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부다] 진안 원연장마을 신애숙 이장

마이산과 부귀산이 내려다보듯 먼발치에 둘러서 있고 작은 하천이 흐르는 조용한 원연장마을. 전북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26번 국도 초입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시골이었던 원연장마을은 이제 해마다 5월이면 뒷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꽃잔디 축제’로 관광객 홍역을 치른다.

▲ 신애숙 이장이 마을 들머리에 조성한 연밭 앞에서 마을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마을 부녀회에서는 이곳에서 딴 연잎으로 밥을 지어 판매하고, 연꽃도 따로 판다. ⓒ 안형준

오늘의 원연장을 이끈 산증인인 신애숙(51) 이장은 이 마을에서 ‘꽃다운 청춘’이다.

“주민의 절대다수가 70~80대 어르신이에요. 제가 우리 마을의 유일한 50대고 막내지요.”

특유의 털털한 웃음만큼이나 신씨의 말투와 행동은 시원시원하다. 웬만한 청년보다도 더 강한 에너지로 마을 일을 진두지휘한다. 그의 추진력은 진안군에서도 유명하다.

진안군에서 시작한 ‘마을만들기’ 사업이 원연장마을 변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더디 가도 제대로 간다’는 진안의 마을만들기는 행정이 이끌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역량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단기 성과를 내기보다는 주민들의 신뢰를 확보해 점진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변화를 도모한다. 말과 뜻은 좋아 보이지만, 피해의식 많고 정부 지원에 익숙한 시골 어르신들이 감당하기는 참 쉽지 않은 게 마을만들기이다. 5년 전 이장이 된 신씨가 원연장 마을만들기의 깃발을 들었다.

“그때 군에서 실시하는 마을만들기 교육을 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다른 마을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알 수 있어 공부가 됐죠.”

원연장마을은 2008년 ‘그린 빌리지’, 2009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2010년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을 거쳐 조금씩 변화해나갔다. 꽃잔디 동산을 조성하고 경관을 다듬어 축제를 개최했고, 주민들이 다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절임배추 공동작업장을 지어 마을수익사업을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변화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역량도 함께 성장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주민들이 언젠가부터 마을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마을 경제에 보탬이 되는 소득사업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왔다. 원연장마을은 어느새 진안군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올봄 5회를 맞은 ‘꽃잔디 축제’에는 1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해마다 관광객이 늘어 어느새 진안군의 명물이 됐다. 축제 기간에는 여러 가지 소득사업도 활발하다. 지난해에는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나물만으로도 4천만원이 넘는 판매수입을 올렸다. 산나물도 절임배추사업처럼 공동으로 판매하는 투명한 유통체계를 구축했다. 마을을 찾는 단체손님들에게 판매하는 연잎밥과 나물정식 등으로도 1천만원에 이르는 수입을 올렸다. 다목적 체험관, 귀농인의 집 등 마을 공공시설을 이용한 숙박사업, 각종 체험활동 등을 통한 수입도 짭짤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기대한다. 이미 상반기에만 4800만원의 수입이 마을 계좌에 쌓였다. 이렇게 벌어들인 공동판매 수입은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지고, 일부는 마을기금으로 적립된다.

▲ 어르신들이 쓰레기장을 마을 박물관으로 산뜻하게 바꿔놓은 모습. ⓒ 최현석

원연장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모든 마을 사업과 행사를 어르신들 스스로 해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초기 아이디어도, 전체 기획과 진행도 모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몫이다. 그렇게 돌탑을 만들었고 꽃잔디와 연꽃으로 마을을 예쁘게 단장했다. 함께 하는 마을 일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는다. 어르신들의 의욕은 쓰레기장을 리모델링해 작은 마을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키기에 이르렀다. 박물관에는 집집마다 가져다 놓은 오랜 원연장 마을살이의 편린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주섬주섬 물건을 가져다 놓기 때문에, 마을 박물관의 전시 공간은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

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다. 그중에도, 신 이장의 등장을 어르신들이 한사코 반대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신 이장은 갓 스물에 시집와 30년 넘게 원연장마을에서 살았다. 하지만 완고한 시골 어르신들은 여성 이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자가 무슨 이장이냐고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하지만 굽히지 않고 어르신들을 설득했어요. 마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꼭 하고 싶었거든요. 주민들과 다 함께 어우러져 지내고 싶었어요.”

신씨가 이장이 되고 처음 1년간은 틈날 때마다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다.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았고, 어르신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또 경청했다. 결국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어르신들 정서에 눈높이를 맞추고 정성을 다한 덕분이었다. 그러면서, 마을사업의 성과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고, 주민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면서 마을만들기의 자기동력을 낳았다.

“어르신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마을만들기의 처음이자 끝이에요.”

원연장마을 사무장 최현석(38)씨의 말이다.

“이장님은 여장부 스타일이지만 독재적이지 않은 ‘민주적 여장부’예요. 남다른 추진력 때문에 외부에서는 무섭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수렴하세요. 어르신들도 마을 일에 자발적으로 잘 따르시고요.”

원연장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모임을 한다. 마을 일을 하다 보면 반대 목소리가 없을 수 없다. 신 이장은 그럴 때마다 마을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한다.

“허리 굽은 어르신들도 마을행사에 나와서 역할을 다하세요. 어르신들이 앞에서 끌어가고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마을 운영에 그대로 반영되죠. 시골 주민 대다수가 70대 이상인데 어르신들을 배제하고서는 제대로 된 마을만들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위축감을 느끼거나 박탈감을 느끼게 해서는, 될 일도 안됩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이 전국 농촌에 투입됐지만, 마을의 뿌리 격인 어르신들의 활력이 넘치는 마을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 이름난 농촌 마을을 찾아봐도 어르신들은 뒷전에 처져 있기 일쑤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젊은 귀농인들이 끌어가거나 행정에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농촌 현실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진안 산골 원연장의 마을만들기에서 우리 농촌 공동체가 가야 할 미래를 본다. 청년만이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도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음을 확인한다.

“어르신들과 손잡고 마음 맞춰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을에서 계속 찾아나가겠습니다.”

‘어르신 마을만들기’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신 이장의 소박하지만 한결같은 소망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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