1면 커버스토리 디자인의 윤곽은 얼추 정해져 있었다. 콘텐츠 콘셉트도 세웠다. 한데 불완전했다. 아이템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요판 첫 호에 걸맞은 주인공을 찾지 못했다. 아무도 인터뷰하지 않은 누군가를 섭외해서 만날 날짜까지 박아놓아도 안심이 될까 말까 한데 말이다. 2012년 1월 1일은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천장에 자꾸 괴물이 그려졌다. 이러다가 정말 괴물 같은 1면이 나오는 게 아닐까. 나 자신이 괴물로 변신할 것만 같았다.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1968년 2월 12일>까지 4권의 책을 썼다. 2009년에 낸 <유혹하는 에디터>가 편집자를 다뤘다면, 2016년의 이 연재물은 편집장 이야기다. <한겨레21> 편집장, <씨네21> 편집장, esc 팀장,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문화스포츠 에디터, 토요판 에디터 시절의 에피소드로 버무릴 예정이다. 격주 연재.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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