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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부터 시작하라
[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장원, 함규원
2013년 12월 03일 (화) 13:31:18 함규원 danbi@danbinews.com
   
▲  함규원

시급 3,400. 주말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 근무. 하루 식대 2,000. 쉬는 시간 없음. 휴게공간 없음. 주휴수당 없음. 퇴직금 없음.’

최저임금이 시간당 4,320원이었던 2011, 어느 편의점 노동조건이다. 나는 그 편의점 알바생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 편의점 주인은 틈날 때마다 자기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 학교를 쉬고 있다는 이야기, 믿던 친구에게 보증을 섰는데 배신당한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닌 이야기, 군대에서 행군할 때 선임들과 나눈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신나게, 가끔은 울컥하면서 털어놓았다.

나는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기 어려워 시선을 바닥에 둘 때가 많았다. 그래서 주인이 항상 입던 두 가지 바지가 생각난다. 그것들은 그가 견뎌왔던 이력처럼 조금은 남루해 보였다. 하나는 원래 색깔을 분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카키색 면바지였고, 다른 하나는 밑단이 낡아서 구멍이 난 청바지였다.

그래서 나는 근로기준법 운운하며 노동조건을 보장해달라는 말을 매번 삼킬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사장이 나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명백함에 인간관계가 개입되면, 사태는 흐릿해졌다. 편의점 주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내 몫을 되찾아야겠다는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알바생이라 불리는 단시간근로자, 일주일에 15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인정돼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모든 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알바가 ‘노동’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종종 잊는다. 우습게도 주인은 알바생 처지를 공감하고 헤아리지 않는데, 알바생은 주인 처지를 이해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이유, 쉬는 시간을 제공해줄 수 없는 이유를 왜 알바생들이 헤아려야 하는가? 나는 편의점 주인에게 정당한 노동조건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미안하고 잘못이라는 점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다. 나는 잘못되었음을 안다면 의미 있는 개선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너와 상관없는 것들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라. 네 생각이야 옳지만, 그렇게 생각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네가 골수분자가 될 게 아니라면 이렇게 헤집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구조적인 문제들, 사회적인 문제들, 그렇게 크고 거대한 것들을 신경 쓰지 마라,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헤집지 마라, 바뀌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다.’ 저런 말에 분노하는 것이 우리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변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능성과 변화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한 세계가 구조화하고 있는 것들은 균열한다. 균열은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해야 하는 세계의 간극을 좁히며 시작된다.

변화는 가능하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가능성이므로. 알바는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50년도 더 된 나라에서,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아직도 정착하지 못했다. 노동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알바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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