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봉쇄 20일째 노사평행선...각계 ‘해결촉구’ 목소리

<한국일보>가 사주의 경영비리와 인사전횡에 저항하는 기자들의 편집국 출입을 막고 간부급 10여명으로 신문을 파행제작한 지 4일로 20일째를 맞은 가운데 노사협상은 표류하고 사측이 경력기자 공채에 나서는 등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거리로 나온 기자들은 청와대, 국회, 광화문광장 등에서 1인 시위 등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고 있으며 정치권과 사회 각계에서 ‘비리 사주 처벌’과 ‘편집국 봉쇄 해제’ 등을 촉구하는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사측, 문자로 복귀종용 후 경력기자 모집 공고

<한국일보>는 지난 3일자 1면 사고(社告)를 통해 ‘오는 15일까지 취재·편집·디자인 부문 경력기자 00명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는 편집국 봉쇄 해제가 아닌 대체인력 채용을 통해 신문제작을 정상화 하겠다는 뜻으로, 사측이 노조와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없음을 내보인 셈이다.

▲ 한국일보 사측은 7월 3일자 <한국일보> 1면에 '경력기자를 모집한다'는 사고를 냈다. ⓒ <한국일보> 갈무리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손현성(사회부) 기자는 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미 기자가 있는데 일을 못하게 해 놓고 경력기자를 새로 뽑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번에 경력기자 지원자가 있다면 대의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며 채용된다 하더라도 우리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문화방송(MBC)이 장기 파업을 했을 때도 시용기자 등 대체인력을 뽑으면서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한국일보 박진열 사장은 지난 2일 기자들에게 복귀를 종용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7월 5일까지 참여하지 않으면 경력사원을 뽑아 신문제작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한국일보> 사측은 또 편집국 봉쇄 이후의 기간에 대해 기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등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편집국을 봉쇄한 지난 15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기자들이 무단결근한 것으로 처리했고 6월분 임금을 2/3만 지급했다. 손 기자는 “기자들은 매일 정상출근했지만 용역업체 직원들이 편집국을 봉쇄해 일을 못한 것이므로 임금체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사측의 임금체불에 대해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노조가 장재구 회장의 200억원 규모 배임 혐의를 고발한 것과 관련,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8일 이종승 전 한국일보 부회장(현 뉴시스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일보 사장 및 부회장을 지낸 이씨는 서울 중학동  사옥의 우선매수청구권 포기 등 장 회장의 배임 의혹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이 전 부회장에 이어 한국일보 관계자 2명이 추가 소환되면서 장 회장의 배임혐의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문재인 등 정치인들 격려 방문

한편 한국일보 사태에 대해 정부와 국회, 정당 차원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 회장 검찰 수사에 대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간사들은 “청문회를 비롯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국일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배재정 의원을 포함한 의원 37명이 지난 2일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의 즉각 사퇴 △편집국 폐쇄조치 철회 △불법 부당 인사조치 철회 △한국일보 사측의 불법 직장폐쇄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용노동부 조사 △검찰의 장재구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 등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인 배 의원은 “한국일보 사태는 언론을 사유화하려는 사주와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려는 기자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으로,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한국 신문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에서도 남경필, 정우택 의원 등이 당 최고중진연석회의발언을 통해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의 불법성을 비판했다. 

▲ 문재인, 안철수, 이재오 의원, 심상정 대표 등이 한국일보를 찾아 기자들을 격려하고 지지 메시지를 전했다. ⓒ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일보가 입주한 서울 남대문로 2가 한진빌딩에서  농성중인 기자들을 방문, “언론의 자유,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 지지와 존경을 보낸다”고 격려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기자들을 찾았다. 안 의원은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서 편집권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훼손되는데 위기감을 갖고 있다”면서 “이 사태를 잘 극복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정론지로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국민의 힘으로 회복된 언론의 자유를 사주가 경영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유린하고 있는 게 한국일보 사태의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민주당 배재정․이인영·홍종학 의원,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한국일보 기자들을 격려 방문했다. 

학계·언론계·노동계 등에서도 한국일보 사측 규탄

사회 각계에서도 한국일보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정재 교수협의회장과 박종석 노조위원장, 홍성민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장, 김형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2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한국일보 사측이 하루빨리 편집국 폐쇄조치를 풀고 신문을 정상화하라고 촉구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명수연(산림환경학4) 사무국장은 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일보는 문제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사태이자,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 누구나 공감하는 사안”이라며 “앞으로 추이를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가 받고 있는 ‘한국일보 정상화와 장재구 회장 검찰수사 탄원’ 서명에는 지난 3일 기준으로 전국의 기자 1299명을 포함한 누적 서명자수 3743명이 참여했다. 경향신문, 한국방송(KBS) 등 2012년에 입사한 17개 언론사 ‘막내’ 기자 125명도 지난달 28일 공동성명을 내고, “결연한 마음으로 한국일보 선배기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지난달 26일에는 한국일보 전․현직 직원들과 소설가 조정래, 시인 신경림,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등 외부인사 110명이 참여한 ‘한국일보 바로세우기 위원회’(위원장 이준희)가 출범했다. 이밖에도 지난 2일 한국작가회의가 성명을 내 사측의 편집국 봉쇄 해제를 촉구했으며, 지난달 25일과 26일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한변호사협회,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에서 한국일보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경없는 기자회, “한국일보 사태에 경악”

국제사회도 한국일보 사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 언론인인권 감시기구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지난달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일보가 불법적인 편집국 폐쇄로 기자들의 보도할 권리를 끔찍하게 침해한 데 경악한다”고 밝혔다. 국제기자연맹(IFJ)도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180명의 기자들을 편집국에서 쫓아낸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 언론 사상 유례없는 사태를 당한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연대를 표시하며, 장 회장이 거취를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 한국일보 기자들이 '장재구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울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한편 서화숙 선임기자를 비롯한 한국일보 기자들은 손팻말 등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지난달 20일부터 15명씩 돌아가면서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국회, 청와대, 광화문광장 등 곳곳으로 흩어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 비대위 부위원장 최진주 기자는 “편집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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