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② 노후 원전의 위험성 <중>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범퍼카들이 누렇게 녹이 슨 채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바닥엔 잡풀이 무성하다. 빙글빙글 돌아가게 돼 있는 비행기구는 의자들이 떨어져 나간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오렌지 빛깔의 이름 모를 꽃들은 암술이 꽃잎 밖으로 튀어나오는 등 기형적인 모양으로 피어있다. 한때 호텔이었고 아파트였던 건물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외벽이 벗겨진 채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서 있다. 도로 위에는 차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고, 건설 장비들도 여기저기 방치돼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실내수영장 바닥에 먼지와 쓰레기가 쌓였고, 사무실은 벽지가 다 벗겨진 채 서류들이 바닥을 수북이 덮고 있다. 아동용으로 보이는 병원의 철제침대는 칠이 다 벗겨졌고, 인형과 색칠 공책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4만3000명 살던 도시, 버려져 텅 빈 채 29년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 미국 씨비에스(CBS) 등 서구 언론들이 최근 보도한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속 프리피야트(Prypiat)시의 모습이다. 과거 소비에트연방(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부의 이 도시에는 원래 4만 3000여 명의 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3킬로미터(km)거리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1986년 4월 26일 폭발사고가 난 후 주민들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긴급피난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 폐허가 되어버린 프리피야트. ⓒ Flickr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에 투하된 2개의 원자폭탄을 합한 것보다 400~500배 이상의 방사성 물질을 뿜어낸 것으로 알려진 체르노빌 원전은 사고 2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다. 핵물질을 덮기 위해 응급처치로 건설했던 콘크리트 방호벽에 금이 가면서 붕괴 및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이 커져, 원전을 솥뚜껑 모양으로 덮는 초대형 금속 돔(dome)을 설치하고 있다. 폭 257미터(m), 높이 105m, 무게 3만 2천 톤(t)에 달하는 이 구조물은 우리 돈으로 약 1조5천억 원을 들여 2017년 완공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금난에 부닥쳐 공사가 늦어지자 방사성 물질 확산을 우려한 유럽연합(EU)이 재정지원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년이 지났는데도 채 수습되지 못한 체르노빌.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로 꼽히는 당시의 비극은 1978년 가동을 시작한 원전을 대상으로 터빈발전기의 관성력을 이용하는 실험을 하던 중 운전원이 무리하게 출력을 높이는 바람에 일어났다. 제4호기에서 원자로의 폭주가 일어났고, 1000m가 넘는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당시 소련 당국은 현장에서 작업자 2명이 숨지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대와 군인 29명이 사망한 것 등 극히 일부 희생만 인정하고 정보를 차단했다. 반면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와 서구 언론들은 사고 후 6년간 8000여명이 숨졌고, 이후 20여 년간 피폭 후유증으로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추가로 숨졌으며, 지금까지도 수십만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추정했다. 또 팔다리가 없거나 뇌에 이상이 있는 기형아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급증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암, 백혈병, 유전성 질병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암, 기형아 출산 등 인체 피해와 환경오염 치명적

우리나라 외교부의 ‘우크라이나 개황’ 자료를 보면 체르노빌 사고를 전후해 기형아 출산과 출생 전 사망은 두 배로 늘었다. 유아 사망률은 1.5~2.5배, 어린이 암 환자는 6.5~1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피해 지역 주민 60%가 갑상선계 질병을 경험했다. 토양과 지하수 오염 영향 등으로 지금도 사고지역 주변에서는 돌연변이가 발견되는데, 사람 손바닥만 한 지렁이, 2m가 넘는 대형메기, 기형 개구리와 해바라기 등이 발견됐다.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짧으면 며칠, 길게는 10만 년 이상이어서 피해 지역은 대대손손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은 소리, 색깔, 맛, 냄새, 감촉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가 엄청났던 것도 당시 당국이나 주민들이 방사성 물질의 가공할 부작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신속한 차단과 대응에 실패한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체르노빌의 전투>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체르노빌 사고에도 불구하고 ‘5월 축제’를 위해 대거 거리행진에 나섰다가 더욱 큰 후유증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환경운동연합 원전특별위원회 서토덕 공동위원장은 “옛날 연탄가스 중독을 떠올리면 된다”며 “일산화탄소도 핵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자다가 중독돼) 아침에 죽은 채 발견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성 물질의 하나인) 세슘의 반감기는 30년, 인간에게 해가 없으려면 100년”이라며 “피폭의 위험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운전원의 실수로 일어났던 것처럼, 기술적으로 아무리 완벽한 원전이라고 해도 인적 요소에 의한 사고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특히 우리나라 원전은 불량부품 납품 등의 비리와 잦은 고장으로 이미 오명이 높다. 지난 2012년 2월 ‘제2의 후쿠시마 원전’이 될 뻔했던 부산의 고리원전 1호기 사고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고리원전 1호기는 원자로를 정지하고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직원이 실수로 전원선을 차단하면서 12분 동안 전력이 끊겼다. 이 때문에 자칫 했으면 냉각수 순환이 멈춰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발생할 뻔했다. 이런 사고가 있었으면 즉시 본사와 정부에 보고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고리 1호기 발전소장과 직원 20여 명은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했다. 관련 기록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직원들의 술자리 대화를 우연히 들은 시의원을 통해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민들은 허술한 원전 안전관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 체르노빌 원전은 여전히 방사능 물질의 유출을 막는 돔 공사가 진행 중이다. ⓒ Flickr

전문가들은 노후 원전의 경우 원전이라는 기계 자체가 취약해져 사고 위험성이 높은 데다, 종사자의 실수나 태만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도 항상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망설일 것 없이 모범적인 선진국 루트를 따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원전은 사양산업이며, 유럽은 이미 원전산업에서 손을 떼고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구조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 정부의 원전 정책은 사양 산업을 위해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 잡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사양 산업 원전 접고 폐로 산업 키워야 

서토덕 위원장은 폐로결정이 난 고리 1호기처럼 경주의 월성 1호기도 가동을 중단하고 이를 계기로 폐로산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대상으로 폐로 기술을 축적한 뒤 세계 각국에 이를 수출하면 원전 산업계의 발전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동되고 있는 23기의 원전 가운데 5기는 오는 2025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고, 그 뒤 다시 5년 사이에 7기가 수명을 다하게 된다. 부산의 고리 2호기(2023), 고리 3호기(2024), 고리 4호기(2025), 전남 영광의 한빛 1호기(2025)가 비교적 가까운 기간 안에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또 세계적으로 가동 중인 438개의 원전 중 폐로 절차에 들어간 원전만 130기가 넘는다. 원전이 사양산업이라면, 폐로는 ‘뜨는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국내 원전들. ⓒ Flickr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원전해체 시장이 2030년에 500조원, 2050년까지는 10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1기당 해체비용을 약 6000억원으로 잡고 있지만, 국제기관들은 1기당 1조원~2조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과정은 준비 단계부터 방사성 물질 제염 작업, 시설물 절단 및 철거, 연료 및 폐기물 처분, 환경복원 등의 단계로 이뤄진다. 빠르면 15년, 완전히 녹지로 복원하는 데는 80년 이상이 걸린다. 현재 원전 해체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정도다. 미국은 원전 해체 및 부지 복원까지 15기 이상의 완료 경험을 갖고 있고,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폐로 경험을 활용해서 후쿠시마현 하마도리에 폐로산업타운을 만들 구상이라고 밝혔다. 위험한 ‘원전공화국’으로 질주할 것인지, 노후원전의 폐로를 통해 ‘국민 안전’과 ‘신산업 개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인지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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