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8.7.16 월
> 뉴스 > 단비인터뷰
     
밀양 할매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단비인터뷰] 송전탑 반대운동 이끌어 온 김준한 신부
2015년 10월 03일 (토) 21:17:56 하상윤 기자 jonyyun@naver.com

지난해 6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경남 밀양 주민들의 농성장을 밀양시가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 철거한 후 ‘할매 할배들의 투쟁’은 잊혀졌다. 공무원 200명, 경찰 20개 중대 2000명, 한국전력 직원 250명이 동원된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70, 80대의 ‘어르신 투사’들은 울부짖으며 무참하게 끌려나왔다. 그해 말 한전은 신고리~북경남 변전소 송전선로 구간에 765킬로볼트(㎸) 송전탑 161개 건설을 완료했다. 이 중 69개가 밀양에 세워졌다. 

긴 싸움 끝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주민들은 지난 15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처벌까지 받았다. 9명에게 1년~6개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6명에게는 200만원의 벌금형이, 3명에게는 벌금형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뺏기고 벌까지 받은 주민들은 그러나 ‘나눔과 연대’의 정신으로 버티고 있다. 그 중심에 가톨릭 사제가 있다. 밀양765㎸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김준한(42) 신부를 지난 5월 31일 밀양시 삼문동 너른마당 현장인터뷰와 3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 밀양 송전탑은 주민 농성장이 강제 철거된 후 6개월 만인 2014년 말 완공됐다. ⓒ 하상윤

환경문제 무관심했던 사제, 주민들에게 ‘의식화’ 되다 

“전기를 생산해서 북한에 보낸다고 하더라. 내 아들딸에게 북한 좋은 일을 해줬다는 기록을 남길 수는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송전탑 문제로 가장 먼저 김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들은 지금의 할매 할배들이 아니라 밀양 시내에서 잘 나가던 라이온스클럽(국제사회봉사단체) 회장단이었다. 2008년 무렵 ‘북한에 전기를 보내선 안 된다’며 핏대를 세웠던 그들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 초기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명분은 각양각색이었다. 시장과 국회의원이 앞장섰던 시위는 매번 30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송전탑을 세우려거든 내 머리 위에 꽂고 지나가라”고 외쳤던 당시 엄용수 시장(새누리당)은 행정소송에 휘말렸고, 곧 국회의원과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지역 관변단체들도 함께 물러났다. 결국 송전탑이 직접 통과하는 마을의 주민들만 남았다.

‘지자체 특별교부금’, ‘나노산업단지 유치’, ‘재경밀양유학생’ 등의 이름으로 중앙정부의 회유정책이 이어졌다. 달콤한 자본 앞에서 지역사회는 분열했다. ‘어차피 질 싸움’이라며 체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밀양 곳곳에는 ‘국가와 기업을 위해 아름다운 양보를 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희생하라는 것이죠. 저는 그때의 상황이 고려장이나 다름없다고 봤습니다.” 

김 신부는 자식들이 살겠다고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던 고려장에 밀양 송전탑 건설을 비유했다. 서울 등 수도권의 전력소비를 위해 송전탑이 통과하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을 희생하라는 요구라고 봤기 때문이다. 

   
▲ 김준한 신부가 밀양시 삼문동의 지역운동협동조합 ‘너른마당’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하상윤

“여러분이 협상을 통해 보상금을 얼마 더 받고 못 받고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면 끝까지 그 자리에 함께하겠습니다.”

김준한 신부가 이렇게 말하며 반대운동에 합류하게 된 것은 주민들의 절박함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환경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송전탑 문제도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로 봤지, 환경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당장 사람이 굶어 죽고 고통 받는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김 신부는 어르신들의 환경감수성이 자신을 의식화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2011년 밀양시 사내면을 시작으로 김 신부는 현장에서 마찰이 있을 때마다 어르신들과 동행했다. 농성현장에서 주민들을 위해 거리 미사를 집전했고, 외부활동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농민들에게 땅은 ‘팔고 떠날 수 있는 부동산’이 아니다   

“이곳 어르신들이 가진 땅에 대한 감수성은 도시의 그것과 다릅니다. 팔고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부동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죠. 땅과 그 땅 위에 사는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밀양으로 이어지는 송전선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에서 출발해 창녕, 양산, 부산, 울산 등을 통과한다. 또 송전탑은 이미 오래전부터 곳곳에 세워져 왔다. 그런데 유독 밀양에서만 반발이 거셌던 까닭은 무엇일까. 김 신부는 그 이유를 환경·생태에 대한 감수성과 땅에 대한 애착으로 설명했다. 그는 “스포츠 시설을 지어주는 조건에 흔쾌히 땅을 내어준 신도시 30~40대 거주민과 밀양 할매 할배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 어르신들의 간절함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꺼풀(옷)까지 다 풀고 나옵니다. 옷을 벗는다는 것이 할매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수치심은 나이에 상관없이 같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신의 마지막을 드러낸 것입니다. ‘쇼’가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설 데 없는 간절함인 것이죠.” 

지난해 6월의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밀양 할매들은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땅굴을 파서 사슬을 목에 감고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그들의 목에 절단기를 들이대고 사슬을 잘랐다. 잡혀가지 않기 위해 옷을 벗고 있는 할머니들을 담요에 둘둘 말아 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수녀 등 21명이 다쳤다.  

   
▲ 지난해 6월11일 행정대집행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당한 수녀가 실려 나가고 있다. ⓒ 밀양인권침해감시단

선거마다 ‘1번’ 찍었지만 주민의견은 ‘1센티’도 반영 안 돼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의 표밭인 밀양에서 주민들은 선거 때마다 여당인 ‘1번’을 찍어왔다고 한다. 그런 그들을 ‘반정부 투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 신부는 “밀양에 69개의 송전탑이 들어섰는데 그 위치 선정에 단 1센티도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주민들을 싸움꾼으로 만든 것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도 없는 국가의 폭력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 사업으로 피해 보는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여 명의 밀양 주민들은 여전히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송전탑 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전북 군산의 새만금과 충남 당진, 그리고 원전이 있는 부산의 고리와 경주의 월성 등을 방문해 간담회를 열고 해당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밀양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할매들은 예전과 같지 않아요. 새롭게 의식이 깨어난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이 모든 비민주적인 사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외부 소통로를 확보하고, 당신들 스스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그게 어르신들의 장기 레이스에 필요한 지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감물생태학습관의 행정부관장으로 일하는 김 신부는 가급적 오래 밀양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신부의 삶을 동경했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줄곧 빈민들과 함께 하는 삶을 꿈꿔왔다고 한다. 어느덧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김 신부의 모습은 달라진 밀양 어르신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밀양을 지나는 전기는 결국 서울·경기 지역으로 갑니다. 원칙적인 변화가 없다면 에너지로 인해 차별받는 지역은 양산될 것입니다. 제2~제10의 밀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생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운 발전·송전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에 부합하는 길입니다.”

   
▲ 김준한 신부는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하상윤

김 신부는 대도시의 기업과 소비자를 위해 소외지역에 원전과 송전탑을 짓고, 지역의 환경과 주민의 건강을 희생하며 전기를 대량생산하는 방식은 ‘에너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역설했다. 각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에너지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에너지 낭비도 막는 구조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김 신부와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에너지 정의’를 위한 운동가가 된 밀양 할매 할배들과 앞으로도 함께 하겠다는 김 신부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제 더 이상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부딪힐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현장 공사가 다 끝났어요. 우리는 그들을 막지 못했죠. 그러나 진 것은 아닙니다. 어르신들은 장기전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곳에서 밀양은 반드시 거론될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우회적이고 느린 방식이지만,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다.” 


[하상윤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하상윤입니다. 항상 바로 지금.
     관련기사
· 사람 사는 세상 그리는 ‘70년의 고독’
· 디지털 데이터에 ‘죽음’을 허하라
· “실연한 직원엔 이틀 잠적 허용하죠”
· “정치에 등 돌린 청년들 마음 얻어야죠”
· 여기가 대전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하상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