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기획, 다시 언론이다] ① 언론은 무엇인가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민의의 장 총선에 언론이 없다. 공천 절차의 비민주성은 숨겨졌고 국가 운영 방향인 정당정책은 가려졌다. 있어야 할 보도는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북풍몰이식 냉전의 음험함과 특정 권력을 향한 충성 경쟁, ‘카더라’ 언론이 내뱉는 흑색선전만이 가득하다. 하여 다시 언론이다. 언론 없이 정책대결 선거는 없다. 언론 없이 민의 수렴절차인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2016 총선, 우리의 시선으로 다시 언론을 생각한다. 모두 4회로 진행될 시리즈의 첫 회는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를 통해 “언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편집자)

일주일 동안 갈아입지 못해 꾀죄죄한 옷차림에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 휘갈긴 메모와 다 떨어져 가는 수첩. 그러나 눈은 빛난다, 언론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시민은 열광하며 묻는다. “왜 우리 주변에는 저런 언론인이 없을까.”

영화 속 언론인은 언론의 기본을 지켰을 뿐이다.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독자와 시민을 위해 양심을 좇아 뉴스를 만든다. 언론을 다룬 영화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사회가 언론의 기본을 지키는 언론인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언론은 무엇인가, 언론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단비뉴스>가 기본을 지킨 언론인을 다룬 영화 5편을 소개한다.

1. 사실에 가려진 진실을 찾다 - 임순례, <제보자>

MBC <PD수첩>의 한학수 PD와 최승호 PD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기반 영화다. NBS <PD추적>의 윤민철 PD(박해일 분)는 한 제보를 받는다. 건강하던 아내가 난자를 팔러 병원에 다녀오더니 시름시름 앓더라는 내용이었다. 윤 PD는 취재를 통해 해당 병원에서 불법 난자 매매가 이루어졌고, 채취된 난자들이 한 거대 병원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아낸다. 윤 PD가 데스크인 이성환 팀장(박원상 분)에게 이를 알리지만 이 팀장은 머뭇거린다. 해당 병원이 줄기세포 연구로 국민 영웅이 된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의 난자 공급처였기 때문이다. 보도를 위해서는 당시 난치병 환자의 희망이던 이 박사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과 일전을 각오해야 했다. 안팎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윤 PD는 마침내 줄기세포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아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도 따랐다. 제보자인 닥터K(유연석 분)는 직장을 잃었다.

임순례 감독은 시사 회견에서 이 영화를 “우리 사회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한 언론인의 집요한 투쟁이었다”며 “이 영화는 거짓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희생하고 애쓰는 분들에 대한 헌사”라고 밝혔다, 임 감독은 헌사라 했지만, <제보자>는 척박한 이 땅의 언론 환경에 대한 경종이다. <제보자>의 모델이 됐던 한학수 PD와 최승호 PD는 지금 MBC PD가 아니다. 해고자다. 방송사에는 영화처럼 “진실이 국익”이라 말하는 국장도 없고 “방송 시작해, 난 집에 가서 볼게”라고 PD를 밀어주는 사장도 없다. 오늘 이 땅의 방송 현실이다.

▲ ⓒ 네이버 영화

2. 기자로 살아남는 방법 - 케빈 맥도널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영화는 흑인 소년이 쫓기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골목 쓰레기통 옆에 숨어 잠시 숨을 돌리던 찰나 소년은 추적자와 마주친다. 다음 날 아침, <워싱턴 글로브>의 칼 매커프리(러셀 크로 분) 기자는 간밤에 벌어진 흑인 소년 피살 사건 취재에 나선다. 칼의 오랜 친구이자 잘 나가는 정치가 스티븐 콜린스(벤 애플렉 분)의 보좌관이 지하철 사고로 죽는다. 언론은 스티븐과 보좌관의 관계가 은밀한 관계라며 연일 자극적인 보도를 낸다.

칼은 흑인 소년 피살 사건이 보좌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신입 기자 델라 프라이(레이첼 맥아담스 분)와 취재를 시작한다. 20년차 기자인 칼은 '아날로그 기자'다. 직접 현장에 나가 취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다. 신입 기자 델라는 '디지털 기자'다. 디지털 마인드에 신속성을 추구한다. DNA가 다른 두 사람은 처음부터 부딪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협업을 이루며 서로를 배워 나간다. 델라는 발로 뛰며 검증된 사실을 찾아내는 취재의 중요성을, 칼은 신속한 정보력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영화는 오늘을 사는 기자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언론인인 당신, 당신의 친구에게 범죄 의혹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디지털 시대, 신문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두 질문에 답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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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카시즘 광기 잠재운 언론인의 용기 - 조지 클루니, <굳나잇 앤 굳럭> 

방송 최초 본격 시사다큐멘터리인 CBS <See It Now>에서 전설적 언론인으로 이름을 떨친 에드워드 머로와 그의 뉴스팀을 다룬 영화다.

1953년 상원 의원 조셉 매카시가 “지금 내 손에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국무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있다”고 폭로한 뒤, 미국사회는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린다. 정치인과 시민은 물론 언론인까지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에게 동조하거나 묵인했다. 머로(데이비드 스트라선 분)는 달랐다. 동조를 거부했다. 그는 아버지가 세르비아 신문을 봤다는 이유로 강제로 군복을 벗어야 했던 장교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선다. 방송이 나가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광고를 끊겠다, CBS를 보지 않겠다. 머로는 굴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매카시에 대항한다.

1954년 3월 9일 머로우는 <매카시 보고서>를 방송하며 매카시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클로징 멘트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광기의 시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매카시는 공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용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인사말이 이어졌다. “좋은 밤 보내시고 행운을 빕니다(Good night and good luck).” 영화제목은 여기서 따왔다.

방송 후 반격이 이어지지만 매카시 주장의 허구가 드러나고 마침내 그는 모든 권력을 잃고 매카시즘은 가라앉는다. 저널리스트의 용기가 한 사회를 지배하던 광기를 잠재운 것이다. 방송은 성공했지만 광고주의 압력으로 1958년 <See It Now>는 폐지되고 머로는 CBS를 떠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머로의 1958년, 라디오 텔레비전 뉴스국장 연차총회 연설이다. 그의 연설은 지금 한국 언론에게 이렇게 말한다.

“TV는 우리에게 영감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최소한으로만 쓰일 때만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번쩍이는 상자(it's nothing but wires and lights in a box)에 불과하다.” (Edward R. Murrow의 연설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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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자의 양식을 믿고 지켜준 신문사 사주 - 앨런 파큘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이야기다.

1972년 6월 워싱턴D.C 워터게이트빌딩의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갖고 침입한 남자 5명이 체포된다. 밥 우드워드 기자는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거물급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점, 이들 소지품에서 백악관 사무실 연락처가 발견된 사실에 의혹을 품는다. 데스크는 칼 번스타인을 우드워드 취재에 합류시킨다. 우드워드는 공화당 선거운동원을 탐문하던 도중 ‘딥 스로트’를 만나고 그에게서 “돈을 쫓으라” 암시를 얻어 선거자금 흐름을 조사한다. 취재는 계속되고 닉슨 대통령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CIA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온다. 백악관에 은폐 지시를 녹음한 도청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닉슨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결국 닉슨은 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지역신문에서 <워싱턴 포스트>로 옮긴 ‘무명’의 기자였다. 그럼에도 데스크는 초보기자를 믿었다. 벤자민 브래들리 편집장과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는 외압에 굴하지 않고 자사 기자를 지켜낸다.

아, 사족. 지난해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을 보도했던 한국의 용감한 기자 4명은 회사에서 쫓겨나 아직도 광야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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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숨과 바꾼 한 장의 사진 - 스티븐 실버, <뱅뱅 클럽>

온몸이 불타는 흑인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다. 사진의 제목은 <Human Torch(인간 횃불)>. 그렉 마리노비치는 이 사진으로 1991년 퓰리처상을 받는다. 다른 사진을 보자. 아프리카의 황량한 대지, 팔다리뼈는 앙상하고 배만 불룩한 흑인 아이가 굶주림에 쓰러져있다. 바로 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아이를 노리고 있다.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다. 케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받는다. 두 사진은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을 전 세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 그렉 마리노비치의 <인간횃불>. 1991년도 퓰리처상 수상작. ⓒ Associated Press

<뱅뱅 클럽>은 1990년대 초반부터 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민주주의 선거까지 남아공 내전 상황을 취재한 사진기자 4명의 이야기다. '뱅뱅(Bang Bang)'은 총소리를 의미한다. 당시 남아공은 넬슨 만델라를 지지하는 세력인 ANC와 정부군 지원을 받던 줄루족, 잉카다가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케빈 카터는 좋은 사진을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진”이라고 말한다. 독자가 ‘왜 이 사진을 찍었는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사진이 찍힌 현장은 왜 이런가’ 질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장의 사진은 생생한 현장의 리얼리티를 넘어 역사가 된다. 저널리스트는 한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에 다가가, 기다림과 치열한 고뇌 끝에 이슈를 사진 속에 녹여낸다.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진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좋은 사진을 추구하던 케빈 카터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94년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매일 밤 굶주리거나 다친 아이, 미친 듯 총을 쏘는 남자, 살인자의 환상과 비명소리가 들린다.” 오늘 우리 언론은 어디 있는가. 언론인은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고뇌하고 있는가.

▲ ⓒ 네이버 영화

편집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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