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전국서 ‘국민파업대회’

“박근혜 정부 1년은 공약파기, 민생파탄, 민주주의 파기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 노동자, 농민, 빈민, 상인들이 일어선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은 25일 오후 4시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시민단체가 구성한 국민파업위원회 주최로 ‘이대로는 못 살겠다’ 국민파업대회가 열렸다. 서울 대회에는 주최측 추산 4만여 명(경찰추산 1만3000여 명)이 모였고 광주, 부산 등 전국 11곳에서도 지역별 대회가 열려 총 10만여 명이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 선거개입 진상 규명 요구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동대회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자 참가자들은 ‘박근혜 OUT(아웃)'이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며 ’비정규직 철폐‘, ’민주주의 사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차례로 공동대회사를 발표한 9명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통해 드러난 관권·부정선거의 진상을 규명하고 비판세력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청중 가운데 있던 ’한예종100인민영화반대모임‘의 배한솔(22)씨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 과정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에 대해 박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진상규명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2·25 국민총파업' 참가자들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을 통해 드러난 관권·부정선거의 진상을 규명하고 비판세력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조수진

“이번 국민총파업에 다양한 집단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부정 선거’ 때문이죠. 철도·의료·장애인·노점상 등 각 집단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있는 거예요.”

대학생 류덕경(24)씨는 이날 집회에 장애인과 노점상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 것을 보고 이렇게 해석했다. 류씨는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이미 신뢰를 잃은 정부가 (선거)공약을 이행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공약 파기 후에도 기만적 태도는 여전했다”며 “지금의 퇴진 구호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북부지역장 정구준(53·서울 월계동)씨도 “대통령 본인은 공약을 어기면서 남에게만 법을 지키라고 윽박지른다”며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은 듣지도 않고 비정상으로 몰아 세운다”고 비판했다.

특혜 아니라 생존권 보장해 달라는 것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할 순 없잖아요. 노점상 못하게 하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서울 강서구에서 노점을 한다는 문정현(56)씨는 "지난 24일 강남구청 단속원 100여 명이 강남역 인근의 노점을 강제 철거한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에게 자립 기회마저 빼앗지 말아 달라”며 생존권 보장을 호소했다. 파업대회에 참여한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 단체가 정부에 요구한 내용은 각각 달랐지만 ‘특혜가 아니라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는 하소연은 같았다.

휠체어에 앉아 ‘공약 이행’을 외치던 권기대(35·서울 광진구)씨는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인특별법 폐지 등을 위해 526일 째 무기한 농성 중”이라며 “우리 같은 장애인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장애인등급제란 행정편의를 위해 장애인을 1~6등급으로 나눠 의료지원을 차등적으로 하는 제도다. 장애인단체에서는 ‘사람을 등급으로 매겨 관리한다는 점 자체가 반인권적’이라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공약했다.

 

▲ 25일 오후 2시 국민총파업 본대회에 앞서 장애인 등 시민단체는 사전 결의대회를 가졌다. 장애인단체는 사람을 등급으로 매겨 관리하는 '반인권적'인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촉구했다. ⓒ 조수진

광장집회에 자주 나온다는 강성현(61·서울 중랑구)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민영화 움직임과 관련 “민영화로 의료비가 폭등하게 되면 서민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서민은 아프지도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전남대병원 의료노조원 신미향(48·여)씨는 “의료 민영화는 (공공성이 필요한) 의료를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동조합 유지현 위원장은 투쟁발언에서 “원격진료, 병원 부대사업 허용 등은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국민건강권을 포기하는 정책, 대규모 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일자리 파괴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장애인·등록금 공약 폐기와 민영화 추진 비판 목소리도

청소년인권행동단체 아수나로 회원 선우씨는 철도노조 파업 사태 이후 “아침에 지하철 탈 때마다 (사고 등 문제가 생길까봐) 불안함을 느낀다”며 “모든 것에 (민영화 등) 수익성 논리를 들이대는 정부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 집회 참가자들은 모든 것을 수익성 논리로 재단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철도·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조수진

한국대학생연합 등 대학생 단체들은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과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촉구했다. 서울지역대학생연합 강민욱(29)씨는 “안정되고 질 좋은 일자리 대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값싼 노동을 손쉽게 이용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돈) ‘없는’ 노동자보다 ‘있는’ 사용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6시쯤 대회를 마친 뒤 거리 행진을 시도했지만 을지로입구역, 청계천로 등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서울광장 등에 전경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185개 중대 1만5000여 명을 배치했다.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이어진 촛불집회에는 앞선 국민파업대회와 달리 가족단위 시민들과 중고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두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도병구(44·자영업)씨는 "지금 언급되는 현안들은 40대인 나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더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내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촛불집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아수나로 회원들은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어 이렇게라도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집회에 나왔다”며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작은 목소리라도 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 오후 7시에 진행된 촛불집회에는 앞선 국민파업대회와 달리 가족단위의 시민들과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날 참가자수는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이었다. ⓒ 조수진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취임 1주년에 즈음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에는 지난 1월 신년회견에서 언급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공공부문 개혁', '규제 혁파', '창조경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국민행복 시대를 위한 구체적 방향을 천명한 것”이라며 “통일 대박에 이은 경제 대박 성공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이윤석 대변인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뚜껑을 여니 민생과 서민은 없었다”며 “경제민주화나 가계빚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장밋빛 청사진만 나열한 대국민담화는 공허했다”고 평가절하했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측도 “국민의 요구를 도외시하고 장밋빛 약속만 나열한 담화”라고 비판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