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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한국일보 기자들, 거리투쟁
배임 고발된 장재구 회장이 편집국 봉쇄, 10여명이 신문제작
2013년 06월 18일 (화) 00:42:20 김윤정 양승희 이승현 기자 vivaseunghyun@gmail.com

17일 오전 9시쯤, 서울 남대문로 2가 한진빌딩 신관1층 로비에 <한국일보>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지난 15일 회사 측의 일방적인 봉쇄조치로 이 건물 15층에 있는 편집국으로 출근할 수 없게 된 이들은 17일자로 발행된 <한국일보>를 펴들고 ‘신문이라고 할 수 없는 찌라시 수준’이라고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 정상원 노조위원장이 17일자 '짝퉁 한국일보'에 대해 말하자 노조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듣고 있다. ⓒ 김윤정
이날 발행된 <한국일보>는 사측이 노조의 반발 속에 임명을 강행한 편집국 간부 7명과 평기자 7명 등 14명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전체 기자는 약 200명이다. 정상원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자매지 <서울경제> 빌딩에 임시 편집실을 차려놓고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퇴사한 편집인턴들까지 불러들였다”고 전했다. 논설위원들이 사설 집필을 거부하고 일부 외부 필진도 칼럼을 중단한 상황에서 사측은 정치부 차장에게 사설을 쓰게 하고 <연합뉴스>와 <서울경제> 기사를 전재하는 등 파행적 방법으로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었다고 노조는 비판했다. 

   
▲ 한국일보 노조는 사측이 만든 '짝퉁 신문'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문을 배포했다. ⓒ 김윤정

‘파업도 안 했는데 불법 직장폐쇄’ 경찰 출동도

오전 9시 30분쯤, 50여명의 기자들은 “짝퉁 한국일보 제작 시도, 즉각 중단하라”, “한국일보 파탄주범 장재구는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편집국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편집국이 있는 15층은 엘리베이터가 멈추지도 않았고, 다른 층에서 비상계단을 통해 진입하려 했으나 출입구가 잠긴 채 문고리마저 제거돼 있어 실패했다.

   
▲ 노측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경찰은 '노사간 갈등'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 ⓒ 김윤정
오전 10시 30분쯤, “불법 직장폐쇄로 출근을 저지당하고 있다”는 노조의 신고로 서울 남대문서에서 경찰 2명이 출동했다. 그러나 경찰은 “노사 간의 분쟁이므로 나서기 어렵다”며 “노사가 협의해서 풀되 경찰은 묵과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지거나 현행범이 발생하면 개입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노조원은 “지금은 쟁의기간도 아니고, 멀쩡히 일하던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쫓겨난 상황”이라며 “현재 편집국은 회사 직원이 아니라 용역에 의해 불법 점거된 상태로 이미 범죄현장”이라고 반발했다. 기자들의 개인 사물을 용역들이 불법 점거하고 있어 ‘절도’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경찰이 노조 대표 2명과 15층 입구까지 갔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무 조치도 못하고 철수했다.

언론노조와 함께 대국민 호소, 연대투쟁 나서

오전 11시, 130여 명으로 늘어난 <한국일보> 기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먼저 한진빌딩 앞에서 10여 명의 언론노동조합 및 시민단체관계자들과 함께 한국일보 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은 “기자가 편집국에서 무력으로 쫓겨난 것은 1975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주언론실천선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주의 사익을 위해 언론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편집국에서 언론사의 피라고 할 수 있는 기자들을 내쫓았다”고 질타했다. 강 위원장은 “언론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일을 정의롭게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 언론노조와 한국일보 기자 등은 한진빌딩 1층 앞에 모여 장재구 회장의 퇴진을 외쳤다. ⓒ 김윤정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는 “장재구 회장 일당이 용역깡패를 동원해 편집국을 점령하고 신문을 조작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폭거”라며, “언론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국일보>노조와 전국언론노조, 민언련 등은 장재구 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고 신문제작이 정상화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이에 앞서 신문사의 토요휴무일인 지난 15일 오후 6시, 장 회장 등 경영진과 일부 편집국 간부들은 외부 용역 40여명을 동원해 당직기자들을 밖으로 내쫓고 편집국을 봉쇄했다. 이튿날인 16일, 월요일자 신문제작을 위해 출근하려던 기자들은 편집국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기사를 온라인으로 작성하고 송고하는 ‘기사집배신시스템’ 접근 권한도 박탈당했다.

사측은 ‘회사에서 임명한 간부들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근로제공확약서에 서명을 해야 편집국 출입과 기사집배신시스템 접근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으나 기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사측은 평소 32면에서 24면으로 축소 발행한 17일자 신문에서 “편집국 폐쇄는 정당하며, 그동안 일부 전직 간부와 노조원들이 점거해 오던 편집국을 되찾고 언론사 본연의 임무인 신문 제작을 바로잡았다”는 내용의 사고를 1면에 게재했다. 

사주의 200억 배임 혐의와 인사 전횡이 발단

이번 <한국일보> 사태는 노조가 장재구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 4월 29일 검찰에 고발하면서 촉발됐다. 지난 2002년 경영 악화로 언론사 중 처음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대상이 된 <한국일보>는 2006년 장 회장이 사재 200억 원 증자와 서울 중학동의 사옥 매각을 약속하면서 워크아웃 대상에서 벗어났다. 장 회장측은 당시 중학동 사옥을 한일건설에 매각하면서 해당 부지에 신축될 건물을 시가보다 50% 이상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2011년 장 회장이 개인 재산으로 내야 할 증자금액 200억을 한일건설로부터 빌렸고, 이를 회사의 자산인 ‘우선매수청구권’으로 갚은 것이 알려지면서 노조로부터 고발을 당하게 됐다. 노조는 장 회장이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회사 자산을 횡령한 혐의가 더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일보>의 제작여건이 극도로 나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회장측은 고발에 맞서 지난 5월 1일자로 노조의 지지를 받는 이영성 편집국장과 부장단을 보직 해임하고 하종오 편집국장을 새로 임명했다. 편집국 기자들은 국장임명 동의 표결에서 재적인원 193명 중 85.6% 투표와 98.8% 반대로 새로운 인사에 거부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러나 사측은 인사를 강행했고, 지난 5월 15일에는 사측이 편집국과 상의 없이 1면 기사를 무단으로 교체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이후 노조는 한진빌딩 6층 장 회장 집무실 앞에서 매일 농성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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