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부다] 곤충 농사 짓는 황규민 곤충하우스 대표

농사를 농사라 부르지 못해 속앓이를 해온 농부들이 있다. 농작물 대신 곤충을 기르는 사람들, 곤충하우스 대표 황규민(53)씨는 그 중 하나다. 그의 농장은 대전광역시에 속하긴 하지만 유성구 성북동의 한적한 시골에 있다. 버스종점에서도 차로 십여 분 거리에 있어 황 대표가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그는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는 상점에 들어가더니 바나나 한 박스를 사서 차에 실었다. 손님 접대나 간식용으로는 좀 많다 싶었는데, “곤충 멕일 거”라고 말했다.

▲ 곤충하우스의 황규민·김영희씨 부부. 곤충 산업의 초기 시장을 개척한 황씨 부부는 “곤충 농사가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 방글아

풍뎅이 번식력, 바로 이거야!

그는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근속 10년을 채우던 날 장사를 하고 싶어 사표를 썼다고 한다. 한때 화장품대리점을 여러 곳에 할 정도로 사업도 번창했지만 사기를 당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곤충농사라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준 이는 그의 아들이었다. 아직 화장품대리점을 하던 2001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장수풍뎅이를 사달라고 했다.

이내 자신도 장수풍뎅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들과 함께 키운 장수풍뎅이가 번식을 거듭해 집 베란다 전체가 사육장이 됐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불어난 장수풍뎅이를 아들에게 경제 교육도 시킬 겸 친구들에게 직접 팔아보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곤충사육을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처음에는 가정집을 얻어 사육장으로 사용하다가 2003년 빚을 내 이곳에 농지 500평을 매입하고 건물을 세워 곤충 농사에 전념했다. 대전의 대형 할인마트에 정식으로 곤충 매장도 냈다. 그는 직원 둘과 함께 농장을 맡고, 아내 김영희(51)씨가 매장에 나갔다.

곤충들은 종류에 따라 유충에서 성충에 이르기까지 먹이와 적정온도 등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남방형 곤충인 장수풍뎅이는 사슴벌레보다 5도쯤 높은 25-29도를 유지해줘야 잘 번식한다. 장수풍뎅이는 오륙십 마리를 한 통에서 키울 수 있지만 사슴벌레는 공격성이 강해 1령 애벌레부터 한 마리씩 따로 키워야 한다.

▲ 농장 끝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애벌레가 자라는 사육통이 늘어서 있다. ⓒ 방글아

곤충 농사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농장 일에 손이 익어가던 2009년 한 직원이 일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넉 달 뒤에는 농장에 불이 나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내 전재산이자 생명인 곤충이 다 죽어버렸으니……” 그는 생명을 키우는 사업은 실패하면 더 쓰라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농장이 보험에 가입돼 있어 재기할 수 있었다.

수요에 비해 곤충 농업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도 문제다. 황 대표가 처음 곤충 농사에 뛰어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곤충을 판매하는 곳이 스무 군데 정도였다고 한다. 농장은 딱 두 군데 밖에 없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니 하루에 택배가 100개씩 나갔죠. 한 달 매출이 7,500(만원)에 이르렀어요. 장차관이 안 부러웠죠(웃음).”

그런데 2006년 무렵 곤충 취급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층의 온라인 쇼핑몰 창업이 많아서 지금은 백 몇 십 개에 이른다. 그는 우리나라 애완 곤충 시장이 포화상태에 들어섰음을 알았다. 그가 곤충을 애완용에서 식약용으로 판매하는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곤충 농업 활로 식약처 지원에 달려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 식품공전에 곤충의 식품코드가 등록돼 있지 않아 곤충을 식용으로 판매하는 게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그는 2006년 후반부터 여운하 장수풍뎅이연구회 회장, 백유현 나비마을 대표 등 곤충 농업의 초창기 멤버들과 함께 식약용 곤충 농업의 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희대 등에 곤충식(食)의 효능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부터 메뚜기는 물론이고 초가지붕에서 발견되는 굼벵이 등을 구워 먹어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상호씨가 흰점박이 꽃무지 굼벵이를 이용해서 만든 동충하초는 널리 판매되고 있다. 

그가 속한 한국곤충산업협회는 강기갑∙이길재 국회의원, 박정규(경상대)∙이준호(서울대) 교수, 농촌진흥청 당국자 등과 접촉하며 곤충산업법 초안을 마련했다. 황 대표는 “2010년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는 곤충 농부들이 값싼 농업용 전기조차 사용할 수 없었고 과세 혜택도 받지 못했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은 걸림돌은 식품코드 등록이에요. 곤충이 식약용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체독성검사를 해야 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거든요.”

현행법상 식약용으로 제조와 판매가 가능한 곤충은 누에 번데기와 메뚜기뿐이다. 그러나 농진청에서 2011년부터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에 대해서도 식약처 식품공전 등록을 위한 독성검사를 시작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윤은영 박사는 “갈색거저리는 이미 독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보고서 작성만 앞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빨리 식약용 곤충 시장이 정식으로 열리길 바란다”며 식약처에 곤충 산업에 대한 관심과 곤충의 식품코드 등록을 촉구했다. 그는 “곤충 농사가 농업의 마지막 블루오션”이라며 그동안 정부에서 강조해온 ‘녹색성장’ 역시 곤충 농업에서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곤충을 기르는 데 필요한 톱밥은 참나무나 버섯 재배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천연 재료이다. 곤충 농업은 겨울에 곤충들이 동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 말고는 농약조차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산업이다.

네덜란드 등 유럽국들과 미국에서는 곤충의 식용화를 위해 공공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앞으로 더 악화할 것으로만 전망되는 곡물사료와 물 부족 현상,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배출로 인해 축산업은 점점 더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 돼가고 있다. 곤충식은 육식을 대신해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기에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곤충식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 측면에서 육식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사료가 거의 15kg이 필요한데 곤충 1kg을 생산하는 데는 먹이가 1kg만 있어도 충분해요.”

▲ 장수풍뎅이 애벌레. ⓒ 방글아

곤충은 애완용이나 식용 말고도 식물의 화분을 매개하고 유해곤충의 천적으로 활용하는 등 쓰임새가 아주 넓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처럼 인기가 많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애완 곤충 외에도 귀뚜라미나 거저리처럼 파충류나 조류의 사료로 쓸 수 있는 곤충도 많다. 그는 밀기울이나 보릿가루, 물 조금만 있다면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것이 곤충 농사라고 설명했다. 애완용으로도 인기 있는 귀뚜라미는 위 재료에 더해 야채와 신문지만 있으면 된다. 노약자나 종잣돈이 없는 청년들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기존농장들이 확보하고 있는 거래처를 뚫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든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잖아요? 곤충도 마찬가지예요. 고놈들 덕분에 내가 먹고 사니 정성껏 돌볼 수밖에 없어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죠.”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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