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주헌 미술평론가
주제 ① 서양미술사 주요 장면 I

“런던의 지하철 역사 통로를 찍은 사진이에요. 통로에 누가 빨간 펜으로 수직선 두 개를 그어 놨어요. 왼편에 하나, 오른편에 하나. 둘 중에 어느 선이 더 길까요?”

▲ 런던의 지하철 역사 통로. 오른편의 빨간색 수직선이 더 길어보이지만 두개의 길이는 같다. ⓒ 이주헌 강의자료

“분명히 오른쪽이 더 길어 보이지만, 두 개의 길이는 똑같아요. 뒤로 물러가는 공간을 찍은 사진 위에 그은 선은 앞으로 다가오는 공간을 찍은 사진 위에 그은 선보다 길어 보인다. 우리 눈은 이런 주변적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물리적인 대상조차도 우리는 제각각 다르게 봐요. 관점이나 생각은 얼마나 다르겠어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시각에 의존하는 예술인 미술은 옛날부터 사람의 시각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한겨레> 미술담당 기자 출신인 그는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등 미술과 대중을 이어주는 30여권이 넘는 책을 낸 ‘미술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인간은 왜 그림을 그리나

그가 사진을 통해 인도한 곳은 선사시대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 앞. 선사시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보여주기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상을 위해 벽화를 그렸다면 빛이 잘 들어오는 데 그렸어야 해요. 하지만 횃불 들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깊은 곳에 그렸습니다. 그래서 감상보다는 어떤 의식을 목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평론가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행한 의식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가 ‘우주 표현’. 선사시대 사람에게 우주란 자신들이 보는 세상 전체다. 인간과 경쟁하는 들소, 노루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들이 경험한 우주를 표현했다. 벽화의 또 다른 기능은 사냥에 요긴한 주술적인 힘을 얻는 것. 벽화에는 화살이나 창에 맞은 동물이 많이 그려져 있다. 동물 그림에 실제로 창이나 화살을 던진 흔적도 남아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물들이 한번 창을 맞아 힘이 빠져있기 때문에 다음에 공략을 하면 훨씬 쉽게 동물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술적인 목적. 감상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 목적으로 그렸다고 봅니다.”

▲ 선사시대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 생존의 목적을 위해 그려졌다. ⓒ 이주헌 강의자료

이 평론가는 선사시대 사람의 주술에 관한 인식을 우리 문화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장승, 사극에서 후궁들이 서로를 저주하기 위해 만든 주술인형이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주술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누가 사랑하는 가족 사진을 찢어버렸다면 종이 찢은 거 아닙니까? 이미지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죠. 우리도 모르게 이미지를 실물로 느끼고 실물로 대할 때가 있죠. 이건 이성과 관계 없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이집트 파라오 조각은 '생명보험'

선사시대에서 고대문명시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해가 지식을 자라게 하고 문명을 이끌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이상화한 양식으로’ 그렸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완전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조각을 왜 많이 만들어놨냐, 생명보험이에요. 저승에서 계속 살려고 하는데 미라를 누가 망가뜨리면 어떡해요? 잘 부서지지 않는 조각을 만듭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거기 깃들 수가 있어요.” 

조각가를 가리키는 이집트의 말이 ‘계속 살아있게 하는 자’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정면성의 원리’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이집트인의 노력이 드러나 있다. 테베의 고분 벽화 ‘늪지에서 사냥하는 네바문’을 보면, 눈은 정면의 눈, 얼굴은 옆 얼굴, 가슴은 다시 정면, 다리는 보폭을 확인할 수 있는 옆면, 이렇게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본 형상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가 신체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이상적인 형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정면성을 중시한 이집트 조각. 정면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 이주헌 강의자료

“정면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해요. 이 인체를 그리면서 정면들만을 모아 그려 영원히 내세에서 살 그런 존재로서 삶을 그렸습니다. 플라톤은 그리스 미술보다 이집트 미술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집트 미술이 이상을 더 담고 있다는 거예요. 패턴이나 규칙의 인식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세계 이해의 기초라는 거죠.” 

고대 그리스는 수천년간 이집트 조각상 형태를 따랐다. 기원전 5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리스인은 실제 사람의 형상에 가까운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리 하나를 앞으로 내밀고, 나란히 팔을 아래로 뻗은 자세가 여전히 이집트 조각을 닮았지만, 골반 한쪽이 올라가 완전한 차렷 자세는 아니다. ‘콘스라포스토’라는 이 자세는 한 쪽 발을 내밀어 무게 중심이 이동한 쪽의 골반이 살짝 올라갔다. 

이 평론가는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자연스럽게 서있는 사람의 신체가 이렇게 변한다는 걸 안다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위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술사에서는 여성 몸매의 형태를 ‘에스(S) 라인’이 아닌 ‘에스 커브’라는 말을 사용한다. 

▲ 이주헌 평론가는 선사시대 사람의 주술에 관한 인식을 우리 문화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홍연

“‘에스 커브’는 몸의 아웃라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뼈가 휜 자연스러운 몸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몸 전체가 에스(S)자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죠. 콘트라포스토가 심해지면 ‘에스 커브’가 되는 겁니다.”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조각인 ‘아프로디테’,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까바델의 ‘비너스의 탄생’도 ‘에스 커브’를 보여준다. 

그리스에서는 왜 사실 표현이 발달했나 

“그리스에서 사실 표현이 발달한 이유는 신과 인간이 뿌리가 같다고 본 ‘신인동형’의 문명 때문입니다.”

이 평론가는 그리스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없어 종교 대신 정치가 사회 규범의 최후 보루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신교의 세계는 교회조직이나 교리체계의 구속을 받지 않는 문명의 배경이 됐고, 호메로스의 시에서 나타난 내세관이 보편적일 정도로 현세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종교나 권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했어요.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자유 관념이 발달하는 데 기여 했죠.”

▲ '신인동형'의 문명에서 사실 표현이 발달한 그리스 조각. ⓒ 이주헌 강의자료

이 평론가는 “논리학이 발달한 그리스에서는 미술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설득을 중시하고 토론문화가 발달한 것을 그리스 문화의 특징으로 꼽았다. 논쟁은 주의주장의 모순을 금세 드러내 논리와 논리학을 발달시키고, 미술도 비판-수정-비판 수정의 끝없는 과정 속에서 사실 표현을 고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성과 서사를 중시한 로마 미술

그리스인들이 예술에서 이상화를 추구하고 보이지 않는 미적 질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로마인들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했다. 로마인들은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100년경에 그려지고 이집트 하와라에서 출토된 ‘한 남자의 초상’을 예로 들며, 인물 표정의 생생함과 사실성에 있어 현대인마저 감탄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로마인들은 서사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인물 표정의 생생함과 사실성이 살아있는 '한 남자의 초상'. ⓒ 이주헌 강의자료

이 평론가는 “미술의 주된 목적이 시각적 기록과 기록의 사실성에 있었다”고 말했다. 트라아누스가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에서 벌인 전쟁과 승리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부조인 ‘트라아누스 황제 기념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로마인들에게 전쟁의 무훈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세부의 정확한 묘사와 자세한 설명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죠.”

이 평론가는 조형예술의 서사적 전통이 유럽문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역사화가 서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전통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이어 “인간과 삶의 조건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와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리스인들이 예술에서 이상화를 추구하고 보이지 않는 미적 질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 로마인들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했고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로마의 시인 호라타우스는 “포로가 된 그리스는 자신을 사로잡은 미개한 자들을 포로로 만들었다”고 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뿐 아니라 시, 수사학, 철학 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로마문화는 상당히 그리스 문화화했다. 

사실주의를 이상화해 표현한 미술인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에서 역사적 전통이나 미학적 규범을 찾는 고전주의가 탄생한다. 고대 이후 르네상스에 이르러 재발견된 고전주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오랜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뼈대가 됐다. 명료성, 도덕성, 규범성, 교훈성, 이상주의를 미학원리로 한다. 카논(canon)도 ‘척도, 자’에서 비롯된 말로 규범을 의미하며, 미술에서는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를 나타낸다. 폴리클레이토스가 <카논>을 저술해 그 원리를 ‘도리포로스’ 조각에 적용한 바 있다. 

▲ 폴리클레이토스의 '도리포로스(창을 든 남자)'.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를 보여준다. ⓒ 이주헌 강의자료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은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는 사실적이면서 이상적이었던 그리스 미술의 특징을 헬레니즘 미술과 비교해봤을 때 이런 차이가 두드러지게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헬레니즘 미술은 비통함, 고통 등 순간적인 정서를 잘 표현하고, 대상도 이방인, 아이, 노인 등으로 확대됐다. 이 평론가는 헬레니즘 미술에 대해 “개인적 취향과 기호에 충실하고 세속적인 시각을 중시했다”며 표정과 인상을 통해 현대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서양에서 여성누드가 늦게 나타난 이유 

그리스의 누드는 남성누드였다. 남성만 누드로, 여성은 옷(코스튬)을 입은 채 표현됐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가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은 남성이 되다 만 인간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며, 성적 욕망의 대상이었다. 이 시기에는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토’ 조각처럼 능동적인 남성 누드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여성은 ‘패플로스를 입은 코레’처럼 옷을 입고 수동적인 객체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니케의 조각상’도 옷을 입고 있어 실루엣만 어렴풋이 관능미를 드러낸다. 

▲ 어렴풋이 관능미를 드러내는 '샌들을 벗는 니케'. 그리스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객체로 표현됐다. ⓒ 이주헌 강의자료

“헬레니즘기에 들어서 본격적인 여성 누드가 등장했습니다.”

이 평론가는 여성누드가 등장했지만, 이 누드는 시선과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타자성을 강조해, 여성이 보임을 당하고, 권력의 지배를 받는 ‘객체’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카파토리누스의 비너스’에서 보듯, 비너스는 ‘신’인데도 움츠러들어있고 주요 부위를 가리고 있는 소극적 모습으로 표현됐다. 근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의 아름다운 표현이 극대화하면서 여성누드가 누드의 대명사가 됐다.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여성 곡선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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