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의 클래식 톡톡]

뜻밖의 진객, 체코 <야나체크 오케스트라>가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체코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겨레>에서 주최한 이번 공연은 암 투병 끝에 재기에 성공한 피아니스트 서혜경과 함께였다.
 
오랫동안 동유럽은 클래식 음악의 ‘변방’으로 취급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중심의 서양음악사에서 동유럽음악은 한 챕터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20세기 초 주류가 되지 못한 설움을 달래며 ‘민족주의 음악’을 표방하던 때 얘기가 거의 전부다. 민요나 전통 춤곡에서 모티브를 딴 곡들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한’의 정서로 통하는 우리 음악과도 닮았다. 야나체크는 체코의 몇 안 되는 작곡가였고 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남았다.
 
연주는 훌륭했다. 동유럽 정취를 물씬 풍기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그리고 서혜경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2번. 라흐마니노프가 10년간의 우울증을 극복하고 이 역작을 남겼듯이 서혜경도 건강을 되찾은 뒤 더 원숙한 경지에 오른 듯했다. 이 날 연주는 관객에게 수 차례 커튼콜을 받았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된 곡들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 마지막으로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야나체크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시어도어 쿠차 (한겨레 자료사진)
라데츠키 행진곡’은 널리 사랑받는 교향곡이다. <빈 필하모닉>은 매년 1월1일 전 세계에 방송되는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앙코르 곡으로 준비한다. 앙코르 곡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공연을 가볍고 유쾌한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선 드물게 관객의 참여가 이뤄지는 곡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악장 사이에 박수를 쳐서 무안했던 적이 있는가?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될 땐 맘껏 박수를 쳐도 좋다. 지휘자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박수의 강약만 조절하면 된다.  
 
그러나 이 유쾌한 곡을 연주할 때 관객이 박수를 치게 된 유래는 썩 유쾌하지 않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시민혁명을 잔인하게 제압한 오스트리아의 라데츠키 사령관에게 헌정된 것이었다. 1848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음악가이기도 했던 요한 스트라우스 1세는 개선한 정부군 장교들 앞에서 이 위풍당당한 행진곡을 연주하게 했다. 들뜬 젊은 군인들은 군홧발로 바닥을 굴리며 열광했다.  
 
그것이 전통이 돼 관객은 이 곡이 연주될 때 군홧발 대신 박수로 화답한다. 지휘자는 박수소리를 곡의 한 요소로 활용한다. 늘 듣기만 하던 관객은 지휘자와 소통하며 연주에 참여해 즐거워한다. 음악은 그 자체로만 듣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을 때 생각나는 건 예술의 잘못된 도구화이다.
 
음악은 평화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전쟁에서는 독전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젊은이들은 북소리와 행진곡에 맞춰, 때로는 목청껏 군가를 부르며 전장으로 향했다. 국가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에 살인과 약탈을 하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생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무엇이 전쟁을 정당화하는가?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는데......
 
안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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