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청초 기자

▲ 이청초 기자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은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는 첫사랑을 추억하고, 어떤 이는 90년대 초반의 패션과 노래를 떠올렸다. <건축학개론>은 총체적으로 '기억'에 대한 영화였다. 주목할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건축'과 그것이 있던 '장소'가 주는 의미다.

<건축학개론> 속 과거 회상 장면의 주 배경은 서울 성북구 정릉이다. 정릉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소다. 예스런 집과 언덕길, 골목, 구불구불한 길로 이뤄진 정릉은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공유한 90년대 감성을 다시금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 당시 그 장소는 작고 초라한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꺼운 추억의 지층이란 원래 일상의 편린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 관객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아직 다른 지역보다 '발전'이 덜 된 덕분에 영화 배경으로 선정될 수 있었지만 지금 정릉도 도시개발사업지구에 속해 재건축과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정릉 근처 미아동은 뉴타운개발지구로 선정돼 이미 개발중이다. 이 밖에도 현재 서울시에는 35곳의 뉴타운과 247곳의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도시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의 시각이 문화사회학자 미셀 드 세르토가 말한 '개념도시'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개념도시는 '최첨단 고층빌딩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며 하나의 추상적이고 단일한 형상으로 각인된 도시'를 가리킨다. 이런 도시는 효율과 실용의 논리로 굴러간다. 일상과 공간의 파시즘이 등장하는 것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넓고 곧게 뻗은 도로는 그 상징이다. 주름지고 접혀있던 공간이 곧게 펴지는 것을 개발 또는 발전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더 나아가 "본래 가치구분 없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구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모습이 점차 같아진다면 누구와 같아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어떤 중심으로 삶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중심에는 강자가 지배하는 사이비 시장이 있다. 사이비 시장의 강자는 바로 건설족, 대자본, 정치인, 관료, 학자, 언론, 부동산소유자들이다.

<건축학개론>에도 '사이비 시장'의 면모가 엿보인다. 영화는 현재까지 그 모습을 하고 있는 정릉을 90년대 유물처럼 만들어버렸다. 낙후된 모습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추억으로 넘겨버린 것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어진 동네는 재개발을 해서 고층 아파트나 상가로 변모해야 할 것만 같다. 개발주의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게 측면 지원한다.

개발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각 없이는 우리는 우리를 같게 만들려는 권력과 자본의 의도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추억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는 새롭고 크고 빠른 것에 대한 욕망을 다시 꺼낸다. 고층빌딩 영화관에서 내려와 직선으로 뻗은 길을 통해 집으로 간다. 오래되고 작고 느린 것은 영화 또는 추억 속에 간직한 채 가끔 빛 바랜 사진첩처럼 꺼내볼 뿐이다.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장소에는 그곳을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과거부터 두껍게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구축한 공간인 만큼 지층에는 하나의 색깔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도시가 아닌 '보행도시'가 필요한 이유다. 개인들의 다양한 행동을 담을 수 있도록 걷는 자의 시선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뉴타운 실태조사와 주민합의에 따라 사업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요즘 서울시 모습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이것이 개발주의 이데올로기를 성찰하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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