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오수미

▲ 오수미
연애는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을 탐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혼식은 탐색의 결과를 친지들 앞에서 발표하는 의식일 터이다. ‘밥’은 단순한 ‘먹을 거리’를 넘어 많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만 내겐 특히 ‘사랑’이었다.

첫 데이트는 흔히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연애의 시작을 자축한다. 그때 식사는 배고픔을 달래는 것만이 아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사 매너 등을 통해 품격을 파악하고, 한편으로 내가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화나 문자메시지, 또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면서 서로를 탐색하다가 시각∙청각∙후각∙미각 때로는 촉각까지 총동원해서 서로를 탐색하고 탐색당하는 순간이니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연애가 끝나도 잊지 못하는 설렘의 순간이다.

연애하는 동안에도 데이트는 곧 밥이다. 어느 시간에 만나든 얼마나 짧게 보든 대개 밥은 먹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쯤이면 ‘밥 먹고 가’라며 연인을 잠시라도 더 붙들곤 했다.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얼굴을 마주보면서 먹는 건 언제나 맛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고, 상대의 온기를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소풍 가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었다. 내가 직접 만든 밥을 주고 또 먹어주는 것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는 이벤트다.

이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실연당했을 때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집으로 돌아와 큰 양푼에 밥을 비비는 것이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꾸역꾸역 혼자 퍼먹는다, 입술에 묻은 밥풀까지 야무지게 손으로 밀어 넣으면서. 나는 아예 밥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결국 같은 맥락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도, 이제 더 이상 애인과 마주앉아 밥 먹을 일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결국 밥벌이를 함께하고, 같이 밥 먹을 식구(食口)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결혼 전에는 내 밥벌이만 책임지면 된다. 한 끼쯤 굶는 것도 상관없다. 결혼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배우자와 자식의 밥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요즘 결혼 적령기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서른을 넘기는 일은 예사고 40대 싱글도 꽤 있다. 밥을 책임지는 일이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소설가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토로한 말이다. 힘들고 지겨운 밥벌이,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함을 한탄하는 뜻이리라. 밥이야 말로 인간 생존의 필수품이자 삶의 본질이다. 그 밥벌이를 평생 혼자 해야 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진수성찬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는 법이다. 밥벌이의 책임을 나누고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밥을 나누면 밥맛도 좋다. 오죽 삶이 고단하면 애정을 나누기는커녕 혼자 살기도 벅찬 사람이 이리도 많을까? 소박한 밥상 앞에 책임도 나누고 애정도 나누는 삶이 많아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 제목은 수상작으로 발표한 것과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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