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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절반은 외로움이었다
[클래식카페] ‘브람스’
2015년 11월 24일 (화) 20:14:24 김민지 기자 mgone357@naver.com
영화와 게임이 대세인 시대에 음악을 얘기하는 [클래식카페]를 <단비뉴스> 한 구석에 엽니다. 혁명의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 간 모차르트, 영웅의 출현과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베토벤, 히틀러와 독일국민을 열광시킨 바그너와 푸르트벵글러, 약소국가 핀란드와 폴란드의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시벨리우스와 쇼팽, 그리고 클래식이 된 대중가요와 아이돌음악까지…… 기사 속 곡명을 클릭하면 음악이 흐르는 이 카페에서 음악은 인생과 역사, 그리고 글쓰기와 결합됩니다. (이봉수)

나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글을 쓸 줄 몰랐다.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구구단 외우기를 시작한 오빠보다 한참 늦었다. 부모님은 또래보다 글 배우기가 늦은 막내딸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을 때 피아노학원에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반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게 꼭 맞는 처방전이었다.

피아노학원 입구를 들어서면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연습한 곡을 검사받는 ‘레슨피아노’가 있었다.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틀리면 선생님 언성이 높이지고 보충연습을 하는 피아노에 올라가 추가 연습을 해야 했다. ‘보충피아노’로 가는 길목에는 연습용 피아노가 있었고 맞은편 벽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등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새소리처럼 맑고 경쾌한 모차르트 곡처럼 그는 초상화 속에서도 곱게 빗어 넘긴 머리에 무언가 불편한 듯 예민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베토벤은 무서운 표정으로 “다시”를 반복하는 피아노 선생님 표정을 닮았다. 옆에는 덥수룩한 하얀 수염에 나비넥타이도 매지 않은 할아버지 작곡가가 있었다. 무심한 표정을 한 초상화 밑에는 ‘브람스’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바이엘, 체르니 연습곡을 거쳐 모차르트와 베토벤 작품집을 연주하며 감격스러웠고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마무리하면서 깐깐한 피아노 선생님에게 ‘이제 혼자서 악보 봐도 되겠다’며 인정받았다. 7년간 피아노를 연습했고 두뇌 발달에 좋다는 말에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잠들던 내게 브람스는 미지의 작곡가였다. 유일하게 아는 곡은 익숙한 멜로디의 ‘자장가’뿐이었다. 피아노 비전공자에게는 낯설지만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의 3대 음악 거장이라 불리는 브람스는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19세기 말의 시대상을 혼란스러워하던 예술가였으며 낭만파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교향곡을 중심으로 한 베토벤 시대의 고전주의로 돌아가고자 한 ‘자유롭지만 외로운’ 작곡가였다.

브람스의 생활신조는 ‘자유롭지만 외로운(freiabereinsam)’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비평적인 작곡가로 기억된다. 예컨대, ‘자신은 종교음악에 재능을 보인 피렌체 출신 작곡가인 루이지 케루비니 정도의 고전 옹호자로 음악사에 기록되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의 음악적 겸손과 비평적 태도는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은 마을의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대도시 함부르크로 이주해 왔지만 원래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술집을 전전하는 악사가 되었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당대 유명한 작곡가이자 비평가였던 슈만의 지원과 그를 슈만에게 추천한 요아힘이 없었다면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이라 불리는 브람스 제1번 교향곡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왼쪽)와 그가 살던 비엔나의 집(오른쪽).‘자유롭지만 외로운(freiabereinsam)’ 삶의 태도를 지닌 그는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 Corbis Images

철학자에게도 19세기 후반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덴마크 항구도시 코펜하겐 출신의 키르케고르는 “유럽의 시민사회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물신성에 사로잡힌 유령이 되었다”고 말했다. 격변의 시기에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베토벤 시대의 정치적 지향과 문화적 가치를 회복하려 했다는 평가도 있다. 1876년 완성된 브람스 제1번 교향곡은 22세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한다. 1851년 5월 1일, 자본이 세계를 통치하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근대’의 시작을 알린 런던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지 4년이 지난 뒤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여 20년만의 대작을 완성한다. 당대의 명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는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이후 우리는 드디어 제10번 교향곡을 얻었다”며 감격했다.

새로운 가치가 도래하는 시기에 예술가의 선택은 다양하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 시류를 따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다. 브람스는 용기 있는 예술가였다. 42세가 되자 그는 자신이 맡은 공직, 합창단 지휘자, 협회 회장 등의 직함을 내려놓고 작품에만 전력했다. 그 결과 제1번 교향곡을 완성했고 몇 년 뒤 제2번과 제3번이 탄생했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신고전주의를 이끌어가기까지 음악적 고집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천착한 장인이었다. 초상화 속 앙다문 입술과 초월한 눈빛이 더는 무심해 보이지 않는다.


편집 : 이정화 기자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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