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나'의 아침을 찾기 위한 '9시 등교제'

▲ 유선희 기자

아침은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다.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는 평화롭다기보다 떠들썩하다. 청아한 새의 지저귐은 진군을 재촉하는 나팔 소리 같다. 학창시절 내게 아침은 전쟁터와 같았다. 당장 집에서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잠을 깨우려는 엄마와, 1분이라도 더 자려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탓이다. 준비가 늦은 탓에 서둘러 현관문을 나서야 하지만, 밥 한 숟갈 먹겠다고 입안 한가득 음식을 양껏 밀어 넣은 후에야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침은 긴장의 시간이다. 0교시부터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수업을 소화하느라 정신을 곤두세워야 하는 까닭이었다.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묘사하듯 빠르게 진행되던 템포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는 페르퀸트 제1모음곡 <아침> 리듬처럼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이다. 긴장은 점심시간 때까지 지속됐다. 아침 시간은 ‘보냈다’기 보다 ‘치러냈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중•고등학교에서 ‘0교시’는 아침을 잘 활용해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실천하려는 의지표명인 셈이다. 이때 아침은 ‘부지런한 사람이 벌레를 잡는 시간’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학창시절 각 학급에서는 교사들 재량으로 0교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했다. 자율학습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보충수업 개념으로 어려운 수업만 따로 복습하도록 하는 학급도 있었다. 

▲ 의정부여중은 경기지역에서 첫번째로 '9시 등교’를 실시했다.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부지런하게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본인 스스로 아침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0교시 수업에 떠밀려 수많은 학생들이 실제로 ‘아침이 없는 삶’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의 아침은 ‘입시전쟁을 치르기 위한’ 아침에 불과하다. ‘나’의 아침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설계한 아침이다. 

지난해 도입한 ‘9시 등교제’는 ‘나’의 아침을 찾기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이 정책은 현재 서울•강원•충남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9시 등교제로 맞벌이 부부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고, 일부 학교에서는 학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반발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하게 논의돼야 하는 것은, 아침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여부다. 

아침은 하루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여유를 가지고 하루 일정을 계획하는 시간인 만큼 아침은 중요하다. 아침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나’가 돼야 하는 이유다. ‘저녁이 있는 삶’뿐만 아니라 ‘아침이 있는 삶’도 필요하다. 9시 등교제는 더 확대되는 게 맞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지만, 계획하는 새는 벌레 잡는 방법을 익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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