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황금빛 기자

▲ 황금빛 기자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철학자 칸트의 말이다. 이 말은 인간을 수단으로, 돈을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찰해 보아야 할 명언으로 언급된다.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사회에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만연하게 된다. 결국 고르지 못한 사회, 함께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왜 고르지 못한 사회가 될까? 돈만 목적으로 삼을 때 인간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원의 집중이 필요하다. 가난한 가정에서 첫째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략은 나름대로 효과적일 수 있다. 성장에 목을 맨 정부가 재벌 의존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공정하지 못한 성장정책의 종착지는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불균형과 불평등이다.

<경쟁의 배신>을 쓴 마거릿 헤퍼넌은 가정에서 첫째에게만 집중된 투자에 질투를 느낀 나머지 자식들은 첫째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 공략하게 된다고 했다. 사회 전체를 봐도 그렇다. 나머지 기업들은 재벌이 하지 않는 분야를 공략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초기자본조차 축적할 기회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좀 된다 싶은 분야가 생기면 대자본이 어김없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 사회가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해지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기득권층과 대자본은 알아야 한다. ⓒ Flickr

그러나 사회가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해지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기득권층과 대자본은 알아야 한다. 공멸을 피하려면 공생하는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총장을 20년간 역임한 데릭 보크는 저서 <행복국가를 정치하라>에서 ‘행복 체감의 법칙’을 말하면서 모두의 행복을 증가시키려면 분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자원 집중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를 느낀 이들이 의지할 곳이 없어 범죄를 저지르거나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르지 못한 사회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앳킨슨지수를 활용한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33개국 가운데 4위다. 앳킨슨지수는 불평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주관적 가치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그들이 불평등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준다. 공평한 소득분배에 대한 구성원의 열망이 높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가 사회 전체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특히 기득권과 거리가 먼 대다수 청년은 불평등을 더욱 심각하게 느끼는 세대이다.

총선 국면에서도 유력한 정치세력들은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이합집산에만 골몰할 뿐, 대다수 유권자가 느끼는 불평등 문제는 이슈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선거는 주권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과 그것을 밀고 나갈 일꾼을 뽑는 절차이지 승자에게 권력과 명예를 바치려는 의식이 아니다. 유권자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려면 민주주의의 주인답게 행세해야 한다. 특히 투표율 낮은 청년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선거에 참여하고 불평등 문제에 답을 내놓는 쪽에 표를 몰아주는 ‘주인의 정치’를 해야 한다.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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