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의 길’ 감 잡은 예비언론인 판 ‘1박2일’

“작년에 지원했는데 떨어졌거든요. 주변에 캠프 다녀온 친구 얘기 들어보니까 유익하고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또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장윤석(26·연세대 전기전자)

“‘언론고시’ 준비한 지 얼마 안 돼서 강연을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캠프의 경쟁률이 높다고 하기에 모집 시작하는 날 자정에 지원했죠.” 이수현(26·고려대 철학)

언론고시생들에게는 큰 행사인 KBS 필기시험을 치른 바로 다음 날인 27일 작지만 알찬 행사가 또 열렸다. 언시생들에게 인기 높은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언론인 캠프’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시작된 것이다. 설 연휴를 목전에 둔 때인데도 언론인 지망생 70명이 전국 각지에서 충북 제천의 세명대 캠퍼스를 찾아왔다. 실은 27일 아침 뒤늦게 “병이 나서 가지 못한다”고 통보한 이가 한 명 있었지만, 긴급교체된 지원자까지 거의 제 시간에 도착하는 열의를 보였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강의실로 향하는 학생들 얼굴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한 듯했다.

제8회 대학언론인 캠프는 설 연휴임을 고려해 예년보다 하루 줄인 1박2일 일정으로 열렸다. 식사와 취침시간까지 줄여 진행된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예비언론인들은 피곤함을 잊은 채 수업에 몰입했다.

▲ 8기 캠프에는 예년보다 10명이 많은 70명이 참가해 대형 강의실에 책걸상을 더 들여와야 했다. ⓒ 조수진

 27일 오후 간단한 ‘환영식’에 이어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세계 일류언론과 한국언론’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세계의 일류 신문과 방송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했다. ‘자료수집 마니아’이기도 한 이 원장은 직접 외국 신문이나 방송을 보여주며 보수∙진보를 막론한 한국 언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혁신방향을 제시했다.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많은 이야기를 전하느라 미처 수업을 다 마치지 못한 이 원장은 저녁 8시에 다시 강의를 재개했다. 그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한참 일탈한 우리 기성언론을 비판하면서 “신문 읽기도 비판적으로 해야 균형감각과 역사의식, 윤리의식을 가진 언론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예비언론인들. ⓒ 송두리

김용진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힘, 탐사보도’ 강의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풍부한 사례를 들며 탐사보도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뉴스타파> 비상임대표이기도 한 그는 최근 논란이 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뉴스타파>가 시도한 데이터 분석 방법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그는 “탐사보도는 단순히 논란을 보여주는 일반 저널리즘에서 한층 더 깊이 들어가 진실 여부를 밝혀내는 데 가치를 둔다”고 말했다. 그는 상업주의와 정파성에 빠진 한국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캠프 참가자들에게 “장차 뉴스를 만들어낼 언론인으로 언론의 진정한 역할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맛만 본 ‘튜터링’, 밤새워 갖고 싶었던 ‘사귐의 시간’

저녁 9시가 다 되어 강의는 끝났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튜터별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이봉수∙김경애∙김용진 교수, 장해랑∙이상요 피디를 튜터로 한 다섯 그룹은 각기 다른 방으로 흩어져 평소 궁금했던 점에 대해 쉴 새 없이 질문했다. 튜터들은 현장을 누볐던 경험을 되살려 언론사 입사 노하우와 언론인으로서 가졌던 고충과 직업적 보람 등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했다.

▲ 참가자들은 전·현직 기자/PD와 가진 튜터링 시간에 그동안 가져왔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 손지은

특히 정영무 한겨레신문사 사장과 함께한 이봉수 튜터 그룹에서는 날카로운 질문과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나금동(27·Torch Trinity 신학대학원)씨는 “청년취업 문제나 여성고용 불안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기성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고, 배상철(28·건국대 지리학과)씨는 구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종이 신문의 장래에 대해 물었다.

이어진 ‘사귐의 시간’에서는 숨 가쁜 캠프 일정 탓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참가자와 교수진∙재학생, 그리고 이미 언론인이 된 졸업생들이 감자탕과 막걸리 등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게임과 노래 자랑 사회는 저널리즘스쿨 1학년인 신은정씨와 캠프 참가자 중 아나운서 지망생인 배경민(24·한국외대 프랑스어)씨가 맡았다. 튜터별로 팀을 나눠 게임과 노래자랑, 춤판을 벌이고 상품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팀원 전원 귀가 차비’가 걸린 1등상은 이상요 피디팀이 탔다.

▲ 자정이 넘도록 이어진 '사귐의 시간'. ⓒ 손지은 송두리

세상을 바꾸는 ‘피디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둘째 날인 28일은 장해랑 KBS 피디의 ‘다큐멘터리의 현재, 과거, 미래’ 강의로 시작됐다. 장 피디는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라며 “방송뉴스는 세상을 말해줘야 하는데 요즘 KBS, MBC 뉴스만 보고는 세상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 피디는 <변호인> <두 개의 문> 등을 통해 현재의 시대상황을 살펴보고, <북극의 나누크> <전함 포템킨> 등을 통해 과거를 회상한 뒤 “다큐멘터리란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디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며 “내가 만든 작품으로 감동하고, 감동한 누군가 ‘액션(행동)’을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 KBS <차마고도>를 기획한 이상요 PD가 강의를 하고 있다. ⓒ 송두리

이어 이상요 KBS 피디는 ‘영상 내러티브의 세계’를 강의했다. 이 피디는 영화 <괴물>과 그가 책임피디를 맡았던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보여주며 작품에서 사용한 영상 기법들을 설명했다. 이 피디는 특히 이야기 전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야기 자체를 말하는 ‘스토리(이야기)’와 이야기하는 방식까지 포함하는 ‘내러티브(이야기 전개)’는 차이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야기하는 방식이 부족하다”고 일갈했다. 이 점에서 영상을 통한 이야기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 '아랑' 카페지기(술값)인 이현택 기자(중앙,JTBC)가 ‘언론고시, 원 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 조수진

점심을 먹고 곧바로 이어진 ‘언론 바로 보기, 매체비평’ 강의에서 김용진 교수는 KBS 미디어포커스 데스크 시절 축적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김 교수는 “매체비평의 시작은 표제 분석”이라며 “동일한 사건임에도 표제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혹은 표제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디어를 볼 때 단순히 보지 말고 어떤 소스(출처)에 의해 전달된 것인지 ‘합리적 의심’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잠깐 열린 ‘자소서 클리닉’의 아쉬움, ‘술값’이 덜어주다

곧 이어 ‘개인 데이터베이스(DB) 만들기와 칼럼 쓰기’ 강의에서 이봉수 원장은 자신이 신문과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책을 읽으며 만들어온 데이터베이스를 보여주면서 DB구축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취미처럼 하는 꾸준한 DB 작업이 좋은 칼럼을 쓰게 하는 원천”이라며 예비언론인들에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좋은 언론인으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도 DB 작업을 당장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애초 이 원장은 ‘자기소개서 클리닉’도 강의하기로 했지만, 앞선 강의시간들이 밀리면서 30분으로 강의를 줄여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떨어지는 자소서’의 유형을 설명한 뒤 자신이 첨삭해주고 DB로 보관하고 있는 수많은 명품 자소서들 가운데 2개를 보여주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다. 명품 자소서들이 공개되자 감탄을 하면서 노트에 받아 적거나 사진을 찍는 예비언론인도 많았다.

▲ 거의 쉴 틈 없이 이어진 일정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 송두리 조수진

마지막 강의는 언론사 입사준비 카페 ‘아랑’ 운영자(아이디: 술값)인 이현택 중앙일보·JTBC 기자의 ‘언론고시, 원 포인트 레슨’이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지칠 만도 했지만, 예비언론인들은 끝까지 적극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논술 글을 쓸 때 회사 논조를 의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JTBC 인재상이 무엇이냐” 등등 언론사 입사를 위해 궁금했던 질문을 한껏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강의는 저녁 6시 20분이 돼서야 모두 끝났다. 이후 진행된 수료식에서 이 원장은 “캠프를 통해 여러분과 우리는 사제지간이 됐다”며 “좋은 언론사에 입사해서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했다.

▲ 수료식을 끝으로 일정이 마무리됐다. ⓒ 조수진

한발 더 다가선 예비언론인의 꿈

참가자 양진오(26·부산대 신문방송)씨는 “이번 캠프를 통해 어떤 언론인이 돼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던 게 제일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박시영(28·한국외대 언론정보)씨도 “졸업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이번 캠프가 상당한 채찍질이 된 것 같다”며 “이현택 기자님 강의는 구체적으로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튜터별 간담회 시간이 가장 좋았다는 심유리(24·숙명여대 경영)씨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도 “드라마 피디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강의도 저널리즘 쪽만 다루지 말고 다양한 장르를 다뤘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예능 피디 지망생 장윤석씨는 “기자 관련 수업이 많아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언론인이라면 생각해봐야 하는 점을 짚어준 게 좋았다”면서 “편협한 사고의 폭을 넓혀준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숨 가쁜 일정은 수료식을 마지막으로 밤이 돼서야 끝났지만, 캠프 참가자들은 세저리(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별칭)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세저리의 1박2일. 캠프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르는 예비언론인들은 가슴에 다시 품은 열정을 서로들 확인하며, 어느 길을 통하건 언론현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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