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나 홀로 여행기 '걸어서 세계 속으로'
[TV를 보니:5.27~6.2]

“흩날리는 꽃잎, 꽃 치장을 한 소, 이게 뭔가 했더니 마침 내가 도착한 날이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행사를 만난 모양이다. 카메라는 가던 길을 멈추고 축제 안으로 들어간다. 대본을 읽는 성우의 목소리도 들떠 있다. 시청자인 나도 축제 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지역 사람들과 여행객의 표정, 말씨가 바로 눈앞의 현실 같다.

▲ 성인 에피시오를 기리는 사르데냐 최대 축제. ⓒ KBS1 갈무리 화면

한국방송(KBS1)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고 나면 ‘저 곳에 가서 저 것을 꼭 봐야겠군’이 아니라 ‘저 곳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지를 상품소개 하듯 보여주지 않는다. 여행객들만 북적이는 관광 명소나 맛집이 아닌 그 곳 사람들이 모여 드는 장터나 일반 가정의 저녁식사로 우리를 이끈다. 여느 여행 가이드 책자와 다르고, 관광지 소개에 열을 올리는 다른 TV프로그램과도 많이 다르다. 토요일 오전 9시 40분이라는 시간대 치고는 시청률도 꾸준하다. 평균 6%대(AGB닐슨코리아 제공)를 넘나든다. 2005년 11월 5일 시작되었으니 여행 관련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든다.

'한 곳'에선 ‘한 가지’만 보여준다

이번 방송은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편. 성 에피시오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 수도 칼리마리가 첫 번째 여행지. 전통의상을 입은 참가자들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려지는 꽃잎. 축제를 뒤로 하고 향한 여행지는 넓은 바닷물의 호수마을 카브라스. 카메라는 수 백마리의 숭어가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 안에서 파닥파닥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곤 섬내륙 산간지역 누오로 마을을 찾는다. 사르데냐 전통 치즈를 만드는 양치기는 5년이나 숙성돼 뽀얗게 곰팡이가 핀 치즈를 자랑한다. 카메라는 목동들이 먹던 빵 카라자우를 화덕에 굽는 모습을 지켜본다.

▲ 바닷물 호수마을 카브라스에선 어부가 단순히 그물로만 숭어를 잡는다. ⓒ KBS1 갈무리 화면

해가 저물자 어느 가정집의 초대를 받아 새끼돼지 통구이 저녁 만찬에 끼어들어 본다. 손톱에 여러 색깔을 칠한 꼬마가 고기 한 조각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진다. 다음날엔 서부 해안도시 알게로를 찾아간다. 스페인 아로곤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사르데냐의 작은 바르셀로나라 불려질 정도로 카탈루냐 색깔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거리를 거닐다 들른 과일가게. 주인이 맛보라고 준 오렌지 하나를 깨물자 상큼한 지중해 햇살이 입안에서 부서진다 했다.

▲ 사르데냐 전통 요리인 프로에두를 요리할때면 모든 가족이 함께 한다. ⓒ KBS1 갈무리 화면

이렇듯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한 지역에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기 보단 한 가지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칼리마리에선 성 에피시오 축제, 카브라스에선 숭어잡이, 누오로에선 양젖으로 만든 치즈, 이렇게 말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각 지역의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그런데 이 ‘한 가지’를 무작위로 고르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을의 과거를 보여준 후 그 과거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모든 ‘한 가지’에는 그 곳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어 낯설지만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지역 사람들 삶의 속살을 들여다 보게 된다. 

1인 제작방식이 가진 매력과 함정

또한 화면과 내레이션, 인터뷰 장면 등의 어우러짐이 좋다. 이는 PD 1인이 기획, 촬영, 편집, 원고작성 등 제작 전 과정을 도맡는 이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다. 마지막 여행지 카를로포르테에서 수중촬영을 통해 보여준 참치 떼는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작PD가 2년 전 <수퍼피쉬>를 제작했던 PD였다. 헤엄치는 참치 떼를 가장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그는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다. 이번 경우처럼 앞으로도 담당 PD가 잘 알고 애정을 갖고 있는 지역과 소재를 다루길 바란다. 다른 PD라면 놓칠 만한 장소나 순간들을 잘 포착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색깔까지 입혀 시청자에게 보여주면 금상첨화 아닌가.

▲ 수천년동안 이어온 참치떼의 지중해 여정. ⓒ KBS1 갈무리 화면

하지만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1인 제작 방식은 해당 PD에 따라 프로그램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한계다. PD의 개성과 기호에 시청자는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문제 말이다. 숭어 잡는 마을에서는 숭어잡이 보다 주민들의 식생활이나 묵을만한 숙소는 있는지가 더 궁금할 수도 있다. 또한 PD마다 제작스타일과 역량의 차이가 있으므로 매 프로그램마다 편차가 생길 수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매 회마다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미 많은 고정팬이 생긴 PD가 있는 반면 ‘일반 여행자가 소형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한국방송(KBS1)의 <세상은 넓다>보다 못하다’는 질타를 받은 방송분도 있었다. 이는 해당 PD가 여행지에 대해 철저히 사전조사를 하고 컨셉트를 명확히 잡는다면 해소될 수 있다.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낯선 일상을 꿈꾸는 나 같은 여행자에겐 이 프로그램만큼 좋은 여행 가이드는 없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