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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존재하는 이유
[드라마리뷰] KBS ‘내 낡은 지갑 속의 기억’
2013년 06월 24일 (월) 00:56:54 김성숙 기자 sungsook@danbinews.com

   
▲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 KBS 화면 갈무리

보라색 봉투가 배달됐다. 보낸 사람의 주소는 없다. 봉투 안에는 낡은 지갑 하나만 달랑 들어있다. 서둘러 지갑을 뒤져보니 낯익은 사진이 담긴 운전면허증이 나온다. 지갑 속 작은 칸들도 샅샅이 살핀다. 깊숙이 숨겨져 있는 사진 한 장,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이 활짝 웃고 있다. 영재(류수영 분)는 수아(남보라 분)에게 말한다. “모르는 여자야, 너처럼”

기억을 잃는 것보다 두려운 것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영재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름, 나이, 미혼, 고아 등 ‘자신’에 관한 정보는 찾아냈지만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 바로 나와 연결된 ‘타인’에 관한 이야기다. 사는 곳도, 전화번호도 그대로 둔 채 ‘타인’을 기다리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2년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영재를 찾지 않는다.

영재는 두렵다. 기억을 잃어서가 아니다.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디 모습을 마주했을 때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영재를 괴롭힌다. 영재는 기억을 애써 살리는 대신 영원히 지워버리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잘못된 삶을 살았다면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 영재는 수아에게 기억을 찾지 않는 이유를 고백한다. ⓒ KBS 화면 갈무리

바로 그때 자신과 관련된 ‘타인’의 흔적이 담긴 지갑이 배달돼 온다. 마치 내가 당신을 찾을 수 없으니 당신이 나를 찾아달라는 것처럼.

영재는 망설인다. 되살리지 않기로 한 기억을 다시 찾아 나서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수아가 불편하다. ‘때로는 그냥 묻어 둬야 할 기억’이 있다고 믿으니까.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한번 풀리기 시작한 실타래는 언제 얽혀있었느냐는 듯 술술 풀어진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책 틈에서 과거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든다. 지갑 속 사진을 추적하다 보니 ‘모르는 여자’와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의 조각은 결국 영재를 가장 잊고 싶었던 순간으로 데려간다. 영재는 깨닫는다. 잊어버린 그 순간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지 않으면 자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 영재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 KBS 화면 갈무리

어떤 기억은 남고 어떤 기억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의 완충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충지대가 무너질 만큼 거대한 고통을 마주 했을 때 찾아오는 병이 기억상실증일지도 모른다. ‘낡은 지갑 속의 기억’은 완충지대가 무너졌다면 다시 세우라고 말한다. 기억은 과거일 뿐이고 이를 넘어서야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 수 있다며 말이다.

‘스페셜’은 아직 부족하다

한국방송(KBS)는 일요일 밤 11시 45분에 편성됐던 <KBS 드라마 스페셜>을 수요일 밤 11시 10분의 황금 시간대로 옮기는 모험을 단행했다. 타 방송사에서 단편드라마를 찾아보기 어려운 터라 더욱 의미 있는 편성이다. 그러나 지난 6월 12일 방송된 ‘내 낡은 지갑 속의 기억’은 3.0%(AGB 닐슨 미디어 리서치,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낮은 시청률에서 짐작할 수 있듯 <KBS 드라마 스페셜>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스타>와 에스비에스(SBS) <짝>의 시청자들을 끌어 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제목처럼 ‘특별한’ 드라마로 안방을 계속 찾아간다면 시청자의 마음도 움직이지 않을까? 진부한 설정이 반복되는 기존 드라마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별함을 갖춘다면 말이다. 이제 막 한 발자국을 뗀 <KBS 드라마 스페셜>이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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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기자]
단비뉴스 전 영상부장
누군가의 계기가 되는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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