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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찾았는데...잊혀질까 두려워”
[다시 찾은 진도] ② 남겨진 실종자 가족의 고통
2014년 05월 23일 (금) 16:13:50 송두리 박세라 조창훈 계희수 기자 duri@danbinews.com

지난 17일 밤 10시 30분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검푸른 바다는 고요했고 바람은 차가웠다. 그 적막을 깨고,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남성들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00야, 00야! 00야 빨리 와! 00야! 빨리 와!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00야!”

“보고 싶어! 내 새끼 어디 있는 거야! 아빠가 안아줄게. 보고 싶다!”

바다를 향한 탁자에 아이들이 좋아하던 음식 등을 차려놓고 귀환을 기원하는 막사. 그 옆에 중년 남성 7명이 서 있고, 이 중 서너 명이 먼 바다를 향해 목 놓아 소리치고 있었다. 몇 걸음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동년배의 경찰관이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다, 부르다 목이 잠긴 아버지는 울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10여분간 소리치고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승려와 경찰관 몇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위로하자 그들은 팽목항 안쪽에 있는 가족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운동복 차림의 아버지들은 서로를 의지해 걸으면서 간간이 팔뚝을 들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예쁘게 보내주고 와. 예쁘게 보내주고 와.”

세월호 참사 31일째인 지난 16일 오후 6시 무렵 팽목항에서 셔틀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 입구. 보라색 바람막이 상의를 입은 중년 여성을 몇 사람이 둘러싸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이 여성은 이제 팽목항으로 가서 낮에 수색팀이 수습한 시신을 확인할 참이었다. 기다리던 가족이 맞다면 이제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유족 위로할 최상의 언어가 없다"

   
▲ 지난 17일 오후 3시경, 마지막 1구의 시신까지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팽목항 법당을 찾은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 송두리

같은 날 낮, 팽목항의 빨간 등대로 향하는 방파제길. 기독교감리교회가 만든 기도실에서 나이 지긋한 여성의 울음 섞인 기도소리가 들렸다. 오래 울어서인 듯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원불교, 대한불교조계종 등 종교 단체에서는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기도실과 법당을 팽목항에 각각 마련했다. 하루빨리 실종자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들이 수시로 찾아와 기도를 올린다. 전남서지방 34개 교회 목사들이 모인 호남선교연회 희망봉사단의 이모 목사는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가족을 잃는 분들이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이 줄어들자 남은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몇 주 전에 비해 언론 보도도 많이 줄었어요. 몇몇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 자식, 내 가족을 못 찾았는데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것입니다. 목사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위로할 최상의 언어가 없다고 느낍니다.”

사고 직후부터 팽목항의 기도실을 지키고 있는 원불교 박소원 교무는 “눈물을 흘리거나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면 지켜보기 안타깝다”며 “많은 사람들이 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전 11시 무렵. 간밤의 수색작업으로 시신 1구를 발견해 실종자 수가 18명으로 줄었다. 진도실내체육관의 한쪽 자리에는 가족 5명이 둘러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 그들은 애써 흐느낌을 참는 모습이었다. 기도를 마치자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비슷한 연배의 남편은 아내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지다 감싸 안았다.

오전 11시26분쯤, 체육관 앞에 설치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매일기도회 천막 밖에서 회색 카디건을 입은 가녀린 체구의 50대 여성 한 명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서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남학생의 엄마라고 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다고 했다.  

“부질없다는 건 알지만 아이가 꼭 살아있을 것 같아요. 아무 생각이 없네요. 멘탈 붕괴. 딱 그 상태예요.”
 
낮 12시쯤, 체육관 현관에서는 실종자 가족 6명이 모여 더딘 수색작업과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특히 언론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의문을 파헤치는 대신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데 대해 분개했다. 

“제발 언론은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기사로 쓰지 마세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상황을 모르잖아요. 그러면서 지나가며 들은 이야기를 기사로 써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찾은 뒤 떠났고 남은 가족이 몇 안 되니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50대 여성이 답했다. 

“처음보다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아요. 애만 찾았으면 좋겠어요, 애만. 애를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죽은 우리 딸, 빨리 찾아달라는 것뿐이에요.”

   
▲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팽목항 빨간 등대길 끝. 실종자 가족들이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던 과자와 갖고 싶어하던 운동화 등을 놓아 두었다. ⓒ 박세라

팽목항 밥차 1500인분에서 150인분으로 줄어

<단비뉴스> 취재팀이 지난 15일 저녁 진도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3주 전 자원봉사를 하러 왔을 당시와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350여명이 머무르던 체육관 1층에는 이제 30여명의 가족만이 자리를 지켰다. 떠난 유족들의 자리에는 이부자리만 남았다. 3주 전에는 체육관 2층에 20여명 정도의 취재진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철수하고 가끔 방송카메라를 든 기자가 오가는 정도였다.

1층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여전히 세월호 관련 속보와 진도앞바다의 수색작업 현장 화면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지나치게 밝아서 가족들의 숙면을 어렵게 했던 조명은 많이 줄어 3~4개의 전등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한달 이상 체육관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낸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에 새로 마련된 개별 조립식 주택으로 옮기는 것을 대부분 거절했다고 한다.

   
▲ 진도실내체육관 1층 입구 벽면에는 실종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 박세라

체육관 입구 왼쪽에 있던 구호품 지급 테이블은 없어지고 대신 추모메시지를 적은 쪽지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00아! 아빠 인내심이 다했다. 언능와라”, “박00,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등 희생자 부모의 마음을 담은 메모와 “어서 기다리고 있는 너희 부모님 품으로 돌아와라”는 간절한 기원의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수습된 시신의 신원정보를 알리는 체육관 내 게시판의 공지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3주 전에는 흉터, 점과 같은 신체 특징을 비롯해 얼굴 형태와 연령대, 체구 등 구체적인 정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성별, 머리카락 길이, 입은 옷, 소지품 등이 전부였고 키도 오차범위 7cm 정도의 추정치로 게시됐다. 물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전하게 수습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이 더욱 미어졌다. 정확한 신원확인은 최소 12시간이 걸리는 유전자(DNA)검사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자원봉사단체 부스도 줄어 체육관 밖은 한산했다. 체육관 진입로에는 대한적십자, 안산시 자원봉사단, 전라남도, 코오롱 인더스트리와 각 종교단체의 부스 등 30여개 천막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3주 전과 같이 북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품을 다 철수해 텅 빈 곳도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가족과 수색대원 등을 위해 지원품을 보내는 손길도 많이 줄었다.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김규봉 계장은 “사고 직후에는 진도군에 하루 5000건 이상의 지원 물품이 들어왔는데 4월 22일 이후엔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해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전접수를 중단한 이후에도 세면도구, 담요 등의 생필품과 생수, 음료수, 과자 등의 물품이 하루에 100~300건 정도 진도군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예민해진 실종자 가족 배려해 출입통제 강화  

체육관 내 피해자 가족들은 언론 등 외부인과의 접촉을 더욱 피하는 분위기였다. 1층 체육관 내로 들어가는 입구는 경찰 2명이 지키고 있어서 전처럼 기자나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가족들이 있는 곳을 오가며 음식을 전달하거나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지만, 대개 출입구에 놓인 카트에 음식을 올려두면 가족들이 챙겨서 자리로 가져갔다. '기자들은 체육관 1층에서 인터뷰를 자제한다', '기자들은 1층 출입을 하지 말라'는 공지도 출입구에 붙어 있었다.    

   
▲ 사고 발생 31일 째인 지난 16일 오전 11시 경의 팽목항. 사고 당시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나 실종자 수가 줄고 현장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며 지금은 한산한 모습이다. ⓒ 송두리

밤이 되면 특히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팽목항에는 천막마다 두꺼운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대한적십자회’, ‘엔에이치농협 행복나눔봉사단’ 등 운영단체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들이 비닐에 가려져 식별이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봉사자들은 이미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팽목항에 남아있는 취재진과 자원봉사자, 구호대와 의료진 등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민간구호기구인 '아드라코리아' 배식차량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한 중년 여성은 “처음엔 우리 밥차에서만 하루 약 1500인분을 준비했는데 지금은 150인분정도만 준비한다”고 말했다.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배려는 팽목항에서도 좀 더 강화됐다. 선착장 난간과 가족대책회의 본부 앞에는 ‘가족들이 싫어하니 사진촬영을 하지 말라’, ‘가족들을 위해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 달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었다. 이 공간들은 ‘가족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됐고 특히 사고 현장에서 시신이 들어오는 신원확인실 앞에는 경찰이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다.

   
▲ 지난 16일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막사 앞의 모습. <단비뉴스> 취재팀이 자원봉사자로 팽목항을 찾았던 3주 전과 달리 가족 외 일반인의 막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송두리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진도향토문화회관 2층에 진도군청이 마련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친 연휴에는 하루 1400여명이 방문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하루 수십명 정도가 조문하는 데 그치고 있다.

진도군민 등 "마지막까지 함께" 지원 의지

진도군민들은 세월호 사고의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구조작업부터 실종자 가족 지원에 이르기까지 자기 일처럼 나서왔고, 여전히 열의를 보이고 있다. 기름유출 등으로 경제적 피해까지 입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생업을 제쳐두고 실종자 가족 지원에 나선 주민도 많다. 팽목항에서 15분 거리인 진도읍 탑립길에 사는 정성도(58) 재림교회 장로는 사고 당일 상황실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날 교단에서 운영하는 밥차를 팽목항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안산과 진도는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해요. 사실 세월호가 제주도로 향하는 도중에 진도에서 사고가 난 건데 진도 주민들이 함께 그 슬픔을 나누고 있죠. 저는 양배추 농사를 하는 사람인데 밭에 심어만 놓고 온종일 팽목항에 있습니다. 사람이 빠질수록 실종자 가족들은 외로움을 느낄 테니 마지막까지 유가족을 도울 생각입니다.”

진도에서 누구보다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직접 수색작업을 담당하는 잠수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7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수색에 참여하고 있는 민군경 합동 수색대원은 이날 총 113명이며 이 중 민간대원이 12명이다. 수색대원들은 팽목항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사고해역의 바지선에서 대기하며 교대로 잠수작업에 나선다. 

수색기간이 길어지면서 세월호 선체 6곳에 붕괴 위험이 있고 격실 진입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격실에 들어가도 시야가 흐릿하기 때문에 잠수사들은 손 끝 감촉에 의지해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장애물에 긁혀 잠수복이 찢기는 등 위험요소가 만만치 않다. 

‘아이디이에이 아시아(IDEA-ASIA) 수난구조대‘를 주축으로 모인 민간다이버 협회들은 지난달 17일부터 팽목항에서 민간다이버지원센터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구조작업에 투입되는 잠수부가 줄면서 하나둘씩 철수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협회소속 봉사자들은 남아있는 민간잠수부와 군경소속 잠수사들을 위해 간식 등 먹을거리를 배편으로 보내고 있다. 한 여성봉사자는 “잠수부들 건강이 걱정돼서 음식이라도 잘 챙겨먹을 수 있게 하려고 남편과 함께 왔다”며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리가 떠나면 이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마지막 시신을 찾을 때까지 팽목항에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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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리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원, 환경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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