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병 얻는 사람들 ① 피해 환자 실태

병을 고치러 간 병원에서 다른 병을 얻어 고생하거나 목숨까지 잃는 환자가 한 해 수만 명에 이르지만 국내 병원의 감염관리 시스템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화로 면역력이 약한 환자가 늘고 내시경 등 체내에 삽입하는 의료도구 사용도 증가하는 가운데 부실한 소독 등 의료진의 부주의, 실수, 태만 등으로 피해를 입는 환자가 늘어 사회적 감시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그 실태를 취재하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대전시 유성구에 사는 이종근(48)씨는 지난 2월 12일 동생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신장 기능검사를 위해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윤병순(76)씨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입원하던 날 혼자 걸어 들어갔던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윤씨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고열에 시달렸고 간간히 호흡곤란도 왔다. 병원에서는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했지만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혈액검사 후 손목 염증으로 호흡곤란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윤씨가 “손목에 염증이 생겼는데 연고도 안 발라준다”고 불평해서였다. 병원측은 입원 후 혈액검사를 위해 윤씨의 왼쪽 손목 정맥에서 피를 뽑았는데 주사부위에 염증이 생겨 피부가 붉어지고 볼록하게 부은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윤씨가 의료진에게 치료를 독촉한 후에야 병원 감염내과에서 사진을 찍어가고 혈액검사를 했다. 결과는 ‘메티실린 감수성 황색 포도상구균(MSSA)’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의료관련감염이었다. 윤씨의 의무기록지에는 “왼쪽 손목을 통해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의료관련감염이란 입원 당시 환자에게 아무런 감염증이 없었는데 입원기간 중(통상 입원 48시간 이후) 또는 퇴원 후 30일 이내에 발생한 감염증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다제내성 녹농균(MRPA) 등 6종을 법정 의료관련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가 출판한 2012년 개정판 <병원감염관리>에 따르면 국내 의료관련감염 발생률은 입원환자의 5~1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입원 환자의 10명 중 한 명 가량이 병 고치러 왔다가 병을 더 얻었다는 얘기가 된다.

▲ 의료관련감염 피해자 윤병순씨의 왼쪽 손목 정맥 자리에 염증이 나 있던 모습(동그라미 부분). (윤씨 가족 제공)

윤씨가 감염된 MSSA는 건강한 젊은이 등 면역력이 있는 사람은 항생제만으로도 나을 수 있는 병이다. 일반적으로 크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도 발생률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법정 의료관련감염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신생아, 노인, 장기입원 환자 등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겐 MSSA도 위험할 수 있다. 항생제를 장기간 복용하다가 항생제에 강한 저항성을 가진 수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이 확인되자 병원측은 윤씨에게 항생제를 투여했다. 고열은 잡혔지만, 신장 기능이 나빠져 스테로이드 약물과 신장 투석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 3월 21일 2차 감염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의료관련감염병 중 대표적인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등이었다. 이씨는 “(병원측이) MSSA는 호전됐다면서 MRSA는 왜 또 발생했는지 이유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 피해자 윤병순씨의 의무기록지 일부. MSSA 감염경로는 왼쪽 손목 정맥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와 있다(위). 이후 대표적 법정 의료관련감염병인 MRSA균도 발견됐다(아래). (윤씨 가족 제공)

윤씨는 다시 반코마이신 등의 항생제 치료를 받았지만 신장과 폐 기능은 계속 악화됐다. 일반 병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옮긴 후에도 투석치료를 받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결국 윤씨는 간경변과 관련한 신장 기능 검사를 위해 입원한 지 2달 만인 4월 10일 폐렴으로 숨졌다.

이씨는 지난 6월 25일 해당 병원에 원내 감염과 윤씨 사망 간의 인과관계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병원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무릎수술 후 염증 호소했지만 해열진통제 등 처방

또 다른 병원감염 피해자 유모(38·인천시 마전동)씨는 무릎인대 재건수술 후 MRSA균에 감염됐다. 유씨는 지난 2012년 2월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재건수술을 받았다가 퇴원 이틀 뒤에 수술부위가 당기고 몸에 열이 나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료진은 ‘수술부위에 특이 소견이 없다’며 해열진통제와 항생제 등 먹는 약만 처방했다. 하지만 다시 발열, 오한 등에 시달리던 유씨가 응급실을 찾자 병원 측은 그때서야 MRSA 감염을 확인했고, 유씨는 균 세척 수술을 받아야 했다.

유씨는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 MRSA균 감염 및 장해 발생에 따른 손해배상을 의뢰했다. 분쟁조정위는 병원측이 유씨에게 손해배상금 4백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MRSA는 병원에서 수술 받는 동안 감염되기 쉬운 균이기 때문에 수술부위 염증이 의심되면 곧 세균 감염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이를 생략하고 단순 해열진통제 등을 처방했기 때문에 의료진의 감염관리 소홀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주사기 관리가 청결하게 되지 않아 환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김정순(당시66·여·가명)씨는 지난 2007년 12월 서울 관악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퇴행성관절염과 허리, 엉덩이, 다리까지 이르는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왼쪽 엉덩이와 허리에 주사 2대를 맞았다. 그런데 사흘 후에 주사 맞은 자리가 붉게 부풀어 오르고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혈액 검사를 했더니 MRSA 감염이었다. 피부세포조직이 죽는 괴사성 근막염 증상을 보인 김씨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2008년 1월 호흡곤란, 저체온증, 내출혈을 동반한 패혈성 쇼크로 숨졌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18부는 지난해 4월 판결을 통해 해당 정형외과가 주사기 위생관리를 소홀히 해 피해자 김씨가 MRSA에 감염됐음을 인정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위자료 등 총 2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병원이 주사기를 소독해 사용했다고 했지만 일회용 주사바늘을 끼우고 약을 주입해서 외부 공기에 노출된 선반에 올려놓는 방법으로 주사기를 관리‧사용한 점은 주사기를 청결히 관리하지 않은 병원측 과실”이라고 지적했다. (계속)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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