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국내 팬카페 회원 60여명 모인 홍대 콘서트

“초창기니까 존레논도 안경을 벗어야겠죠?” 

존 레논이 안경을 벗었다. 폴 매카트니는 곡선형 몸통에서 힘찬 소리를 내는 리켄베커 베이스 기타를 벗고 초창기에 애용했던 작은 바이올린 모양의 호프너 베이스를 어깨에 멨다. 드럼 앞에 앉은 링고 스타가 스틱(막대)을 마주쳐 박자를 맞추고, 기타를 멘 조지 해리슨은 관객에게 미소를 날린다. 네 사람 모두 니트 정장을 입고 비틀즈가 유행시켰던 발목까지 올라오는 끝이 뾰족한 부츠를 신었다. 존 레논이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외치는 것을 신호로 초기 히트곡 ‘올 마이 러빙(All my Loving)’ 연주가 시작됐다. 60여명의 관객은 록큰롤 리듬에 맞춰 좌우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 밴드 애플스 멤버인 이종민(존 레논)씨, 이두희(조지 해리슨)씨, 박서주(링고스타)씨, 표진인(폴 매카트니)씨(왼쪽부터)가 공연을 하고 있다. ⓒ 조민웅

정신과의사와 수학강사가 연주하는 비틀즈 

지난 27일 저녁 6시 20분, 한국비틀즈팬클럽 송년콘서트가 서울 창전동 홍대거리 공연장 스카이하이에서 열렸다. 무대에 선 네 명은 2002년부터 활동해 온 비틀즈 헌정밴드 ‘애플스’다. 낮에는 정신과의사, 수학강사 등으로 일하지만 공연이 있는 날엔 각자 폴 매카트니,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된다. 혼자 온 여중생, 비틀즈 가방을 메고 전북 전주에서 상경한 20대 청년, 결혼기념일을 맞은 40대 부부, 강원도 홍천군에서 온 4인 가족 등 다양한 관객들이 아담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네이버 카페 `한국비틀즈팬클럽`의 회원인 이들은 천차만별의 외양에도 불구하고 비틀즈에 대한 뜨거운 ‘팬심’으로 하나가 됐다. 

매카트니 역을 맡은 정신과전문의 표진인(48)박사가 “폴 메카트니가 피크(기타 연주용 얇은 조각)를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베이스를 연주한 유일한 곡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객석이 잠시 웅성거리다 누군가 정답을 말했다. 표 박사가 피크를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호응 속에 ‘틸 데어 워즈 유(Till There was You)’가 울려 퍼졌다.    

애플스 공연 직전, 무대에는 존 레논의 얼굴이 프린트된 검정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올라섰다. 이날 콘서트를 기획한 서강석(43)씨다. 그는 2007년에 비틀즈 팬카페를 만들었고 현재 회원 수 3만2000여명으로 성장한 카페를 관리하고 있다. 서씨는 공연에 앞서 ‘1초 퀴즈 대회’를 진행했다. 비틀즈 노래를 전주 1초만 잘라 들려주고 제목을 맞히는 게임이다. 1초만으로는 답을 못 맞힐 것에 대비해 좀 더 긴 버전도 준비했지만 골수팬들은 달랐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필요도 없이 객석에서 정답이 쏟아졌다. 서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 비틀즈 팬클럽 운영자 서강석씨가 존 레논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퀴즈를 진행하고 있다. ⓒ 함규원

“비틀즈 ‘덕후(한 대상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이)’들은 역시 미쳤어요.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번에는 기타 연주만 추출한 음원을 듣고 노래 제목을 맞히는 방식으로 바꿔봤다. 잇따른 오답에 “일부러 헷갈리는 부분으로 추출했다”며 서씨가 만족해한 것도 잠시, 관객석에서 정답이 나왔다. ‘써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맞힌 사람은 강원도 홍천에서 온 박재용(17•검정고시준비)군이었다. 부러움 섞인 환호와 박수를 받은 박군은 이미 여러 차례 정답을 맞혀 받은 게 많다며 비틀즈 포스터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 퀴즈를 맞혀 상품으로 비틀즈 포스터를 받은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 조은혜, 함규원

‘보여주는 노래’ 대신 ‘소리가 주는 감동’에 반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중년의 관객들은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박성(44)씨는 라디오를 통해 비틀즈 음악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직접 영국에 가서 1969년 비틀즈가 마지막 앨범 사진을 찍었던 런던 애비로드(Abbey Road)의 횡단보도를 건너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비틀즈 음악이고, 비틀즈를 통해서 내 인생을 봅니다. 노래를 하나씩 들으면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이 떠오르고, 그 순간들을 다시 지나는 느낌이 들죠.”

홍천에서 온 박재휴(44), 박미옥(42)씨 부부는 아들 재용군까지 ‘비틀즈매니아’로 만들었다. 이날 퀴즈를 잇달아 맞혀 눈길을 모은 재용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비틀즈의 싱글 차트 1위곡만을 모은 베스트앨범 <원(1)>을 아버지 소개로 들은 뒤 음악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피아노, 기타로 비틀즈 노래를 편곡하기도 한다. 

 “그때 ‘러브 미 두(Love Me Do)’라는 노래가 유독 기억에 남았어요. 학교 다녀오면 한 시간씩 찾아서 듣곤 했죠. 요즘 노래들은 보여주는 노래 같아요. 저는 듣는 노래가 좋아요.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소리로 감동 받고 싶어요.” 

▲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비틀즈 퀴즈에 참여하고 있다. ⓒ 조민웅

경기도 일산에 사는 양한욱(17•고1)군은 초등학교 5학년 영어시간에 ‘예스터데이(Yesterday)’ 공연 영상을 보고 비틀즈에 사로잡혔다. 양군은 “그 후로 비틀즈라는 밴드가 궁금해졌고 집에 가면 비틀즈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양군은 “멤버들이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고 정식 음악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깜짝 놀랄 창의력을 보여줬다”며 음악적 매력 외에도 비틀즈에게 위대한 점이 많다는 것을 한참 설명했다. 

무산된 폴 매카트니 공연, 2015년 성사를 기대하며 

이들을 묶어주는 한국비틀즈팬클럽 카페에는 비틀즈 전곡 해설과 칼럼, 사진과 영상 자료, 팬들의 소장품 목록 등 다양한 자료가 올라와 있다. 팬들이 모이는 송년회는 2007년부터 시작됐다. 첫 해에는 비틀즈 노래경연대회가 열렸고 올해는 콘서트와 이벤트로 구성됐다. 

송년콘서트를 위해 전주에서 올라온 이민수(21)씨는 “공연 뒤 밤새 이어지는 뒤풀이에 참석할 예정이라 돌아가는 차편은 예매하지 않았다”며 “이곳에 오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비틀즈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비틀즈팬클럽은 송년회 외에도 사진전, 단체 공연관람 등 다양한 행사로 회원들이 함께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 폴 매카트니의 첫 번째 내한 공연이 예정됐다가 건강 문제로 무기연기된 것이 이들에겐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회원들은 그래서 공연날이었던 5월 28일 애플스와 어쿠스틱밴드 비비드슬로우가 함께 하는 대체 콘서트를 열어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들은 폴 매카트니가 내년엔 꼭 한국을 찾아주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2년간 밴드 애플스를 이끌어온 표진인 박사는 비틀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비틀즈의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 그 매력을 모른다는 게 함정”이라고 운을 뗐다. 

“원래 유명하다는 뮤지션들 대표곡 들으면 사실 별로 들을 게 없어요. 몇 곡 듣고 나면 뻔한데, 비틀즈는 안 그래요. 거의 150여곡 정도가 정말 마력을 갖고 있죠. ‘예스터데이’처럼 유명한 노래만 듣지 마시고, 이것저것 초기부터 후기까지 들어보시면 그 매력에 빠지실 겁니다.” 

저녁 9시 무렵 공연이 끝나고 회원들은 근처 찜닭집으로 옮겨 뒤풀이를 가졌다. 이곳저곳 테이블 마다 비틀즈 음악과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밤이 깊어갔다. 한국비틀즈팬클럽은 새해 1월 3일 재즈평론가이자 웹툰작가인 남무성씨의 ‘비틀즈 에이투지(A to Z)' 강연회에 초대권 이벤트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더 활발히 ’덕후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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