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현장21", 포장 보다 내용물에 더 집중해야
[TV를 보니: 5.6~12]

시사다큐 프로그램은 기자가 만드는 게 있고 PD가 만드는 게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50분에 방송되는 에스비에스(SBS)의 <현장21>은 기자가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엔 한 보수 성향 인터넷사이트의 실체를 파헤쳐(‘일베를 아십니까?’, 3월 16일 방영)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PD가 만드는 문화방송(MBC)의 <PD수첩>이나 한국방송(KBS)의 <추적60분>에 비해 지명도나 영향력은 떨어지지만 이 프로그램에도 나름의 매력은 있다. 기자가 만드는 프로그램답지 않게 화려하고 세련된 영상이 바로 그것.

▲ 기자가 만드는 시사프로그램인 에스비에스(SBS) <현장 21>. ⓒ SBS 화면 갈무리

화려하고 세련된 영상편집 돋보여

지난 7일 방송은 이런 장점이 더욱 두드러진 한 회였다. 첫 꼭지인 ‘을(乙)의 반란, 유통 권력에 맞서다’편에서는 갑-을 계약관계를 설명할 때나 관련 영상이 부족할 땐 애니메이션 동원했고, 인터뷰 장면에서는 오른 편이나 왼 편 여백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즉석 스케치를 하거나 관련 화면을 띄워 이해를 도왔다. PD들이 만드는 다른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시도였다.

화면 구도나 조명 설정 등 촬영 할 때 이미 상당한 공력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한 장면도 쉽게 찍지 않은 듯 했다. 그래픽 화면도 상투적이지 않았다. 신선하고 역동적이게 보이려는 성의가 엿보였다. 시사 프로그램은 소재 중심이다 보니 영상이 자칫 지루하고 정적일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아기자기한 그림과 세련된 그래픽 자막으로 설명해주니 복잡한 내용도 훨씬 쉽게 다가왔다. 서점가의 사재기 현상을 다룬 '가짜 베스트셀러'편에서 수치 자료를 보여줄 때는 흔히 사용하는 도표나 그래프 대신 더하기 빼기 계산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당신에게 조용필이란?' 편에서는 음악과 감각적인 편집 기법이 어우러져 마치 드라마나 짧은 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

▲ <현장 21>은 시사프로그램에선 보기 드문 세련된 그래픽을 자랑한다. ⓒ SBS 화면 갈무리

연성 소재에 두루뭉술한 결론 아쉬워

<현장21>을 보고 있노라면 영상과 관련해서 어떤 흠도 찾기 어렵다. 영상 가공의 완성도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하지만 이게 시사 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제1의 미덕일까? 포장의 세련미도 중요하지만 내용물이 그에 걸맞게 충실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주 방송을 들여다보자. 세 꼭지 모두 연성 소재를 다뤘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조작 문제와 조용필 현상에 대한 분석은 모두 문화계 현상이고, ‘을(乙)의 반란, 유통 권력에 맞서다’'에 소개된 사례들도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해외 배송을 통해 물건을 직접 구매 하는 이른바 '직구족', 대기업이 운영하는 음원사이트에 유료 음원을 공개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는 '인디밴드' 이야기는 새로울 것 없는 사례가 아닌가.

“...구조적인 갑을관계 외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갑을관계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을이 또 다른 때는 갑이 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 속에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모두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갑의 횡포와 을의 분노가 뜨겁게 달아오른 이 시점에서 모두 함께 생각해 보자니? 결론이 너무 두루뭉술하지 않은가? <현장21>이 과연 시사 프로그램인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어진다. SBS가 민영방송이어서 그런가? 방송계도 갑을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가?

▲ 가벼운 소재와 두루뭉술한 결론은 <현장21>의 한계로 지적된다. ⓒ SBS 화면 갈무리

책임 소재와 대안 집요하게 찾아내야

2011년 3월 첫 방송 이래 <현장21>은 아직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킬만한 뚜렷한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뜨겁고 민감한 사안을 일부러 외면하진 않았다면 소재에 접근하는 시각이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지난 달 16일 방송한 ‘용산개발’ 문제나 지난 달 23일 방송한 ‘선택진료비 논란’도 실상을 보여주고 원인을 찾아내는 분석과 진단에는 비교적 충실했으나 책임 여부를 끝까지 따지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 발짝 물러서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현장21>의 한계다.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집요하고 단호한 접근과 결론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언론종사자로서의 용기와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포장도 알맹이가 부실하면 오히려 과대포장이란 힐난을 듣는다. <현장21>은 시사 프로그램 특유의 투박함에서 벗어난 감각적이고 젊은 연출로 그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참신한 시도를 내용물에 좀 더 집중해서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시대의 고발자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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