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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단 황토 바른 생태건축…집이 숨쉬네
[나는 농부다] ‘볏짚주택’에 빠진 귀촌인들
2013년 06월 11일 (화) 20:40:47 이슬비 진희정 기자 donawhale24@naver.com
   
▲ 전남 무안으로 귀촌한 김재갑·차승경씨 부부가 자신들이 지은 볏짚주택 앞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대용
 
볏짚이 없는 우리 민족의 생활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조상들은 의식주를 벼와 볏짚으로 거의 다 해결했다. 이엉으로 지붕을 덮고, 멍석으로 자리를 깔고, 짚신으로 길을 가고, 도롱이로 비를 피했다. 또 섬이나 가마니로 곡식을 저장하고, 새끼줄로 온갖 농기구를 만들었다. 아이를 낳으면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쳤고, 짚으로 사람 모양의 제웅을 만들어 액막이를 했다. 그래도 남으면 소여물이나 땔감으로 요긴한 게 바로 짚이었다. 
 
그런 짚의 문화는 이제 짚풀박물관이나 민속촌에 가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지푸라기 신세’를 뒤집기라도 하듯, 짚이 다시 각광을 받는 데가 있다. 볏짚과 황토를 주재료로 하는 ‘스트로베일하우스’, 곧 ‘볏짚주택’으로 짚의 용도가 부활하고 있다.
 
지난 겨울 전남 무안군 일로읍 죽산리로 귀촌해 300㎡ 정도 되는 텃밭을 가꾸며 늦깎이 농부가 된 김재갑(46)·차승경(44)씨 부부는 짚을 활용해 새집을 지었다. 안팎 한 겹씩 세운 목재골조 사이에 콘크리트나 벽돌 대신 볏짚을 다져 넣고 황토로 미장을 한다. 
 
“시내 아파트에 살 때는 딸아이 두통이 심해 자주 산책을 하면서 바깥바람을 쐬곤 했어요. 지금은 두통도 잦아들고 아토피 앓던 것도 나았어요.”
 
차씨 부부는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원래 흙집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아파트처럼 중앙난방을 할 수도 없는 단독주택인데다 집터가 볕이 잘 들지 않는 서향인 점이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공사를 며칠 앞두고 단열에 탁월한 볏짚과 왕겨숯이 들어가는 볏짚주택으로 공법을 바꿨다. 농가 두 채를 헐고 지난해 9월부터 짓기 시작한 아담한 이층집이 석 달 만에 완공됐다. 한차례 겨울을 나면서 볏짚주택이 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으로 불리는지 실감했다고 차씨는 말한다.
 
“쓰기 나름이겠지만 28평 정도 되는 저희 집 규모를 기준으로 봤을 때 일반주택의 겨우내 난방비가 300만원 정도 들어간다면 우리는 100만원도 채 안 들었어요.”
 
   
▲ 김씨 부부는 집 앞 텃밭에서 농작물을 손수 키우고 있다. ⓒ 이대용
 
아홉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용한 시골마을이 지난 가을에는 ‘고생스럽게’ 집 짓는 귀촌 부부를 구경하려는 주민들로 붐비더니, 농사철이 시작되자 서툰 농사꾼을 가르치느라 오가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목포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김씨는 “요즘 부동산 거래가 뜸하지만 시골 택지는 없어서 중개를 못 한다”면서도 전원주택을 지을 때 유의할 점은 이웃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파트 싫어서 나온 사람들이 전원주택 짓는답시고 담장 높게 쌓으면 실패하는 겁니다. 성공하는 귀촌이 되려면 마을 공동체에 스며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좋은 집’만 보고 오면 거의 다 떠납니다. 시골 전원주택이 비어 있는 곳이 많은 이유입니다.”
 
차씨도 남편 말을 거들었다.
 
“아파트에 오래 살았지만 앞집만 인사하고, 위아래층은 층간 소음 탓에 ‘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기서는 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치다 한마디씩 건네지요. 한번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았더니 거름 줄 때가 지났는데 뭐하냐고 질책하시더라고요. 씨앗도 나눠주고 꽃 모종도 파다 주시는 분들이에요.”
 
 

 
▲ 강화의 박용환씨가 볏짚주택의 목재 골조를 세우고, 그 안에 볏짚을 다져 넣은 뒤, 다시 2층 골조를 올려 세우는 모습. ⓒ 박용환
볏짚주택을 짓는 과정을 기록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시작한 차씨 부부의 블로그에는 요즘 초보 농부의 텃밭 가꾸는 얘기가 가득하다. 집을 지을 때도 실은 동네 어른들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집 지을 때 우뭇가사리 끓인 물에 볏짚 찌꺼기, 황토, 모래 등을 섞어서 미장을 했는데, 어르신들이 어릴 적 벽 칠 때에 그렇게 하는 걸 보셨다더라고요. 잘게 썬 짚이 흙 속에서 벽이 갈라지지 않게 힘을 보태는 거지요.”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에 사는 박용환(61)씨는 6년 전 흙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답게 근처 농가에서 짚단을 손수 챙겨 흙집을 지었다. 보름 전에 완공해 입주한 집이지만, 집 안에서는 새집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인데 콘크리트 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많이 아파요. 짚과 흙으로 지은 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덜 아프고 몸도 한결 개운합니다. 옛날에 짚으로 엮은 가마니가 통풍이 잘돼 곡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집이 숨을 쉬어서 그런 거 같아요.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냄새 안 배는 게 제일이죠.”
 
강화도의 한 대학 직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박씨는 13년 가까이 거주한 강화도에 시공사 없이 직접 지은 생태주택이 두 채 있을 정도로 친환경 주택 짓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07년 지은 황토집이 상대적으로 단열에 약해 고심하다가 볏짚주택을 지을 결심을 하고, 관련 워크숍에서 교육을 받은 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스트로베일하우스 건축연구회’에는 ‘지우할배’로 활동하는 박씨의 집 짓기 기록이 상세히 올라와 있다. 그가 올해 초 볏짚주택을 짓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묘사한 글에는 회원들의 질문이 댓글로 여럿 달렸고, ‘지우할배’는 전문적인 내용도 쉽고 친절하게 답했다.
 
흙미장이 까다로워 볏짚주택은 콘크리트 집보다 짓는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콘크리트는 며칠 만에 건조돼 금방 입주가 가능하지만 흙은 최소 한 달 정도 자연바람에 건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 강화의 박용환씨는 자신의 손으로 볏짚주택과 황토집을 한 채씩 지었다. ⓒ 진희정
 
흙미장의 중요성은 차씨 부부도 강조했다. 차씨는 “생태건축에서 많이들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바닥 흙미장이다. 콘크리트 미장만 하던 사람은 흙의 성질을 잘 모르니까 집주인이랑 호흡이 잘 안 맞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수고스러움에도 이들이 볏짚주택과 같은 생태건축을 추구하는 것은 짚과 흙의 성질 때문이다. ‘볏짚에 흙미장이 물에 약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재갑씨는 “황토는 비에 젖으면 수막이 생겨서 방수가 된다. 자연적으로 습도가 조절되기 때문에 비 올 때는 집안이 오히려 보송보송해진다”고 말했다. 차씨는 “배를 깎아놓은 채 사흘간 집을 비운 적이 있는데 배가 마르지 않았다”며 ‘숨 쉬는 집’의 신비로움을 예찬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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