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세저리 캠프’ 1박2일의 충만이여 안녕

200여명 언론인 배출한 ‘삼청교육대’

편리함을 ‘미덕’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불편함을 자처한 사람들이 충북 제천 ‘세저리’에 모였다. ‘세저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들이 붙인 애칭이지만 예비언론인들에게 꽤 널리 통용되고 ‘세저리 캠프’도 인기가 매우 높다. 6일부터 1박2일로 열린 제9기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언론인 캠프’에는 기자·피디(PD) 지망생 57명이 참가했다. 

▲ 대학언론인 캠프 참가자들이 강의에 앞서 교수진 소개를 듣고 있다. ⓒ 김선기

방학과 휴가계획에 들떠있을 여름 초입, 그것도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은 일요일 아침 일찍 전국에서 출발한 예비언론인들이 ‘삼청교육대’를 자처할 만큼 ‘빡센’ 캠프에 입소한 것은 함께 꾸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을 포함해 아홉 번 캠프가 열리는 동안 490여명이 캠프를 거쳐갔고 그 가운데 200명 가까운 수료생들이 언론인의 꿈을 현실로 바꾼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캠프생들도 첫날 밤을 거의 지샌 것은 물론이고 둘째날 저녁 때까지 연장해서 이어진 13개 강의와 ‘세저리’만의 특징인 튜토리얼(Tutorial)을 받느라 몸은 힘들지만 머리는 충만해지는 ‘초집중’ 일정을 소화했다.

▲ 참가자들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둘러보고 있다. ⓒ 김선기 박동국

세계 일류언론과 한국 언론은 왜 이렇게 다른가

6일 오후 간단한 환영식에 이어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무엇이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드나’라는 주제로 세계 일류언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했다. ‘신문수집’과 신문방송 모니터링이 ‘취미’인 그는 <가디언> <르몽드> <월스트리트저널> 등 전 세계 유명 일간지와 방송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비교하며 한국신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표준에서 한참 일탈한 우리 기성언론을 비판하면서 ‘한국 언론의 미래’인 언론인지망생들에게 “신문과 방송을 비판적으로 읽고 보아야 비판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윤리의식이 생긴다”고 역설했다.

▲ 저녁에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질문을 주고받는 담소시간을 가졌다. ⓒ 박동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시락으로 대신한 저녁 식사시간에는 3개 기자반과 2개 피디반으로 나뉘어 튜터들과 함께 담소를 나눴다. 캠프 참가자들은 교수진에게 그동안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많이 나온 질문은 글을 잘 쓰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다. 여러 가지 팁들이 제공됐지만, 이 원장은 특히 “스케치 기사나 칼럼을 쓸 때는 풍경이나 사례를 대비시키는 ‘콘트라스트 기법’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고 조언했다.

<뉴스타파> 비상임 대표를 겸하는 김용진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힘, 탐사보도’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많은 기자들이 ‘기레기’로 불리는 세태에 대해 “확인과 검증 없는 보도가 한국 언론의 신뢰를 추락하게 했다”며 “오늘날 한국 언론 대부분은 ‘컨베이어 벨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절차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파헤치는 탐사저널리즘의 자세가 모든 언론인에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뉴스파타>가 지난 대선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취재한 사례를 통해 탐사저널리즘의 구체적 방법과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언론이 공적 시스템의 잘못된 운영을 꾸준히 지적해야 사회를 투명하게 바꿀 수 있다”며 탐사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정임 교수는 ‘원전, 제2의 세월호 되나’를 주제로 ‘시사현안 백분토론’을 진행했다. 고리원전 비리와 노후화로 자칫 세월호 참사에 버금가는 재앙이 될 수 있는 원전의 유지와 폐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성훈(26·고려대 영어영문)씨는 “에너지 소비가 큰 한국에서는 발전 단가가 저렴한 핵 발전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높은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 찬성론을 폈다. 그러나 이은지(29·이화여대 국어국문)씨는 “원전의 경제성이 높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원전 발전에 지원하는 예산이 많아 저렴해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며, “안전 문제와 사회 갈등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 1박 2일간 13개 강좌가 쉴틈없이 진행됐다.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 김선기 박동국

PD 교수들 앞에서 큰소리친 PD 지망생들

첫날 마지막 강의인 ‘기획, 세상에 말 걸기'에서 장해랑 교수(KBS 피디)는 기획안 작성법을 설명하며 “기획은 감동과 재미, 그리고 사회 비판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다큐멘터리 사례로 공공재의 민영화 문제를 다룬 <블랙딜>과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문>(2012)을 보여주며 “자신이 사회에 무엇을 말하려면,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좋은 피디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과 방송을 자신만의 분석을 통해서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끝없이 고민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언론인의 덕목을 강조했다.

늦은 밤까지 연장된 수업으로 자정이 넘어서야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귐의 시간’ 막걸리 파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참가자들은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고 합니다, 모두 미친 사람이 됩시다”, “올해 안에 KBS 피디가 될 놈입니다” 등으로 당돌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한 참가자는 뉴스타파 비상임대표인 김용진 교수를 바라보며 “오로지 뉴스타파 피디를 꿈꾼다”며 자신을 알렸다. 중간중간 이뤄진 교수들의 건배사는 다시 한번 언론에 대한 꿈과 열정을 떠올리게 했다.

▲ 새벽까지 이어진 '사귐의 시간'에서 참가자들은 언론인 지망생의 끼를 한껏 보여줬는데 특히 이상요 교수(KBS 피디)의 피디2반이 우승해 상금을 받았다. ⓒ 김선기 박동국

이들은 팀별 게임, 시사 퀴즈 등 준비된 코너를 즐기며 새벽 3시까지 사귐의 시간을 가졌는데, 많은 경품 외에도 특히 끼를 발산해 1등을 한 ‘피디2반’에게는 1인당 1만원씩 특별상이 수여됐다. 공식 일정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 참가자들은 이봉수·김용진 교수 등을 붙잡고 새벽 5시가 넘도록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학생들이 덜 들어왔는데도 강의실 문을 잠근 이유

캠프 둘째 날 첫 수업 ‘DB 만들기와 칼럼 쓰기, 자소서 클리닉’ 시간에는 10여명이 지각했다가 ‘봉발대발’로 유명한 이봉수 원장이 문을 안으로 잠그는 바람에 지각생들이 10여분간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원장은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태도”라며 “스스로 핑계를 만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KBS 사장 후보에도 올라있는 이상요 교수는 ‘PD는 영상으로 말한다'에서 ’문자언어‘와 ’영상언어‘의 차이점을 말해주었다. “단어 하나에 하나의 의미 밖에 담을 수 없는 문자언어에 비해 영상언어는 하나의 영상에 다양한 의미를 넣을 수 있다”며 영상 미디어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는 “지금 같은 미디어 융합 시대에는 전에 없던 다양한 플랫폼,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한다”며 ”기자∙PD 구분 없이 누구든 영상이나 글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정임 교수의 ‘시사현안 가닥잡기’ 강의는 전날 ‘백분토론’ 시간에 다뤘던 원전 유지와 폐지 논란에 이어진 수업이었다. 신재생에너지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원전이 차세대 에너지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가 돼야 한다’는 ‘원전 징검다리론’ 등에 초점을 맞춘 토론이었다.

7일 저녁 장해랑 피디의 ‘기획안 첨삭’ 강의와 김용진 교수의 ‘미디어비평’ 수업을 마지막으로 캠프 일정이 끝났다. 이어진 수료식에서 이 원장은 “이번 캠프로 여러분은 우리 교수들과 사제지간이 됐다”며 “강연내용보다도 우리 교수진의 열정과 결단을 배워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비언론인은 유보된 인생”이라며 “좌절도 많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비틀거리면서라도 한 발짝씩 나아가면 목표지점에 이르게 된다”고 격려했다.

▲ 1박 2일 캠프 일정을 마친 참가자들이 수료증을 받고있다. ⓒ 박동국

“현장에서 봅시다”

참가자 정영균(28∙전남대 경영)씨는 유익했던 강의로 ‘자소서 클리닉’을 꼽으며 “미흡한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랐는데, 강의를 듣고 나서 수정할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지연(26∙서울대 행정대학원)씨는 “기획안 피드백 시간이 가장 좋았다”며 “직접 피디에게 실무적인 팁을 전해 들을 수 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짧지만 임팩트가 강렬했던 ‘세저리 캠프’는 최후의 만찬으로 마무리됐지만 참가자들은 어느새 친해진 교수진 또는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만남, 긴 여운’을 아쉬워했다. 대절한 버스도 떠났지만 ‘현장에서 보자’는 약속은 모두들 뇌리에 남았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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