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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 우리
[씨네토크] 후쿠시마 후 일본인의 이상한 침묵, ‘온화한 일상’
2013년 07월 01일 (월) 10:34:14 유선희 기자 tjsgml881101@naver.com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사고 직후 ‘방사능비’ 공포에 떨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일본산인지 따지지 않고 생선을 사먹고 주저 없이 일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어떨까. 우치다 노부테루 감독은 3·11 대지진 후 일본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한 침묵’과 이로 인한 갈등을 영화 <온화한 일상>에서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올해 10돌을 맞이한 서울 환경영화제(5월 9일~16일)에서도 관객들과 만났다.

   
▲ 서울환경영화제 <온화한 일상>포스터. ⓒ GFFIS

영화는 사에코와 유카코의 불안한 시선을 따라간다. 후쿠시마에서 꽤 떨어지긴 했지만 사고의 영향권에 있는 도쿄에서 이웃해 사는 두 여인은 나름의 방법으로 가족의 안전에 심혈을 기울인다. 사에코는 방사능 오염 걱정 때문에 유치원생인 딸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건물 밖에서 놀지 말라고 당부한다. 유카코는 남편에게 방사능 걱정이 없는 곳으로 이사하자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하지만 이 둘과 달리 주변 상황은 이상하리만큼 ‘온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장 아이들의 ‘먹거리 안전’을 걱정하는 게 당연한데, 이웃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마트에서는 수입 생선을 밀어내고 보란 듯이 일본산 생선만 판매한다. 유치원에서는 무방비 상태인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뛰어 놀게 한다. 교사들은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에코를 향해 다른 학부모들은 ‘민폐녀(迷惑女·메와쿠온나)’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기준과 논리를 들이대며 ‘안전’을 말하고, 정부 발표를 왜 못 믿느냐고 다그친다. 유카코는 혼잣말로 묻는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안전이라는 게 뭐지?

<온화한 일상>은 과학이야기가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얼마만큼의 오염 피해가 발생했는지 숫자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원전사고로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 앞에서도 이에 무관심하거나 애써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사고 후 바닷물과 토양 오염이 속속 확인되고, 후쿠시마산 채소에서 기준치를 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그 지역 아이들의 갑상선암 발병 가능성이 몇 배로 높아졌다는 등의 뉴스가 전 세계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정작 일본인들은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는 구호 속에 평화로운 일상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돌리고 침묵하면 방사능 오염이 저절로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듯. 

   
▲ 영화 <온화한 일상>의 한 장면. ⓒ GFFIS

원전 10여기 늘리는 한국, 우리는 안전?

지난 5월 환경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주연배우 스기노 키키(29·사에코 역)씨는 “지금도 일본에서는 후쿠시마산 생선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며 “어려울 때 더욱 힘을 합쳐야한다며 후쿠시마산 식재료로 급식을 하겠다는 지방정부 방침 때문에 논란이 빚어진 일도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은 한때 ‘원전 제로’ 정책으로 가닥을 잡는 듯했다. 총 54기에 이르는 원전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안전성을 점검하는 한편 에너지절약과 신재생에너지투자 등을 통해 단계적인 ‘탈원전’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정권을 잡은 보수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는 원전 재가동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관계와 재계, 학계, 언론 등에 포진한 ‘원자력 마피아’가 다시 득세하면서 ‘평화와 안전을 위한 탈원전’을 외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달 탈핵 강연을 위해 광주를 방문한 일본 소설가 야마구치 이즈미(58)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심각한 사고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일본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언론이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영화가 남의 나라 얘기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역시 ‘원전 대국’을 지향하면서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23기인 원전을 앞으로 10여기 더 지어 2010년 기준 발전량의 31.3%인 원전 비중을 2030년 59%까지 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그런데 최근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에 이어 신고리 3·4호기에 이르기까지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불량부품을 조달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원전의 안전성을 의심케 하는 비리가 속속 폭로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더 오래 가동시키려고 하고, ‘우리 원전은 절대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초대형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일본 원전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일본 정부 역시 ‘우리는 절대 안전하다’고 큰소리 쳤다. ‘당신들이 말하는 안전이라는 건 뭔가’하는 유카코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영화 <온화한 일상>의 디지털비디오(DVD) 국내 시판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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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단비뉴스 전 취재부장, 환경팀
진실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어느 후미진 곳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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