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이슈 보도실습] 도시양봉인 박진 어반비즈 대표
서울 한강 노들섬에 있는 노들텃밭에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남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이 이들은 얼굴에 그물망을 드리운 모자까지 갖춰 썼고 손에는 호미 대신 훈연기(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기를 내는 양봉도구)를 들었다. 도심 속에서 꿀벌을 키우는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 회원들이다.
열매 안 열리는 옥수수 보고 ‘도시에 벌 키워보자’ 결심
어반비즈 박진 대표(32)는 몇 년 전 공기업에 다니며 서울 근교 주말 농장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열매가 잘 맺어지지 않아 농장 주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벌이 없어 그렇다고 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드(Nerd: 한가지 일, 특히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몰두하는 괴짜)죠. 누가 도시에서 양봉을 할 생각을 하겠어요? 나에게도 즐겁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활동을 갈망했어요. 꿀벌도 살리고 푸른 서울도 만들고 싶어요.”

박 대표는 발로 뛰며 양봉 공부를 했다. 자료를 직접 모으고 발품을 팔아 주말마다 경기도 인근 양봉농가에서 실습을 했다. 2년 전부터는 회사를 관두고 본격적으로 양봉에 뛰어들었다. ‘도시양봉인’은 이름조차 생소한 직업이다. 그가 어반비즈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을 때, 주변 반응은 반신반의했지만 현재 어반비즈에는 중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30여명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겨울에 여왕벌이 없어져서 고생 좀 했어요." 어반비즈의 최연소 회원인 김혜성군(15·볍씨학교)은 2년째 벌을 키워온 ‘양봉가’다. 지난해까지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학교 옥상에 벌통 하나를 놓고 양봉을 해왔다. 올해는 어반비즈에서 4통을 더 받아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도시양봉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각광받는 산업이고, 인기 있는 취미다. 2008년 영국에서 옥상 양봉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현재 런던에만 3200개가 넘는 벌통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벌 키우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도시양봉의 환경적 가치가 주목 받으며 법이 바뀌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2012년 서울시도 서소문청사 옥상에 벌통 5개를 놓고 양봉사업을 시작했다. 강동구 등에서도 양봉장을 설치하고 도시양봉학교를 운영한다.
“꿀벌은 환경지표종이에요. 꿀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사람도 살기 좋은 환경이죠.”
현재 벌은 생존의 갈림길에 서있다. 2009년 벌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전국을 휩쓸며 토종벌의 95%가 괴사했다. 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벌군집붕괴현상(CCD)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벌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71%는 벌의 수분작용으로 생산된다. 벌이 사라지면 더 이상 사과나 아몬드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따뜻하고 식물 다양한 도시가 벌에게도 좋은 서식지
도시는 시골보다 벌이 살기 좋다. 꿀벌의 겨울 생존율은 시골에서 40%이지만 도시에서는 62.5%에 이른다. 열섬현상으로 따뜻하고 건조해진 도시는 벌에게 좋은 서식지다. 또 단일 작물을 기르는 시골에 견주어 도시에는 식물이 다양해 계절이 바뀌어도 먹이가 충분하다.
일반 양봉은 계절이 바뀌며 꽃이 피는 지역으로 벌통을 옮기는 방식을 택한다. 이와 달리 어반비즈는 도심 속 고정된 장소에 벌통을 두고 벌들이 자연스럽게 도시 환경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노들텃밭에서 농민과 꿀벌은 공생하는 생태계를 이룬다. 텃밭작물은 꽃을 피워 꿀벌에게 먹이를 주고, 꿀벌은 꽃가루를 옮겨 작물의 수분을 돕는다.
박 대표는 벌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일반 양봉과는 다르게 키우려 한다. 봉군(벌 떼)이 약하지는 않은지, 혹은 너무 강해 벌통 여기저기 헛집을 지어 질서가 깨진 건 아닌지 양봉일지를 작성하며 벌들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핀다. 그는 벌의 밀집도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 공간 안에 꿀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먹이경쟁이 심해져 오히려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도시양봉 지도를 만드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벌이 꼬이니 곤충·새도 찾아들어
사람들이 도시양봉에 관심을 가질수록 꿀벌의 먹이가 되는 밀원 식물의 필요성도 높아진다. 지난 4월 어반비즈는 ’나무를 심고, 벌을 지키자’라는 행사를 했다. 노들섬에 해바라기와 벌이 좋아하는 바이텍스 나무 50그루를 심었다. 박 대표는 “꿀벌을 위해 옥상에 텃밭을 가꾸고, 거리에 꽃을 심다 보면 푸른 도시가 된다”며 “벌을 따라 곤충들과 새들이 자연스레 도시로 찾아오니 도시의 생태다양성도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어반비즈는 노들섬, 서울연구원, 명동 유네스코빌딩, 서대문구청, 서울대학교, 어린이 대공원 등 8곳에 벌통 70개를 설치했다. 박 대표는 “도시양봉의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도시에서 벌을 키운다고 하면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빌딩은 설치를 허락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사람들이 꿀벌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활동하려고 해요. 저희는 무작정 벌을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기보단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싶어요.”
어반비즈는 매주 세 차례 양봉교실을 운영한다. 꿀벌의 환경적 중요성과 더불어 꿀벌과 꿀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지식부터 실질적 양봉 기술까지 폭넓게 가르친다. 지금까지 150여명 수강생이 도시양봉인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 만 명까지 교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어린이를 위한 양봉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꿀벌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꿀도 수확해본다. 멀리 가지 않고도 도시 아이들의 생태감수성을 키워줄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양봉가구가 고령화해 새롭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들을 도시양봉을 통해 도전하고 싶어 한다. 도시양봉을 통해 고품질의 안전한 꿀을 얻고, 세련된 양봉 상품을 만들어 내고, 여러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색다르게 도시양봉을 알리고자 한다.
도시양봉은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다. 설탕을 먹이지 않고, 항생제를 쓰지 않은 꿀을 채취할 수 있다. 어반비즈는 도시 곳곳 양봉장에서 일 년에 약 750kg의 꿀을 얻는다고 한다. 꽃꿀이 모이면 바로 채취하는 일반 양봉과 달리 벌통에 45일 정도 두고 벌의 날갯짓으로 수분을 말린 숙성꿀을 생산한다. 서울에서 채취한 꿀은 안전하기도 하다. 서울시가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해 잔류 농약과 중금속 검사를 한 결과 식용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어반비즈는 양봉 부산물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상품들도 만들어내고 있다. 예쁘게 가공된 밀랍초와 꿀, 벌꿀비누 등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입소문을 통해 판매된다. 올해는 백화점 기획전이나 온라인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직접 도시양봉을 하지 않더라도 꿀벌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어반비즈는 25일 서울 명동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도시양봉을 알리기 위한 꿀 따기 행사를 연다.
“토끼풀 같은 작은 풀들도 소중히 생각해주세요. 꿀벌의 소중한 먹이가 됩니다. 동네에 자투리땅이 있다면 그곳에 꽃과 나무를 심는 건 어떠세요? 꿀벌도 살리고 여러분이 사는 도시도 살릴 수 있습니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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